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평화를(from the river to the sea , palestine will be free)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에서 이스라엘 규탄 집회/ 사진출처: 필자  촬영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에서 이스라엘 규탄 집회/ 사진출처: 필자  촬영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었다. 작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불과 몇 달 만이다. 이스라엘은 수백만 사람들에게 물과 의약품, 연료공급을 단절했고, 고향을 떠나라고 하면서 무차별 폭격했다. 심지어 병원 시설까지 폭격했다. 사망자의 7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약자들이다. 실시간으로 사망자 수가 중계되듯 하던 언론의 관심도 이젠 시들해졌다.

현재 누적 사망자 수가 얼마인지 알기도 어렵다. 주요 언론은 전쟁범죄, 학살 등의 보도를 반유대주의란 이름으로 축소, 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유대권력과 무관하지 않은 데서 연유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1948년 이후 전쟁, 지금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보복학살 전쟁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비롯한다. 과거 오랜 세월속에 유대인은 가해자가 아닌 일방적 피해자였다. 그 2천 년 이상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나쁜 인간, 악덕 상인, 이단자로 인식되어 보편적 직업인 농업이나, 공직 취업 등 시대속에서 변변한 직업을 갖기도 어려웠다.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처럼 매정하고 탐욕스러운, 미움 받는 고리대금업자로 묘사되었고, 기독교인은 자비롭고 인자한 善인으로 기술되었다. 토스토이에프스키 등 유명한 문학 작품속에 등장한 유대인은 모두 惡인으로 나타난다.

반유대주의 (Anti-semitism)

유대인은 독특한 민족이다. 유대인은 역사에서 항시 사회와 국가에서 동화되지 않았다. 선민의식, 토라 경전, 유대인식 생활습성에 따른 그들만의 커뮤니티로 담을 치고 결속해서 생존했다. 유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사는 나라가 어디든 그들이 어김없이 드러내는 반국가성, 반사회성이다.

유대인 문제는 그 기원이 유구하다. 항상 유대인들은 자기들 고유한 문화로 연대하여 사회, 국가로부터 분리되어왔다.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의 고난의 세월 속에 살아남았다. 로마 시대 로마 황제들은 당시 국가, 사회적인 골치였던 유대인 문제를 유대 종교의 문제로 인식하여 안식일 준수 금지, 토라 학습 금지 등 조치를 취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도 기독교인과 혼인을 금지시키고 농지 대여 금지, 재산권 불인정 시나고그 건립 금지, 집단  등을 추진했다

이는 비단 로마시대만이 아니라 십자군 원정 시대, 이후 근대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강제추방과 개종 압박, 집단학살이 수 세기 동안 이어졌다. 근래 제정 러시아 시대에도 그러했다, 차별과 배척, 강제 개종, 학살 등의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유대교는 해체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았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은 유대인이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볼셰비키 초기 혁명정부의 중앙위원, 정치국원의 80% 이상이 유대인이었고 지도자, 당원들의 다수가 유대인이었다.(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파워/ 박재선) 제정 러시아 치하에서 차별과 억압, 개종 압박, 집단 학살이란 절체절명의 고난의 삶이 체제 변혁에 앞장서게 한 것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감은 설상가상으로 나치 히틀러에 의한 600만 명의 인종학살로 나타났다. 이같은 인종학살, 차별, 증오가 시오니즘, 유대국가 건설로 이어진 것이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결과되고 있다.

학살의 공수攻守가 바뀌었는가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침략전쟁 반대, 학살 중지를 요구하는 전 세계인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극우 전쟁광으로 이스라엘 내의 평화, 진보세력의 목소리 조차 외면하고, 미국 등 해외 유대인들의 전쟁 중지, 학살 중단의 외침까지 개무시한다. 최근 가자 지구 최남단 도시인 라파까지 공격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 도를 넘어 팔레스타인의 씨를 말리려 작정한 듯하다.

이렇게 단기간에 수만 명의 사망자, 그것도 대부분 어린아이 등 비무장 병력을 살해한 것은 원폭에 의한 경우 외에는 근래 역사에 유례가 없을 듯하다. 민족 학살, 홀로코스트를 당한 민족이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것이고, 유럽사회의 반 유대 정서를 넘어 전 세계로 반유대주의가 퍼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침묵하는 세계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침략과 불법, 잔혹행위는 항상 미국 정부와 의회, 언론, 자본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외교적 보호를 받는다. 과거 2천년 여 세월 기독교로부터 탄압, 멸시를 받던 유대가 이제는 자본의 힘으로 기독교 정치문화와 와 연대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민간인의 학살, 전쟁범죄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인종청소는 유엔 UN 헌장,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과감하게 침략과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형제국이라는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대 배후이다. 근년에 와서는 세계 패권국 미국은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의 위성국이 된 듯하다.

