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3일 오전,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들머리에서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시위를 하려고 하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출처 : 글과 사진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
2023년 4월 3일 오전,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들머리에서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시위를 하려고 하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출처 : 글과 사진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보 정당의 정치력이 미약한 외적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인 ‘분단 상황’이다. 분단 상황은 극우 정치 세력이 언제든 준동할 수 있는 유익한 토양이자 자양분이다.

대한민국 정당 정치가 거대 양당제 대결 정치로 치달으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수를 참칭하며 자유를 오용하는 극우 정치 세력을 거세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 세력(보수 정당)이 집권할 때 진보 정치 세력이 탄압받지 않고 싹을 틔우며 성장할 수 있다. 50년대 말 진보당 탄압과 2010년대 중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은 그러한 대표 사례들이다.

스웨덴, 프랑스 등 북서유럽 시민교육 교과서에선 성평등,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 노사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불의인 만큼 폭력에  맞서서 당당히 싸울 것을 학습하고 있다.스웨덴 기초학교 9학년(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내용이다.(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스웨덴, 프랑스 등 북서유럽 시민교육 교과서에선 성평등,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 노사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불의인 만큼 폭력에  맞서서 당당히 싸울 것을 학습하고 있다.스웨덴 기초학교 9학년(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내용이다.(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다른 또 하나의 요인은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 시민을 길러내는 ‘민주시민교육의 부재’이다. 일상의 차별과 불의에 항거하고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동적 시민을 체계적으로 길러내지 못한 결과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처럼 북서유럽 학교 교육에선 차별과 불관용, 그리고 혐오 문화에 ‘저항하라’고 가르친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성차별, 인종 차별과 결연히 맞서 싸우라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길러낸다. 중학교 의무 교육과정으로 노동조합의 중요성과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노사협상 기술을 정규 교과 시간에 학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어떠한가? “민주시민 양성”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명문화한 교육기본법과 달리, 학교 교육 현실은 겉도는 형편이다.

다시 말해 100년 넘게 식민지와 독재 체제, 기성 질서에 ‘순응적인 신민’(臣民)을 양산해 왔다. 게다가 치열한 입시 경쟁교육으로 ‘개별화된 시민’을 배출해 왔다. ‘순응적 신민’과 ‘개별화된 시민’이 다수를 점하는 우리 사회의 세태는 총선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기 18대(2008) 19대(2012) 20대(2016) 21대(2020)
투표율 46.1% 54.2% 58% 66.2%

(출처 : 중앙선관위 , 2020)

2016년 총선 평균 투표율은 58%였다. 19세 투표율은 54%로 평균에 미치질 못했고 30대는 50.5%로 더 낮았으며 40대 또한 54.3%로 평균보다 낮았다. 20-40대의 경우, 유권자 두 명 중 한 명은 투표를 포기한 셈이다. 겨우 60대와 70대만 70%를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주1)

다행히 21대 총선(2020)은 20대(58.7%), 30대(57.1%), 40대(63.5%), 50대(71.2%), 60대(80.0%), 70대(78.5%), 평균 투표율 66.2%로 20대 총선보다 조금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시민교육’이 활발한 북서유럽 국가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북서유럽 선진국 투표율은 80% 안팎이다. 60% 안팎을 보이는 우리나라 투표율과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국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투표 87% 78% 84% 76% 81%

(출처 : 『서울신문』 2010. 6. 2.)

2000년~2009년 10년 기간, OECD 30개 회원국 평균 투표율은 71.4%였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56.9%로 26위에 머물며 하위권을 맴돌았다.주2)

모두 ‘민주시민교육’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다. 북서유럽 국가들은 80년대 이후 ‘민주시민교육’을 크게 강화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시장이 개방되면서 북서유럽 사회에서 외국인 혐오범죄와 테러가 횡행했다.

외국인 혐오와 테러 범죄의 경우, 90년대 이후 북서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사회 현상으로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다.

