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성 경화증’(Systemic Sclerosis)은 피부, 혈관, 내부 장기의 비후(두꺼워짐)나 경화(딱딱해짐)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에서 과다하게 생성된 콜라겐이라는 물질이 축적되어 생기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알려졌고, 특정한 화학물질(톨루엔, 벤젠, 비닐 클로라이드, 실리카 등)은 그 발병과 연관성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이번 직업병 사례의 노동자는 1961년생 남성이다. 노동자는 진술하길, 10대 후반부터 보석 연마와 정밀 유리공예를 32년간 수행하였다. 2020년 5월 14일 전신성 경화증을 진단받고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기타 질환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이제 노동자의 업무 이력과 환경을 살펴본다. 노동자는 2003년 6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사업장에서 6년 3개월간 유리나 보석 가공 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무는 주 6일, 오전 8시에서 저녁 6시까지, 야간근무를 하는 날에는 저녁 9시까지 근무하였다. 작업장에서는 4명이 한 공간에 근무하였다. 노동자가 종사했던 보석과 유리 세공은 유리와 보석재료를 사용하여 가공한 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노동자는 원석(또는 유리)을 보석 모양의 반지알 등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했다. 옥이나 수정 등의 원석(또는 유리)을 절단, 연마, 조각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적당한 모양으로 가공하였다. 수공구나 광학 보조기구 등을 활용하여 수정, 옥 등의 보석 원석(또는 유리)을 적절하게 절단하고 연마한 다음 광택 내는 작업을 하였다. 요컨대, 노동자는 절단(Trimming), 연마(Grinding), 다듬질(Sanding), 광택(Polishing), 세척 등의 작업을 하였다. 절단 시 윤활유를 사용하고, 연마 작업 시 물을 뿌리거나 찍어서 습식 연마를 하고, 광택 작업 시에는 산화크롬을 사용하였다.

확산 공정 업무를 맡았던 혜정씨는 퇴사 뒤 전신성 경화증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7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반올림 제공. 한겨레, 2019.10.19.
확산 공정 업무를 맡았던 혜정씨는 퇴사 뒤 전신성 경화증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7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반올림 제공. 한겨레, 2019.10.19.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노동자는 2014년 A종합병원에서 결정형 유리 규산 노출력과 영상의학적으로 진폐증이 확인되어 2014년 진폐 3급을 인정받았다. 이후 B대학병원에서 진폐증에 대해 치료 중이었다. 2018년부터 손톱이 갈라지고,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 손끝 저림과 같은 감각 이상, 부종 등의 증상이 시작됐으며 2020년 5월 14일 상기 증상으로 B대학병원에서 전신성 경화증을 진단받았다. 현재 추적 관찰하며 약물치료 중이다. 건강보험 수진내역을 확인한 결과, 2014년 심낭삼출(Pericardial effusion·심낭의 두 층 사이에 수분이 쌓임)이 동반된 탄광부 진폐증을 진단받았고, 2015년에 약 1년간 심낭삼출로 치료받았다. 또한 제출한 의무기록 상 결핵성 심낭염(심낭에 염증이 발생한 상태)으로 2017년 심낭 절제술을 시행하였다. 이외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는다. 흡연력은 하루 반갑 16년간이다. 진술하길, 전신성 경화증과 관련된 가족력은 없다.

노동자는 상기 질병이 업무 중 노출되는 유리 분진과 더불어 연마제, 산화크롬, 녹스, 샌드, ‘다이아몬드 휠’(Diamond wheel) 연마제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업무상 질병이라 주장하여 2020년 6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2022년 4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업무관련성 평가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2023년 7월 역학조사평가위원회(서면심의·2023.7.24.~7.26)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종합하여 노동자의 질병은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노동자는 2020년 5월 14일 전신성 경화증으로 진단받았다. 둘째, 노동자는 만 42세인 2003년 6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사업장에서 6년 3개월간 보석과 유리 가공 업무를, 이전에도 여러 영세 사업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약 30여 년간 각각 수행하였다. 셋째, 상병과 관련성을 보이는 직업적 유해인자는 결정형 유리 규산과 유기용제 등이 보고되고 있다. 근로자의 업무 환경에서 고농도의 결정형 유리 규산에 장기간 노출이 확인된다. 다수의 연구에서 결정형 유리 규산 노출 시 규폐증과 전신성 경화증이 동반되는 사례가 보고됐고, 규폐증의 진행성 합병증뿐만 아니라 노출 후 단독 발생 사례도 확인된다. 노동자의 경우 규폐증 선행이 확인되고, 결정형 유리 규산 노출에 따른 전신성 경화증의 임상적 특성이 선행 역학연구와 일치한다. 결정형 유리 규산 노출 시점 이후 전신성 경화증 발현까지의 알려진 잠재기간은 최소 5년에서 최대 47년이다. 노동자의 직업생애 시작을 노출 시점으로 보았을 때 노출과 질병의 증상 발현 시점과 선후관계가 성립한다. 그 외에 동반된 과거력과 전신성 경화증과 관련된 가족력 또는 환경성 유해인자 노출은 확인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2020년 5월 14일 전신성 경화증을 진단받은 지 약 3년 2개월이 떠나간 2023년 7월에 역학조사평가위의 심의는 완료됐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꽃 지고, 새가 울고, 별이 진다고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6년 1월 9일

*관련 기사: 반도체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을 지키는 ‘황유미법’을 만들자(한겨레, 2019.10.19.)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835477.html

편집 : 형광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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