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이다. 나이가 들면 이제는 신경을 덜 써야 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와는 2살 차이다. 내가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숫자로 파악할 뿐이다.

세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변해가는데 변해가는 것을 거부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글은 두 번째 작성이다. 완성된 글을 저장해서 확인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 사라졌다.

첫 번째 글을 무엇이라고 작성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의 감정으로 작성할 뿐이다.

고통은 항상 후회를 동반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후회가 나를 찾는 데 있다.

처음부터 기대를 안 했다. 나도 그도 사회생활 30년을 했기에 보면 안다.

기억으로 돌아가자. 20살 초반에 다들 정의의 사도처럼 살았다. 다는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빈정거리는 것은 살아온 삶의 차이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지, 원래 성향이 그런 건지는 모른다.

그는 사법고시 준비한 지 거의 10년 만에 합격했다고 자료를 본 것 같다. 같은 20대를 살면서 누구는 나라(?)를 위하여 누구는 자기 영달(?)을 위해서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삶이기에 살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나도 술을 좋아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니 어쩔 수는 없다. 술로써 지금 사는 것이 말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니, 뭐 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사회생활 30년은 삶의 태도가 같을 수는 없다. 항상 을의 입장에서 사는 인생과 갑의 입장에서 생활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나는 살면서 지금의 직업이 두 번째다. 그도 두 번째 직업이다. 같은 것이 꼬이면 그것이 짐이 되든지 아니면 정이 들든지 할 텐데 인생은 그렇지 않다.

오늘 아침뉴스 제목을 보니 과거로 영광 재현을 위한 박정희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박정희. 일본군 앞잡이의 인생이 그리워지는 건가, 어렸을 때 일본에 산 기억이 좋았던 것인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대오각성을 한다 해도 행동이 앞서지 않으면 헛소리다.

40년을 술을 먹은 나의 행동이 그러할 진데 모르겠다. 40년을 술을 같이 먹지는 않았지만 술 먹는 풍경은 눈에 선하다.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배려는 없는 법이다.

배려가 있다 하면은 그런 직업을 선택하지 못한다. 설령·정의의 화신이 되고자 했던 것은 모르겠다.

문화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임을 김구 선생이 예견했듯이 전쟁과 이기심보다는 문화가 갖는 감성이 생각을 바꾸는 힘이다.

과거는 흘러간 기억이다. 그 기억을 되돌려서 무엇을 얻고자 함은 미련한 짓이다.

자연에서는 물길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만 돌린다는 것은 파괴다.

이영희 선생의 문장을 가끔 인용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요즈음은 한 날개로 날 수 있다고 말한다. 속도만이 그러하다.

마치 미사일처럼 말이다. 비록 지금의 시대가 균형이 무너지고 있지만, 과거는 기억하지만, 되돌린다는 것은 불행이며, 자기파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광현 주주  starisstar@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