북서유럽의 경우, 90년대를 ‘민주시민교육의 전성기’라고 일컫는 시대 배경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학교 교육을 통해 ‘시민격’(citizenship)주3)을 길러야 한다는 높은 공감대와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북서유럽 국가 내 극우 정치 세력이 급부상하였다. 2022-2023년에는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각국에서 극우 정당들이 원내 제1당과 제2당으로 의석수를 확보하며 빠른 속도로 정치세력화하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주4) 이 점은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형 복지국가인 북유럽과 서유럽도 마찬가지다.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 신문 노지원 기자)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 신문 노지원 기자)

지난 2023년 4월 2일, 200석을 두고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서 집권당 산나 마린의 사민당이 제3당으로 전락하고 핀란드인당(Finns Party)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한 사건이 그러하다. 핀란드인당은 내셔널리즘에 기초해 페미니즘, 동성결혼, 다문화주의, EU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이다.

네덜란드 또한 며칠 전 11월 22일 치른 총선에서 무슬림혐오와 인종차별주의자가 이끄는 극우 정당 자유당이 제1당을 차지하며 충격을 던졌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해 북서유럽 교육 선진 국가들에선 '민주시민교육'을 한결같이 더욱 강화해 오는 추세다.

북서 유럽 국가에서 보여준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중도좌파의 진보 정당이 집권했을 때 한결같이 교육개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7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 빌리 브란트의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독일 ‘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규정됐다.

1985년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정부 당시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 개혁’을 추진한 것이 그러한 사례다.

1997년 영국 노동당 또한 토니 블레어의 집권과 동시에 2000년대 초반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필수 독립교과로 처음 추진한 점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은 시민교육을 담당한 ‘사회’ 교과를 2018년부터 ‘시민성’(Civics) 교과로 교과 명칭을 변경해 ‘학교 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해 오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에 들어서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민교육을 도덕 교과와 통합했고 마침내 2015년엔 초중고 모두 교과 명칭을 ‘도덕 시민교육’(enseignement moral et civique, 약칭 EMC)으로 통일시켰다.

당연히 민주시민 교육과정은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논술 시험에 적용된다. 2018년 프랑스 교육 당국은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목표를 세 가지로 더욱 구체화했다.

‘타인 존중하기’와 ‘공화국의 가치를 습득하고 공유하기’, 그리고 ‘시민문화 구성하기‘로 민주시민교육을 한층 강화한 추세다.

독일 역시 70년대 격렬한 이념 논쟁 와중에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도출해 향후 독일 ‘민주시민교육’의 준거로 적용해 왔다.

민주시민교육에서 앞서갔던 독일은 1997년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뮌헨 선언」으로 발전시켜 갔다. 그리고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수정, 보완한 ‘독일정치교육 표준안’(2004)은 다시 「마그데부르크 선언」(2005)으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그데부르크 선언」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독일은 학급 회의를 ‘학급평의회’라 부르고 학급회장을 학급 ‘대변인’이라 부른다.

학급공동체 구성원이 학급공동체 문제를 결정하는 실질적 주체임을 명확히 드러낸 표현이다. 모두 2005년 「마그데부르크 선언」 이후 등장한 학교 풍경이다.

북서유럽 중도좌파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이 오늘날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했던 주체였다. 이러한 사실은 북서유럽 국가들을 오늘날 지구상 최상의 복지국가로 발돋움시킨 핵심 정당이란 사실과도 맥을 같이 한다.

북서유럽국가에서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이 연립정부로 집권할 수 있는 성장 배경엔 엄연히 ‘민주시민교육’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사 100년 동안 ‘순응적인 신민’(臣民)을 양성했을 뿐, 공동체 문제에 참여하고 공감하는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을 길러낸 교육 경험이 부재하다.

