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재가했다. 취임 뒤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노태우 정부 이후 최다인 9개로 늘었다.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게 됐지만, 여야가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 폐기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오후 공지를 내어 “윤 대통령은 오늘 오전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참사 원인을 규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19일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부닥쳤다. 이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재적 의원(295명)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국민의힘(30일 현재 112석)은 거부 의사가 완강해 폐기가 유력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등 ‘쌍특검법’에 이어 25일 만에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이태원 참사 현장부터 용산구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를 했으나, 윤 대통령은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법안은 국민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법안 거부권을 심의·의결했다. 한 총리는 머리발언에서 “특별조사위에 부여된 강력한 권한이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야에 법안을 재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듯 △피해자 지원금, 의료·간병비 확대 △이태원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 △총리 소속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대책을 피해자나 유가족 단체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내놨다. 유가족이 요구한 진상 규명은 빠졌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공식 선포”라며 “민심을 거역한 채 자식 잃은 부모를 이기려 드는 정권은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임오경 원내대변인도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회적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민의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삼다니 참 지독한 대통령”이라며 “정부 책임을 가리려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국민은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신민정 이우연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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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이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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