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같았던 초가을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보도가 나가고 벌어진 역사 논쟁일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독보적인 독립군의 영웅이다.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장군으로 대표되는데 그 뒷받침도 사실은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 독립군이 협력하였기에 가능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 호랑이 사냥꾼(포수)으로 활동하다가 일제가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려고 하자 그들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삼수 갑산지역에서 맹활약하였던 용장이었다.

그런데 윤 정권은 이런 전후 맥락은 전혀 무시하고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다. ‘광복 2년 전인 1943년 사망한 홍범도 장군은 북한 정권 수립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국방부 영상에서 설명했듯이 당시 소련·연해주 등지에서 국외 무장 독립운동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들은 이념이 아닌 ‘현지 지원’이라는 필요를 얻기 위해 소련·중국 공산당 등에 가입하거나 활동해왔다. 국방부 출입 기자들마저 지난달 29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홍범도 장군이 활약한 1920년대는 레닌의 공산당이고 북한군을 사주해서 6·25 남침을 한 공산당은 스탈린 공산당으로 둘은 아주 다르다. 같은 공산당이라고 보면 어떡하냐?”고 지적하고 나섰다’라고 한겨레 9월 1일 자는 보도하고 있다.

윤 정권은 이런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우며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그의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하다가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지금 멈칫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BS 노컷 뉴스에 의하면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공원이 여생을 보낸 카자흐스탄에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조성됐다’라고 한다. 이 보도로는 국가 보훈부는 11월 1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 이반주르바 거리에 위치한 홍범도 장군 옛 묘역에 대한 기념공원 공사를 마치고 3일 현지에서 개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일제의 온갖 탄압에 불구하고 독립전쟁사에 길이 남을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독립의 영웅, 홍범도 장군님의 숭고한 생애와 정신을 기억하고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것은 정부가 바뀌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대원칙"이라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인 중앙일보마저도 영국의 유명한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역사를 두고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철거 찬반 논쟁이 한창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두고 한쪽에선 먼지를 털며 광을 내고, 다른 한쪽에선 망치로 부수려는 삽화도 곁들였다.

홍범도 장군을 두고선 "20세기의 게릴라 리더(a 20th-century guerrilla leader)"라고 정의했다. 정치적 편향성을 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표현이다.’ 중앙일보의 이런 보도는 간접적으로 인용 보도를 하고 있지만,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023년 10월 2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의 홍범도 장군 무덤 앞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023년 10월 2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의 홍범도 장군 무덤 앞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


김누리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 ‘역사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 논란이 윤 정권의 역사의식이 천박하게 왜곡되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복 후 우리 역사는 반공을 앞세워 친일을 합리화하려는 세력과 친일을 단죄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세력 간의 대립이었다. 그러한 두 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지금껏 우리 사회 분열의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갈등 지수가 튀르키예 다음으로 높다고 삼성경제연구소가 밝힌 적이 있지만, 이런 갈등은 두 세력의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며 대한민국은 총성 없는 내전 같은 대립을 벌이고 있다.

광복 후에는 이념대립을 이용한 민간인 학살이 제주와 여수 순천에서 벌어지지 않았는가? 이런 엄청난 역사적 아픔을 딛고 우리 국민은 민주화를 쟁취하였다. 국가와 정권을 분리하여 생각할 줄 알았던 시민사회의 지혜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화를 하면서 국가를 타도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독재정권을 타도한 것이다. 그것이 북한과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자신들과 단지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들에게 ‘공산 전체주의’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한 맥락에서 전 정권에서 모셔 온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마저 불편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 이번 가을에 벌어진 역사 논쟁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맘에 들지 않다고 ‘공산 전체주의자’라는 말까지 쓰는 그들에게 소름이 돋는다. 이념대립을 이용해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이승만 기념관을 짓는 움직임을 용인하거나, 87년 6월 항쟁 이전의 독재정권과 같은 행태인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모는 이러한 자세에서 우리 민주화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모욕이 느껴진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말이 자유민주주의이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말이 우리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말을 철저한 반공주의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통합의 정치보다는 국민을 이념으로 갈라 세우는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행태였다. 또한 이를 이어받은 독재 권력의 수법이 아직도 통한다고 본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임경석 교수는 ‘흉상 철거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핵 오염수 방류로 촉발된 끓어오르는 반일 감정을 반공주의로 방어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새 이슈로 낡은 이슈를 덮어버리는 책략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한겨레21 9월 5일 자에서 분석하였다. 실로 탁월한 안목이다.

영국의 역사가 존 로버트 실리는 “역사는 과거의 정치이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역사에는 과거의 정치가 담겨 있지만, 정치는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결집할 것이 아니라 지금 국민이 고통 받는 부분을 해결하여 미래로 가는 길을 여는데 매진하는 현명한 정치를 촉구한다.

끝으로 지난 10월 25일은 홍범도 장군이 고단했던 일생을 마치신 지 8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분을 추모하는 시와 소설가의 글을 인용한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동순 -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 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

,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무참히 강제이주 되어 끌려와 살던

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

, 거기로 돌아가려네

이런 수모와 멸시 당하면서

, 더 이상 여기 있고싶지 않네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 뿐

어딜 가나 왜..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내 동상을 창고에 가두지 말고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

 

소설 [범도]를 쓰신 방현석 작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핏줄 한 점 남기지 못한 채 평생을 일제에 쫓겨 다니며 싸웠다. 죽어서도 80년 동안 후손이 차려주는 제삿밥 한 그릇 얻어 먹어보지 못한 홍범도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정경호 객원편집위원  jkh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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