왜 우리나라에서 노동당, 녹색당이 원내 진입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원내 진입을 했던 진보당이나 정의당조차 진보 정치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왜 정치력이 미약한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극우 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 지배 세력으로 준동하는 한, 휴머니즘 가득한 사민주의 대중정치인 조봉암, 노회찬 같은 정치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정치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슬픈 정치 풍경이지만 엄연한 역사 사실이다.

제주4·3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정당의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펼침막이 내걸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출처 : 글과 사진 한겨레 신문 허호준 기자)
제주4·3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정당의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펼침막이 내걸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출처 : 글과 사진 한겨레 신문 허호준 기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우리 인간도 왼팔, 오른팔이 있어야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극우가 보수를 사칭하고 보수가 진보를 사칭하는 대한민국 정치 구도는 기형적이다 못해 국민에 대한 기만으로 작동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극우의 토양인 분단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 최소한 한반도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 상태를 마련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학교 교육에서 자율적 시민, 주체적 시민을 길러내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교육과정의 핵심 원리로 관철해 ‘적극적 시민’을 길러 내야 한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내  노회찬 의원 무덤(출처 : 하성환) 올해 7월 35도가 넘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모자를 쓴 젊은이가 벤치에 가방을 던져놓은 채 묘소 주변을 정리하며 가꾸고 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내  노회찬 의원 무덤(출처 : 하성환) 올해 7월 35도가 넘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모자를 쓴 젊은이가 벤치에 가방을 던져놓은 채, 묘소 주변을 정리하며 가꾸고 있다.

노회찬이 몸을 던져 만든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올해로 23년이 지났다. 진보 정치 23년 동안 진보 정치는 성장하기보다 답보상태다. 아니, 오히려 분열을 거듭하며 퇴행 속 쇠락하고 있다. 진보 정당 건설에 목숨을 바쳤던 노회찬만큼 진정성 있는 진보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당 정치학교를 통해 품격 있는 정치인과 학교 교육을 통해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 잘못 때문이다. 원내 6석 정의당조차 자기정체성을 상실한 채, 지리멸렬한 작금의 풍경에서 우리는 씁쓸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1) http://www.civicedu.go.kr/web/civilEdu/newCivilEdu_01_03_view.jsp 검색일시 2020. 9. 27. 21:26

주2) 강국진(2010).[투표율이 선진국 가른다] ‘선진국은 투표 저조편견OECD 71%·한국 57%.서울신문. 2010. 6. 2.

주3)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2020). 한국 세계 시민교육이 나아갈 길을 묻다. 서울:살림터. 11, 120쪽 참고 <(citizenship)은 근대 시민혁명을 거쳐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의 발전과 관련된 개념으로 통상 시민성또는 시민권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시민성은 책임과 의무에 방점을 찍어 시민이 갖춰야 할 덕성, 즉 계몽적 성격이 강하고 시민권은 시민이 누릴 권리, 자격에 한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하여 최근 시민성시민권을 아우른 시민격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시민격시민성시민권을 포괄하는 용어로 시민으로서 법적 지위와 역량(능력과 덕목)”을 가리킨다.>

주4) 2000년대 이후 프랑스에선 극우 정당 르펜의 <국민연합>(국민전선)이 급부상하였고 독일 역시 2013년 이후 반이민, 반난민, 안티페미니즘, 기후변화 부정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급부상했으며 2010년대 이후 유럽 극우 정당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 자유당, 덴마크 인민당, 이탈리아 동맹당, 노르웨이 진보당, 스웨덴 민주당의 약진을 들 수 있다. 2022년 총선에선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이 89석을 확보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했고 반이민을 내세운 스웨덴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 또한 2022년 총선에서 73석을 확보해 제2당으로 급부상했으며 신나치주의에 뿌리를 둔 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 당 역시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해 당 대표 멜로니를 총리로 배출했다. 북서유럽뿐만 아니라 남유럽까지 극우 정치 세력이 날로 확장하는 추세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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