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 나” “문건은 조사할 때 처음 봐”
주요 증언 뒤집어지며 공소사실 흔들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달 2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현장 골목 벽면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달 2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현장 골목 벽면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다른 증인하고도 이렇게 답변하기로 했나요? 보고서 쓰는 내내 수십분간 앉아 있었는데 처음 봤다고 하면 납득이 될까요?”

지난 20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이태원 참사 관련 공판 중 검사가 증인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검찰이 증인으로 부른 안아무개 이태원파출소장과 황아무개 전 용산서 생활안전과장은 증거자료인 상황보고서를 보고 입을 맞춘 듯 “기억이 안 난다”, “문건은 조사할 때 처음 봤다” 같은 대답을 이어가던 차였다.

CCTV 보고도 모르쇠…법원 “누가 이해하겠나”

검찰은 이 전 서장이 자신의 과실을 숨기기 위해 현장 도착 시간을 조작한 허위 상황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들은 검찰 수사 당시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던 주요 증인들이었다.

검찰이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29일 밤부터 다음날 자정 무렵까지의 이태원파출소 시시티브이(CCTV)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안 소장 등은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전 서장의 도착 시각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때 촬영된 시시티브이 사진에서 안 소장은 20분간 모니터를 바라보며 때때로 손가락으로 뭔가를 짚고 있었다.

황 전 과장 역시 옆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안 소장은 경찰 조사에서 현장을 지켜본 당사자로서 상황보고서의 시간대별 내용이 ‘맞지 않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판사마저도 “시시티브이상 증인이 바로 붙어서 지시까지 하는데 그 내용을 몰랐다는 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무엇을 감추려는 태도냐”고 물었다.

29일 법원이 불법 증축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호텔 대표의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 800만원 벌금형을 선고한 가운데, 용산경찰서·용산구청 관계자들이 기소된 이태원 참사의 본류 재판 역시 주요 증언이 뒤집히고 공소사실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정아무개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접수요원도 경찰 조사에서 했던 자신의 증언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했다. 정 요원은 긴급신고에 대한 무전지령을 ‘보통은 관내 서장이 잘 듣고 지휘해야 한다’고 경찰에서 답한 상황이었다.

검사는 “경찰 조사를 받을 땐 (본인의 업무라 나름 판단해) 진술했던 것으로 확인해 증인으로 불렀는데 입장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 요원의 “잘 모른다”는 답변에 판사도 “증인의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니 아는 내용을 말해줘야 112신고 시스템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희영 구청장 재판 역시 박 구청장이 보석으로 풀려나고 업무에 복귀한 뒤 증인들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박 구청장 석방 직후 열린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김아무개 용산구청 행정지원과장은 핼러윈 축제에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고 사전대비를 했느냐는 검찰 쪽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김 과장이 소속된 행정지원과는 핼러윈 축제 등을 대비한 종합상황실이나 당직실 운영을 담당하고 있었다.

검찰 ‘경찰 윗선’ 불기소 조짐에 증언 뒤집기 심화

검찰이 ‘경찰 윗선’의 업무상 과실 등의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할 분위기가 짙어진 뒤 이런 분위기는 한층 심화됐다. 검찰이 업무상 과실 수사는 물론, 재판에서의 공소 유지에도 자신을 보이지 않자, 대다수 현직에 있는 경찰·구청 증인들이 방어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올해 안에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윗선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피해자들 법률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창민 변호사는 “수사가 거의 진술조서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박하기 힘든 물증을 더 많이 확보하는 등 꼼꼼히 수사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한겨레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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