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니 주변의 사람들이 정년을 맞고 제2의 삶을 준비하는 것을 자주 본다. 시민운동가인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년이 없는 탓에 여젼히 현역이다. 활동에 대한 보수를 받기보다 오히려 가진 것을 내어놓아야 할 때가 많은 것이 시민운동가의 삶이다. 늘 현장을 바라보고 필요한 일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래를 좋아해 젊은 시절 합창단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언론분야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중에서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인 성취와 즐거움이 있는 성가대와 합창단 활동을 포기했다. 나이 들어 시간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합창단을 하겠다는 생각만 가슴에 품었다. 

한 번도 고개 돌리지 않고 지난 30년 언론분야 활동가로 시민운동에 힘을 쏟았다. 현재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합창단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이러저런 바쁜 일정을 설명하며 거절했다. 그러다 문득, 세월이 바람처럼 흘렀다는 것과 이젠 내가 60이 넘어 목소리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젠 노래하자고 초대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 시간을 날 때를 기다리지 말고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사회적 약자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거리에서 노래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합창단이 아닌가! 용기를 냈다. 이미 예전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활동에 힘을 보탠다는 명분을 핑계 삼아 얼른 손을 잡았다.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이동우 씨의 분향소에서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이동우 씨의 분향소에서 

 

ebs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노동조합 간부들의 해고되었고, 청소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연대하여 싸웠다
ebs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노동조합 간부들의 해고되었고, 청소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연대하여 싸웠다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양회동 열사의 추모식에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양회동 열사의 추모식에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전태일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의 잔치에서 노래와 몸짓으로 흥을 보탰다. 
전태일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의 잔치에서 노래와 몸짓으로 흥을 보탰다. 
이태원 참사 1주기 국회추모식에서 보라색 점퍼를 입고 참석한 유족들 앞에서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이태원 참사 1주기 국회추모식에서 보라색 점퍼를 입고 참석한 유족들 앞에서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이제 노래를 부르면 에너지가 재충전된다는 것, 노래로 사랑을 전할 수 있고, 노래가 아픔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단원들과 함께 하는 매순간이 감동이다. 지휘자 반주자 포함 전체 19명의 소규모 합창단. 단원의 20% 이상이 은퇴자이고 평균나이 59세의 시니어 합창단이지만 누구보다 젊은 마음으로 노래한다. 10~20분의 연대공연을 위해 직장에 하루 연가를 내는, 노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는 기쁨은 덤이다. 

종합예술단 봄날은 지난 7월 강릉세계합창대회에 참석해 금상을 받았다. 
종합예술단 봄날은 지난 7월 강릉세계합창대회에 참석해 금상을 받았다. 

합창의 묘미는 내가 좀 부족해도 함께 노력하면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며 만들어 내는 공감은 혼자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그 공감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게 한다. ‘종합예술단 봄날’은 보람이라는 가장 큰 선물로 나를 젊고 행복하게 한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노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신체에서 목소리가 가장 늦게 늙는다고 하니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사랑으로 노래하리라 다짐한다. 

지난 7월 강릉 중앙시장 앞에서 버스킹을 했다. 지나가던 세계합창대회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 7월 강릉 중앙시장 앞에서 버스킹을 했다. 지나가던 세계합창대회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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