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서울에 가면 유난히 배고픔을 빨리 느낀다. 사람은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지요, 도로는 수많은 자동차가 달리는 컨베이어벨트처럼 보이지요, 고층 건물이 즐비해서 멋진 산은커녕 하늘도 보기 힘들지요, 이처럼 처리할 정보가 산더미로 밀려오니 뇌는 몸속 에너지를 모두 끌어와 용을 쓰는 탓이리라.

이제는 굳이 서울이 아니라도 대도시의 도심이나 고층아파트 주변을 걷다 보면 무언가에 짓눌리고, 시야는 경마 장구인 차안대(遮眼帶)를 쓴 양 좁아지는지라 그 도시의 미관과 자연환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아파트가 들어서기에는 조그만 자투리땅인 자리에 위압감을 키우는 두세 동의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제법 눈에 띈다. 그 도시의 미관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만일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영화관에서 볼 때, 바로 앞 사람의 앉은키가 워낙 커서 시야가 가리자, 그 뒷사람이 일어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점차 뒷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옆 사람들까지 일어서리라. 결국 아무도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할 거외다. 다행히 민주·인권을 중시하는 관객 덕에 얼마 전 ‘길위에 김대중’을 끝자막(ending credits)까지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 삽화에서 자리에서 일어선 행위는 개개인에겐 잠시 참 잘한 짓이나 모두가 그렇게 하니 참 잘못한 짓으로 귀결된 셈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동일한 성향을 띈다는 가정하에 개별행동은 참일지라도 개별행동의 합은 참이 아니라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 부른다. 그 오류는 인과관계의 순환과 누적 원리에 따라 나선형처럼 확대 재생산될 여지도 크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앞사람과 뒷사람은 서로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하기에 그렇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멀리 천왕봉의 방공포대가 보인다. 사진 강맑실 제공. 한겨레, 2022.10.27.
서석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멀리 천왕봉의 방공포대가 보인다. 사진 강맑실 제공. 한겨레, 2022.10.27.

예컨대, 광주광역시에서 도시미관의 여러 상징의 하나로 무등산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십수 년 전엔 광주의 어느 곳에 서든지 간에 무등산은 한눈에 잘 들어왔다. 지금도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위 삽화에 대입하면, 무등산은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요,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은 광주 고층 건물의 대표 격인 고층아파트겠지요. 인과관계의 순환과 누적 원리에 따라 광주에는 지금보다 더 높은 초고층아파트가 즐비해지겠지요.

무등산은 대자연이 민주, 인권, 평화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준 선물이다. 대자연이 주인이기에 무등산에 가지도 보지도 말라고 누군가를 배제할 명분도, 먼저 가서 더 많이 자주 보겠다고 경쟁하거나 경합할 필요도 없으니, 무등산의 자태는 이른바 ‘공공재’라 할 만하다.

어이 하랴! 지금은 무등산 자태가 ‘공공재’라고 감히 말하기에는 부담스럽다. 호연지기를 기르려 하거든, 그저 바라보려 하거든, 무등산을 보려면 직접 등산하거나 고층아파트의 고층으로 이사 가거나 자동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는 일과 같은 여러 가지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러한 일에 뒤따르는 체력과 지급능력이 약한 사람은 ‘무등산 자태’에 대한 감상과 같은 소비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여타 조건이 일정불변일 때, 서울 한강 변에서 한강 조망 여부가 중요하듯이 무등산 조망 여부가 광주에서 고층아파트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면, ‘무등산 자태’에 대한 소비를 둘러싼 경쟁은 점입가경이겠다.

무등산 자태를 공공재처럼 경쟁하지 않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은 채 바라보지 못하는 공간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런 시간이 쌓인 수년 후, 십수 년 후에 광주라는 도시의 미래가치는 지금보다 커질까? “예”라고 말하기엔 부담스럽다. 극초저출산·초고령 사회로 나아가는 속도는 잦아들지 않고,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더 많아 인구의 자연 감소가 눈에 더 띄고, 수도권의 인구 흡입력은 줄어들지 않아 지방 인구의 사회적 감소가 가속하는 상황은 통제하기 힘든 환경으로 자리 잡아 보여서 그렇다.

속말로 미증유의 인구감소시대를 지나 확대재생산에서 단순재생산으로, 다시 축소재생산으로 이행을 촉진할 실마리가 뒤엉키는 현실에서 ‘무등산 자태’의 공공재 성격 회복 혹은 강화가 광주의 의제로 이른 시일 내에 설정되길 기대한다.

*이 글은 <남도일보>(2024.2.6.)에 실린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 [남도일보 화요세평]합성의 오류, 도시미관과 광주 무등산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7633

*관련 기사: [강맑실 칼럼] 산이 남긴 것(한겨레, 2022.10.27.)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4586.html

편집 : 형광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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