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군사동맹과 기독교인의 저항

                                                 

이재봉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 국경선평화학교 교수)

1. 한미일 군사동맹의 배경과 과정

한국-미국-일본 세 나라가 실질적 군사동맹으로 치닫자 조선-중국-러시아 3국 역시 군사협력을 추진하는 형국이 요즘 펼쳐지는군요. 1940-8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전개됐듯, 1990년대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냉전이 2020년대에 심화하고 있는 겁니다. ‘냉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주장이나 견해가 나오겠지만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전쟁 중 우방이었던 소련을 1947년부터 봉쇄하고 저지하며, 핵무기까지 터뜨렸던 적국 일본을 협력국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주도해 패전국 일본이 국권을 회복하도록 하고, 이와 동시에 일본과 안보조약을 맺었습니다. 소련을 겨냥한 미일 군사동맹이 이루어진 거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은 친구가 됨으로써, 국제관계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나아가 한국이 일본과 협력하도록 권유도 하고 압박도 하며 한일회담을 주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35년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6년 지난 해였고,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때였지요. 이승만의 거부와 저항으로 협상이 잘 진전되지 않다가,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작전처럼 전개되면서 1965년 한일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역시 35년 숙적이 우방으로 바뀐 거죠.

이를 통해 한국-미국-일본 대 조선-중국-러시아 대치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을 ‘큰형’으로 삼는 ‘3국 협의’를 제안했고요. 당시 한국 외무장관이 미국 국무장관에게 건넨 말이 미국 비밀 외교문서에 ‘3국 협의를 위한 한국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첫 부분을 그대로 옮깁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큰형 (the big brother)이다. 두 동생이 과거엔 서로 다투었다. 이젠 두 동생이 가족 분위기 안에서 집안일에 관해 얘기하도록 형님이 이끌어주면 유용할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거센 압력과 일본의 느긋한 배짱 그리고 한국의 조급한 굴종으로 한일협정이 졸속 처리되느라, 위안부, 징용, 문화재, 독도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힙니다. 1960년대 불안한 정치, 뒤쳐진 경제, 어수선한 사회 속에서 반공을 국시로 삼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1991년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40여년의 냉전이 끝났습니다. 1992년 미국은 과거의 소련 같은 경쟁국이나 적대국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하는 대책을 세웠습니다.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급속도로 경제성장하는 중국을 제1 경계대상으로 삼았지요. 1996년 대만해협 위기를 명분으로 일본과 공동안보를 선언하고, 1997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며, 중국을 겨냥해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98년 ‘주변사태법’을 정비했고요. 대만해협 등 일본 주변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나 미군이 개입.진압하면 일본 자위대가 지원한다는 내용이지요. 이를 바탕으로 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새로운 냉전이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시작됐다고 주장해온 겁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급성장이 가속화하고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봉쇄정책은 더욱 강화.확대되었습니다. 아들 부쉬 (George Walker Bush) 정부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고쳐 재무장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부추겼고,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을 펼쳤습니다. 미국이 재정난으로 국방비를 자동 감축해야하지만 중국을 견제.봉쇄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군사력은 더 확장해야 된다는 내용이었지요. 그 일환으로 2015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해 일본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더 늘렸고요.

여기에 한국까지 끌어들여 한미일 3각공조를 강화해야 하는데, 한국이 일본과 교과서왜곡, 위안부, 징용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자, 2015년 한국과 일본이 더 이상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지 말고 협력하라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협정을 주선했던 겁니다. 2016년엔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을 지원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을 주선했으며, 중국 미사일기지를 감시할 수 있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THAAD)를 한국에 배치하도록 압박했고요.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결국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2022년부터 동해와 남해에서 세 나라가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고, 2023년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빗에서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 군사동맹을 선언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미국의 도청을 조금이라도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당연시하고 정당화했습니다. 온갖 경제통제에 대해 이의 없이 따랐고요. 국방백서에 명시했듯 일본을 ‘가까운 이웃국가’로 받들기 위해, 위안부와 징용 문제 등을 덮고 일본의 핵오염수 방출을 그저 용인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 지지하며 홍보까지 했습니다. 1960년대 한일협정을 위해 한국은 독도 폭파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독도 공유를 제안했는데, 이젠 2020년대 한일동맹을 위해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만든 데 이어 독도를 한일 공유나 일본 소유로 이끌지 모르겠군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EPA 연합뉴스(사진 출처 :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EPA 연합뉴스(사진 출처 : 한겨레)

 