UN은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미국과 미국 위성국이 이스라엘을 철벽 방어하고, 세계 유수의 주요 언론은 유대인 수중에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전쟁을 비난하는 언론은 보도를 통제받는다. 소위 사적 제한이다. 반유대주의란 올가미로 봉쇄한다.

유대인의 문제에 대하여

부르노 바우어는 유대인은 사회국가적 문제란 인식으로 유대교의 소멸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유대인이었던 마르크스는 그의 명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에서 부르노의 유대인 문제 인식에 공감을 하면서도 “종교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문제, 자본의 논리에 기인한다"라고 부르노를 비판했다.

유대인 중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건전한 인간의 상식과 양심의 소유자는 이스라엘에 전쟁 중지를 요구한다. 미국 내 진보적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 공격을 규탄한다. 유대인 평화단체( Jewish voice for peace /If not now)들이 휴전을 요구하고, 전쟁 반대 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하여 행동한다.

노암 촘스키는 그의 저서 “peace in the middle east? refletion on justice and nationhood에서 시오니스트 지도자 밴 구리온(이스라엘 총리 역임)은 ”우리는 한 민족집단이 다른 민족집단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현재 미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세계 앞에 선언한다. 유대 국가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유대 국가는 결국 팔레스타인에게 유대인의 아랍인 지배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 전 이스라엘 좌파 정당 지도자 berl katznelson 베를 카츠넬슨은 시온주의 이상은 지배가 아닌 평화 공존이라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여 난국을 풀어보자는 집단들은 이스라엘 내부에도 존재하였으며 장기적으로 이 지역의 정의로운 평화를 정착시킬 최선의 희망은 socialist binationalism (사회주의적 2민족 국가 체제)라고도 했다. (노암 촘스키 /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북폴리오 )

건국 당시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평화와 공존, 상생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상호적대, 거부감, 오랜 기간의 참혹한 전쟁 속에 이스라엘의 평화, 진보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지금 극우 베냐민 네타나후의 광기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녹여 낫을

유대인은 그 총인구는 대략 1,500만 명 정도로 보지만 전 세계의 자본, 언론, 정치, 세계를 장악하다시피 한다. 언론과 문화, 과학 모든 분야에 유대인의 영향력은 대단하며 유대인의 우수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유대인이 인류에 기여한 바도 매우 많다. 자본의 위력이 강해지는 시대로 들어서면서 유대인은 더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유대 권력이 세계 패권국인 미국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통제 못하고 있지만 반전평화의 목소리가 조직화되고 강화되면 미국 정치도 바뀌고 이스라엘도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대인이자 미국의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중단을 위해 적극 개입하지 않는 조 바이든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네타냐후 정부를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샌더스 의원은  “왜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가 무엇이냐’고는 묻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하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 분쟁은 하마스의 로켓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해법을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 정착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펴온 게 근본 원인이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존엄,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정신이다. 이것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모든 유대인은 형제이다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의, 휴머니즘의 기반 위에 팔레스타인의 보편적 인권과 공존의 노력을 한다면 팔레스타인의 참상, 갈등은 최소화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망각은 노예에 길로 기억은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유대인의 명언은 휴머니티, 상생. 방어, 발전, 공헌에서 적용되어야지 배타적 민족주의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한민족도 온갖 외세의 침탈을 당하고, 전쟁의 참상을 겪고 민족이 분단되어 핵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민족이 겪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지 않을 때 기억은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도 이스라엘, 하마스 양측간 이해와 타협을 촉구하면서 ”역사상 모든 평화조약은 절대적 정의가 아닌 타협에 기인했다며“ ”정의와 평화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평화를 선택한다“고 했다.

한편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권리란 대등한 힘을 가진 상대들 사이에서만 들먹일 수 있을 뿐이다. 강한 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약한 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에서는 이것이 행동 원칙이다.--- 투키디데스. 끝. 

                          가자 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사진출처: 한겨레 신문
                          가자 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사진출처: 한겨레 신문

 

편집 : 심창식 편집장

김영수 주주  kimys@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