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산재법’ 시행 이후, 태아 산재를 인정한 첫 사례다. 참으로 태아, 영유아, 그 부모와 가족에게 어떤 말씀도 드리지 못하겠다. 차마 천지신명의 가호를 빈다는 말씀도 나오지 않는다. 가슴이 몹시 아리다.

‘태아산재법’, 들어보셨는가요. 소위 태아산재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장의3 건강손상자녀에 대한 보험급여의 특례(공포: 2022. 1. 11)를 말한다. 제91조의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제91조의13(장해등급의 판정시기), 제91조의14(건강손상자녀의 장해급여·장례비 산정기준) 등으로 이뤄졌다.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11의4](신설: 2022. 12. 30)에 명시됐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됐다.

문자대로 풀면, 무뇌이랑증(Agyria of brain)은 뇌의 표면에 이랑이 없는 질환이다. 정상적인 뇌의 표면은 고랑과 이랑의 복잡한 연속체로 형성되는데, 이랑은 뇌회(腦回·뇌이랑·대뇌의 표면에서 밭의 이랑이나 둑처럼 솟은 부분)로, 고랑은 뇌구(腦溝·뇌고랑)로 각각 불린다. 뇌이랑 결손을 가진 아이는 정상적인 뇌이랑이 없거나 오직 일부만 형성돼 뇌의 표면이 편편하게 만들어진다. 임상에서 무뇌이랑증은 뇌이랑 결손의 한 유형이고 대체로 뇌이랑 결손의 특징을 나타낸다(질병관리청, 희귀질환정보).

이번 직업병 사례의 노동자는 1979년생 여성이다. 34세인 2013년 3월 복직하고 나서 얼마 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중에 그해 9월 병원 폐업 시까지 약 6개월간 약품을 혼합하여 투석액을 만드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2013년 12월 12일 태어난 둘째 아이는 신생아 때 무뇌이랑증을 진단받았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기타 질환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정부가 임신 노동자가 업무 중 유해인자에 노출된 상태에서 출산한 태아의 선천성 질환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산재 인정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한겨레, 2022.10.18.
정부가 임신 노동자가 업무 중 유해인자에 노출된 상태에서 출산한 태아의 선천성 질환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산재 인정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한겨레, 2022.10.18.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우선, 노동자의 업무 이력과 환경을 보자. 노동자는 대학 졸업 후 23세인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1년 10개월간 일반 병동 간호 업무를 야간 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로, 2005년부터 신장실 투석환자 간호업무를 주간 교대 근무로 각각 수행하였다. 28세인 2007년에 □병원에 입사하여 2007년 9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약 6년간 간호사로 인공신장실 투석환자를 간호하는 업무를 하였다.

노동자에 따르면, 33세인 2012년 5월에 출산한 첫째 아이(남아)는 건강하였고, 병원 환경에서 특이사항은 없었다. 2013년 3월 복직과 함께 둘째 아이를 임신하였다. 같은 해 3월 중순부터 예산 제약으로 기성품 투석액 대신에 약품을 혼합하여 투석액을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노동자는 투석액을 만드는 업무를 전담했다. 혼합할 때마다 초산 냄새가 너무 심해 괴로웠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임신 중에 약품 혼합 업무를 2013년 9월 병원이 폐업할 때까지 약 6개월간 수행하였다.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노동자는 만 34세인 2013년 12월 12일에 만삭(38주 제왕절개)으로 둘째 아이(여아)를 출산하였다. 신생아는 12월 20일과 24일에 A대학병원에서 행한 뇌 초음파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무뇌이랑증을 진단받았다. 2014년 7월에 발달지연을 진단받고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 하에 B대학병원으로 옮겨 재활치료를 시작하였다. 2015년에 뇌병변 1급 장애 진단을 받았다. 2016년 5월 25일에 C대학병원 유전의학과에서 염색체이상을 진단받았다. 부모의 유전자는 유전자 검사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2017년에 D종합병원에서 사지마비를 진단받았다.

노동자는 진술하길, 1남 2녀 중 첫째로 선천성 기형 가족력은 없고, 특이 질병력이나 약물 복용력은 없다. 임신 전에 엽산을 복용하였고, 계획 임신으로 둘째 아이를 가졌고, 임신 중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았고, 평소에도 비흡연자다.

노동자는 임신 중 신장 투석액 혼합 업무 시 초산의 독한 냄새로 괴로웠던 기억이 선명하고 이에 따라 둘째 아이의 기형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11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의 결정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2023년 11월 역학조사평가위원회(서면회의·2023.11.17.~11.20.)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사항을 종합하여 노동자 신생아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노동자는 만 34세인 2013년 12월 12일에 둘째 아이(여아)를 출산하였다. 둘째, 노동자의 둘째 아이는 같은 해 12월 20일과 24일에 A대학병원에서 무뇌이랑증을 진단받았다. 셋째, 노동자는 2007년에 □병원에 입사하여 2012년 첫째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한 후 2013년 3월 복직하였다. 복직하고 얼마 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약 6개월간 투석액 혼합 업무를 전담하였다. 넷째, 선행 문헌에서 나오길, 마취가스, 항암약제, 전리방사선, 유기용제, 다양한 이유로 인한 저산소증 등과 선천성 기형 간의 연관성은 유의적이다. 다섯째, 노동자에 따르면, 하루에 10~15분 정도로 고농도의 초산에 노출됐고 이에 따라 숨쉬기가 힘들었다. 초산을 공기 중으로 흡입하여 급성 폐손상 또는 화학성 폐렴이 발생하여 저산소증이 발생한 환자가 응급실에 입원한 사례들을 보았을 때, 노동자는 업무 당시 진단받지는 않았으나 임신 중 반복적으로 폐손상과 저산소증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저산소증은 뇌와 관련한 기형을 유발하는 잘 알려진 요인이다. 노동자는 임신 1분기에 해당업무를 수행하였다. 임신 1분기는 특히 뇌의 기형발생에 취약한 시기다. 임신기간을 3개 구간으로 나눌 때, 임신 1분기는 임신 13주 말까지다.

노동자의 둘째 아이 신생아가 2013년 12월 무뇌이랑증을 진단받은 이후 약 10년이, 근로복지공단이 2021년 11월 역학조사를 의뢰한 지 약 2년이 각각 떠나간 2023년 11월에 역학조사평가위의 심의가 완료됐다.

노동자와 그 둘째 아이의 고통과 참담함을 꽃 지고, 새가 울고, 별이 진다고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6년 2월 1일

*관련 기사: ‘태아 산재’ 인정 화학물질 단 17종…산재 문턱 높인 노동부(한겨레, 2022.10.18.)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3197.html

편집 : 형광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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