2.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조중러의 대응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일본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면, 중국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거나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포기할까요? 미국이 1996년 일본과 공동안보를 선언하자, 중국은 바로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었습니다. 미국이 일본 및 한국과 연합군사훈련을 강화하자 중국은 2005년부터 러시아와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고요. 이에 덧붙여, 미국이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를 강화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상하이 협력기구 (SCO)를 확대하고, 미국이 G7을 강화하면 중국은 브릭스 (BRICS)를 확대했습니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가 중러 군사협력 확대를 불러왔듯, 한미일 군사동맹은 조중러 군사협력을 초래하는 게 당연하겠지요. 특히 조.러 군사협력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참고로, 조선은 1962년 ‘국방에서의 자위’를 발표한 이후 중국이나 러시아 병력을 나라 안으로 불러들이지도 않았고, 나라 밖에서 다른 나라와 군사훈련을 실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주국방을 내세워온 조선도 앞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제안에 적극 호응하리라 생각합니다. 조선을 점령하고 지도자를 체포하겠다는 한미 군사훈련을 해마다 수십 번 하고, 이젠 중국을 겨냥해 일본까지 끌어들여 대규모 연합훈련을 벌이는 터에, 중국과 러시아가 조선과 함께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비판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미국의 정책은 언제나 선하고 방어적인데, 중국이나 러시아의 행위는 악하고 공격적이라고 여기는 경향 말입니다. 그러기에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한미일 군사동맹은 정당하고 오히려 방어적이라 생각하고, 그에 대응하는 조중러 군사협력은 부당하고 불법적이라고 간주하는 거죠. 아무리 미국이 동맹이라도 무턱대고 추종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미국이 1960-70년대 거의 온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트남을 침략해 전쟁을 벌일 때 한국은 인구비례로 치면 미국보다 더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습니다. 미국이 2000년대 유엔과 유럽 동맹들의 반대에도 미국 이익을 위해 유엔을 무시하겠다고 공언하며 이라크 침략전쟁을 벌이자 한국은 동참했고요. 미국은 1990년 나토 군사력이 동유럽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으리라 약속하고도,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에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고, 무려 1억 인치나 동진해 러시아 턱밑 흑해에서 나토군 대규모 해상연합훈련을 이끌며,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편입하려 했습니다. 이에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한국은 미국의 호전적 정책을 추종하며 러시아의 침략 행위만 비판합니다.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 보내면서, 조선이 러시아에 무기 제공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요.

미국은 거의 매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수없이 학살해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제재하려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조선의 핵개발과 관련한 유엔 제재에 가끔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엔 입도 뻥긋하지 못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엔 경고까지 하지요. 미국은 1972년 대만이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중국과 합의해놓고도 대만에 지속적으로 첨단무기를 제공하고 대만 독립을 부추기며 중국을 자극하는데, 한국은 미국을 편들며 중국과의 전쟁에 뛰어들려 하고요.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을 예상하고 겨냥해 맺는 겁니다. 한미 또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적은 어느 나라인가요? 조선인가요, 중국인가요? 둘 다인가요? 과거 미.소 냉전시대엔 한국이나 미국이나 반공을 앞세웠기에 조선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한미일 공동의 적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엔 달라졌잖아요. 미국은 세계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은 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계속 조선을 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한국에게 조선은 평화와 통일의 상대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번영을 위한 동반자가 됐거든요. 특히 한중 무역규모는 2009년부터 한미와 한일 무역액을 합친 것보다 커졌고, 한국은 무역흑자의 60-70%를 중국에서 얻기도 했습니다.

1960-70년대엔 한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기술력 등에서 고래들에 둘러싸인 새우 같았습니다. 2020년대엔 경제력 세계 10위 안팎, 군사력 세계 6위 정도, 기술력과 문화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돌고래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화와 통일 그리고 경제번영이라는 국익을 위한 자주 외교를 펴지 못하고, 미국에 굴종하고 일본에 아부하며 한미일 동맹에 종속적으로 매달려야 할까요?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국익 밖에 없는데 말이죠.

3. 기독교인의 자세: 원수 사랑 및 부정과 불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

저는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이 원수 사랑뿐만 아니라 부정과 불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라 생각합니다. 원수에게도 적개심을 갖지 말고 사랑으로 대하며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이끌고, 제국의 억압과 착취 및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는 체념하거나 순종하지 말고 적극 저항하라는 것이죠.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종을 미덕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정치.경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비판하기를 자제하며 체제에 순응하고 악한 폭력에도 방관하거나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정당화하면서요. ‘기독교인들의 윤리행위의 지침’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 또는 산상수훈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5장 38-41절의 다음과 같은 대목 말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이 설교를 그 무렵 시대 상황에 비추어 받아들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첫째, 오른뺨 왼뺨과 관련해, 오른뺨을 치려면 왼손을 써야 합니다. 당시 중동 지역 종교법엔 왼손으로 삿대질만 해도 10일간의 참회.구류에 처하도록 했답니다. 뒷간에서나 사용하는 더러운 왼손으로 사람을 때릴 수 없었다는 거죠. 오른뺨을 치려면 오른 손등을 쓰기 마련인데 이는 상대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치욕과 멸시를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노예나 하인의 오른뺨을 손등으로 치며 멸시하는 윗사람에게 왼뺨도 돌려대라는 것은 때리는 윗사람이 오른 주먹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맞는 노예나 하인도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거죠. 윗사람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저항입니다.

