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니 주변의 사람들이 정년을 맞고 제2의 삶을 준비하는 것을 자주 본다. 시민운동가인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년이 없는 탓에 여젼히 현역이다. 활동에 대한 보수를 받기보다 오히려 가진 것을 내어놓아야 할 때가 많은 것이 시민운동가의 삶이다. 늘 현장을 바라보고 필요한 일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래를 좋아해 젊은 시절 합창단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언론분야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중에서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인 성취와 즐거움이 있는 성가대와 합창단 활동을 포기했다. 나이 들어 시간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합창단을 하겠다는 생각만 가슴에 품었다.
한 번도 고개 돌리지 않고 지난 30년 언론분야 활동가로 시민운동에 힘을 쏟았다. 현재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합창단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이러저런 바쁜 일정을 설명하며 거절했다. 그러다 문득, 세월이 바람처럼 흘렀다는 것과 이젠 내가 60이 넘어 목소리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젠 노래하자고 초대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 시간을 날 때를 기다리지 말고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사회적 약자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거리에서 노래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합창단이 아닌가! 용기를 냈다. 이미 예전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활동에 힘을 보탠다는 명분을 핑계 삼아 얼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이제 노래를 부르면 에너지가 재충전된다는 것, 노래로 사랑을 전할 수 있고, 노래가 아픔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단원들과 함께 하는 매순간이 감동이다. 지휘자 반주자 포함 전체 19명의 소규모 합창단. 단원의 20% 이상이 은퇴자이고 평균나이 59세의 시니어 합창단이지만 누구보다 젊은 마음으로 노래한다. 10~20분의 연대공연을 위해 직장에 하루 연가를 내는, 노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는 기쁨은 덤이다.
합창의 묘미는 내가 좀 부족해도 함께 노력하면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며 만들어 내는 공감은 혼자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그 공감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게 한다. ‘종합예술단 봄날’은 보람이라는 가장 큰 선물로 나를 젊고 행복하게 한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노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신체에서 목소리가 가장 늦게 늙는다고 하니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사랑으로 노래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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