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무정(故鄕無情) -이현 서 지음.
”나의 일곱 번째 이름”을 읽고 나서

그녀는 자유다. 고향의 정(情)이 남아 있는 이유는 굴레에 대한 향수다.

세상은 여행이라는 테마도 있지만, 여행 자체도 사치가 되는 곳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최초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떠돌아다니듯이, 떠돌아 다니는 인생은 그 자체가 속박의 끈이다. 누군가의 서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감성 폭을 넓히는 것은 없다.

사람이 사람 답게 산다는 것이 자유라고 하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땅이나 북한의 땅이나 자유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실은 냉정하다. 냉정한 만큼 비열하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못하다는 것이 이치에 맞다.

사람이라는 동물에 대한 애증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회의감이 드는 것은 그 많은 고비를 넘겨주는 것은 결국 돈이었다.

선의적인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빛이고, 누군가에게는 재물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는 생각이다. 생각이 힘이고, 자아를 발견하는 핵심이다.

생각없이 산다는 것, 누구나 생각 없이 살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할 뿐이다.

그녀의 생각이 인간이라는 애증의 동물을 어찌하여 살아왔는지를 감탄할 뿐이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 어려운 동물이다. 고향의 그리움이 유정(有情)에서 무정(無情)으로 변하는 것은 알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나는 북한(?)땅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비록 여행이지만 말이다. 금강산 여행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옛사람들이 금강산에 대한 예찬이 과장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 났다.

천하제일경이 금강산 만물상이라는 말이, 지금도 나의 첫 번째 일경(一景)이다.

금강산 해변 백사장에서 야밤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지갑을 찾으려 다녔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물건은 원래 있던 자리 마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의 생각은 잃어버린 지갑보다도 반쪽인 땅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녀가 고향에 대한 생각이 그러할 진데, 나도 휴전이 되지 않았다면,북한땅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피난민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술 한잔 먹으면,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 나이 70세가 될 때까지 평양 구경을 못한다면, 지리멸렬한 민족이라고 탓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냥 구경하러 가야겠다고 했다.

해방되고 나서 분단된 역사의 땅에, 이렇게까지 비열하고, 비 인간화 된 민족이 있었는지 말이다. 서로 편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고 구경도 못하는 것이(전쟁의 잘잘못을 제외하고) 남한이나 북한이나 매한가지다.

영원한 것은 없다. 분단도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생전에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비참한 일상이다.

그녀의 행복을 빈다. 행복이라는 둘레에서 건강한 삶을 이루기를 바란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광현 주주  starisst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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