둘째, 속옷 겉옷과 관련해, 빚이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였던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 돈을 빌려 갚지 못하자 채권자가 채무자를 고발해 빚 대신 속옷을 빼앗으려 했답니다. 집 없는 극빈자에겐 겉옷이 몸을 덮고 잘 수 있는 이불이었기에 최후의 유일한 재산인 겉옷까지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겉옷을 담보로 잡더라도 해질 무렵엔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게 당시 유대 율법이었답니다. 자기를 고발해 속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갖게 하라는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법정을 나옴으로써 이웃 사람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를 편들고 부자를 비난하게 이끄는 거죠. 당시 세금을 착취하는 로마 지배계층에 대한 항거를 암시하기도 했을 테고요. 착취자들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저항입니다.

셋째, 오리 십리와 관련해, 당시 로마 군인들은 로마 황제가 만든 강제노역 규칙에 따라 자기들 짐이 무거우면 식민지 백성들에게 짐을 대신 지도록 할 수 있었답니다. 법에 따라 5리까지만 허용하면서, 법을 어기면 처벌했고요. 강제로 오리를 가게 하는 지배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는 것은 그가 법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이니, 지배자들에 대한 노예의 순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의 저항입니다.

이처럼 예수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되, 윗사람과 착취자 그리고 지배자들에게 순종하지 말고, 제국의 억압과 착취 및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저항하라는 설교 또는 수훈을 남겼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반드시 비폭력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학자 같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무저항’을 내세우며 기독교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전쟁을 불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침략적이든 방어적이든 모든 전쟁을 반대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악한 자의 생명도 해치거나 빼앗을 수 없다고 했고요. 전쟁을 위한 훈련은 물론 징병에도 “단호하게 그러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거부하는 게 기독교인의 명예롭고 엄숙한 임무라 여겼지요. 평화에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선을 가르치는 종교와 전쟁이 병행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겁니다.

예수의 산상설교와 톨스토이의 주장에 인도의 간디는 벅찬 감동에 휩싸이며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아 비폭력 저항을 주도했습니다. ‘무저항’이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지만, ‘무저항’이란 말 자체가 무슨 일에도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과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전개한 것이죠. 상대방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폭력으로 패배시키는 게 아니라 자기가 고통이나 고난을 당함으로써 상대방의 양심을 찔러 그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게 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디를 ‘무저항주의자’로 오해하지만, 그는 부정과 불의에 대해 저항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비겁하거나 무지한 약자의 행위라며, 자신을 희생하며 비폭력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우면, 차라리 복수와 죽음을 무릅쓰고 폭력적으로 저항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예수의 원수 사랑 관련 얘기 한 토막 덧붙입니다. 저를 몹시 사랑해주셨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목사.교수와 장로.교수에 관한 사연입니다.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세계YMCA 회장 등을 지내다 2022년 돌아가신 서광선 목사의 아버지 목사는 한국전쟁 중 평양에서 북한군에 처형당했습니다. 밧줄에 묶인 채 따발총 자국으로 피투성이 된 시신을 거두며 어린 아들은 “아버지, 이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고 맘에 새겼답니다. 그러나 훗날 목사가 되어 예수의 제자로서 북한과의 화해 협력에 앞장섰어요. 원수를 사랑으로 갚은 거죠.

버지니아 노폭주립대학 교수로 미국에서 사회사업 및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2021년 돌아가신 김동수 장로의 아버지 목사는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북한군에 체포돼 가슴과 등에 ‘민족반역자’와 ‘딸을 미제에 팔아먹은 목사놈’이란 죄패를 두르고 끌려다니다 처참하게 총살당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교수가 되고 장로가 된 아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대북 지원에 앞장서며 북한과의 화해 협력과 평화 통일에 힘썼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며 예수를 닮자는 기독교인들이 북한을 주적으로 삼자는 정부방침에 눈감거나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게 순종의 미덕일까요? 북한을 형제동포로 여기기는커녕 적으로 간주하며 원한과 적개심을 품는 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을 통해 먹고 살다시피 해왔는데 중국을 봉쇄하며 중국과의 전쟁에 휘말리기 쉬운 군사동맹에 돌진하는 것을 용인하는 게 기독교인들의 도리인지 고민해보시고요. 원수 사랑 및 부정과 불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2023년 10월 1일 전주 <평화통일기도회> 발표 원고입니다. ‘기독교인의 자세’에 관한 부분은 다음 자료를 참고해 썼습니다.

- 윙크 (Walter Wink) 저, 김준우 역, 『예수와 비폭력 저항: 제3의 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 조헌정, 이화여자대학 설교문 (2004.3.17).

- 톨스토이 (Lev Tolstoy) 저, 박홍규 역,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들녘, 2016.

- Gandhi M. K., Non-Violent Resistence, Schocken Books, 1961.

- Rynne, Terrence, Gandhi and Jesus: The Saving Power of Nonviolence, Orbis Books, 2008.

- Tolstoy, Leo. “Letter to Ernest Howard Crosby,” in Nonviolence in Theory and Practice. edited by Robert L. Holmes, 45-50, Wadsworth, 1990.

- Trocmé, André and Charles Moore, Jesus and the Nonviolent Revolution, Plough Publishing House, 2014.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이재봉 주주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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