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집위원의 눈] 심창식 | ​한겨레온 편집장

 매년 3월 개최되는 한겨레 주주총회의 단골 메뉴가 있다. 서민의 억울한 사연을 취재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한겨레의 미온적인 대응, 경영 평가, 자회사 설립과 운영 등이다. 2024년 갑진년에도 한겨레는 여전히 가치를 지키면서 생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신문사들이 대기업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겨레가 받는 대기업 광고비가 조중동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한겨레가 주주 독자들의 요청에 일일이 응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열악한 여건에서 한겨레가 여태껏 생존하며 그 가치를 보존해온 것만으로도 기적일지 모른다.

대기업과 한겨레의 관계 설정을 재고해 볼 여지는 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말이 있다. 한겨레가 대기업에 투명경영을 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한겨레를 대하는 대기업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한겨레가 지난 1일 새해를 맞아 새로운 읽을거리로 누리집(hani.co.kr)을 단장했다./  출처 한겨레(2024.1.29)
한겨레가 지난 1일 새해를 맞아 새로운 읽을거리로 누리집(hani.co.kr)을 단장했다./  출처 한겨레(2024.1.29)

한겨레는 현재 세마리 늑대에게 쫓기고 있는 형국이다. 첫번째 늑대는 종이신문의 위기이다. 뉴스 소비자들이 고색창연한 종이신문을 뒤로하고 인터넷과 포털의 현란한 무대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두번째 늑대는 한겨레보다 더 진보적인 매체들이 온라인에서 등장하여 독자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 늑대는 혁신성의 부재다. 세번째 늑대에게마저 잡혀먹히면 그야말로 미래가 없다. 한겨레는 기존 언론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창간됐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겨레의 혁신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이며, 잃어버린 독자는 어디에서 충원할 것인가.

현대인들은 충직한 ‘늙은 개’보다는 ‘애완견’과의 정서적인 교류를 선호한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말처럼 종이신문이 포털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겨레에 내재하여 있는 ‘혁신의 디엔에이(DNA)’를 깨워야 한다. 여기서 혁신은 디지털 혁신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혁신, 가치의 혁신을 수반해야 한다.

미국 학술지 ‘저널리즘’의 편집장인 바비 젤리저가 ‘저널리즘 선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딛고 장래의 발전을 꿈꾸고 싶다면, 언론은 지난 영예에 안주하기를 멈추고 제도적 경계 너머에 있는 것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최근 언론사들이 프리미엄 콘텐츠를 내세워 탈포털 실험에 나서고 있고, 한겨레가 유료화의 전 단계로 ‘로그인 월’을 시작한 것은 관계 재설정의 좋은 예이다. 또한 확장성 측면에서 한겨레가 진영논리와 정파성에 갇히지 않고, ‘저널리즘의 올바른 객관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취재원의 심연으로 들어가되 공사를 구분하라’는 박재영 고려대 교수의 제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포털 위주의 뉴스 생태계에서 재미와 감동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 개발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수층에서 볼 때 한겨레는 여전히 깨기 어려운 ‘진보의 아성’이며, 한겨레의 ‘가치’는 여전히 작동하는 한겨레의 ‘존재 이유’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점증하는 추세에 발맞추어,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적 열망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미래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창간 이후 숱한 여건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떠나지 않고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염원을 안고 끝까지 한겨레를 지지하는 시민독자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기 바라며, 아무쪼록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올 한해 의미 있는 결실 보기를 기대해 본다.

* 이 칼럼은 한겨레 신문(2024.1.29자)에 실린 칼럼을 옮긴 글입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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