명절은 힘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름진 반찬이 나와서 좋았던 유년기를 제외하곤 늘 그랬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설이나 추석에는 깜깜한 새벽에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그럼 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안 큰집에 가야했지요.

셀 수도 없을 만큼 절을 하고나면 늦은 아침을 먹고, 어른들을 꽁무니를 쫓아서 성묘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어린아이가 걷기에는 만만치 않을 만큼 멀었습니다. 특히 많은 눈이 내린 설이면 춥고, 미끄러워서 애를 먹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지제사를 모시느라 천안에 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1년에 세 번. 설과 추석, 그리고 아버지의 기일에 제사를 지냅니다. 대부분의 차례음식을 혼자서 준비하다시피 해왔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7일에 장을 봐왔습니다. 무랑 두부, 녹두, 돼지고기, 숙주, 고사리. 녹두를 물에 담가두고, 막내가 보내준 국거리로 탕을 끓였습니다. 숙주랑 고사리를 데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김치와 돼지고기도 썰어서(간 돼지고기는 식감이 떨어져서) 그릇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잘 불린 녹두를 갈아서 섞은 다음에 한 장씩 부쳐냈지요.

28일에도 집 앞 마트에 갔습니다. 자동차가 없으니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갈아둔 돼지고기, 대구포, , 맛살, 새송이버섯, 쪽파, 산적꽂이, 시금치, 목이버섯, 당면 등등. 그리고 전을 마무리한 다음에 느끼함을 날려버릴 맥주 2. 아들 셋 중에 둘째는 오래전에 발길을 끊었고, 이번엔 막내도 못 온다고 해서 음식의 양을 줄였지만 노동의 강도가 줄어들진 않습니다.

29일 추석아침에 차례를 서둘러 지냈습니다. 차가 없어서 어머니를 모셔오지 못한 만큼 11시에 외출을 예약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택시트렁크에는 LPG통이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막 제사상을 차리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일 제사지내야지? 고기 값 줄 테니까 와.”

……? 오늘이 제사인데.’싶었지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제사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곧 뵈러갈 예정이었으니까요. 세 식구가 곶감이랑 대추, 샤인머스켓, 송편이랑 동그랑땡, 대구전, 산적꼬치, 식혜를 챙겨서 마을버스와 전철을 이용해서 요양병원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왔냐고 묻습니다. “엄마가 제사에 쓸 고기 값 준다고 해서 왔지.”했더니 당신이 언제 그랬느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일주일 전에 휠체어를 밀고 허리통증이 도졌습니다. 평지만 살살 밀고 다녔어야 했는데 너른 호수공원에서 가을햇살을 맞게 하고 싶어서 육교를 지나간 게 화근이었습니다. 다향이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허리가 아파서 몇 주씩 고생하고 왜 또?”하지만 하나뿐인 어머니이니까요. 내년에 또 산책할 수 있을지 여부도 모르니까 무리를 한 것입니다.

 

허리 통증을 도지게 한 육교
허리 통증을 도지게 한 육교

 

허리통증 때문에 오래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 근처의 공원벤치에 앉아있었습니다. 대화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랑 다향이는 알아보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다향이엄마는 알아보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같고. 엉뚱한 말을 계속 반복해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곶감이랑 샤인머스켓, 송편이랑 전은 맛있게 드셨고, 상대적으로 당도가 떨어지는 대추는 외면을 받았습니다. 보온병에 담아간 식혜도 아주 맛나게 드셨고요. 실컷 드셨는지 오늘 저녁은 안 먹을 거야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얼른 집에 가라고 재촉하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곯아떨어졌습니다. 명절은 참 힘이 듭니다. 30일은 오늘은 장인어른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편집 :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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