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성 원칙을 배반하는 의료계와 정부
히포크라테스 의술은 의료, 의약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식이요법(다이어트)
한국에 없는 1차의료(의료 개입 이전의 완화의료, 개호[介護]예방)
유럽, 일본, 대만에는 있다.

돌 맞을 각오로 말하는 한국 의료의 진짜 문제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인내과 의사) (유투브 화면캡쳐: https://m.youtube.com/watch?si=u0v5OlIsJ2xDYUwv&fbclid=IwAR2qlV-TQr9G_-3-cfMoIx3pkWGaEzNKCaDgF7UA-iEyX3j_TXOi9k33X0M&v=f8HXRIppM-o&feature=youtu.be)
돌 맞을 각오로 말하는 한국 의료의 진짜 문제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인내과 의사) (유투브 화면캡쳐: https://m.youtube.com/watch?si=u0v5OlIsJ2xDYUwv&fbclid=IwAR2qlV-TQr9G_-3-cfMoIx3pkWGaEzNKCaDgF7UA-iEyX3j_TXOi9k33X0M&v=f8HXRIppM-o&feature=youtu.be)

피부과 의사 함익병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천하는 의사는 없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 돈을 벌려고 하지,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 수를 늘리면, 의사의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고 함익병은 말한다.(참조, 함익병피부과, 의대정원 1,000명 확대? 잘못된 정책인 이유, https://m.youtube.com/watch?v=lm0P6OvU_2U)

함익병은 ‘의사수를 늘리면’ 비로소 의사가 줄어든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갖은 방법을 쓰게 된다고 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개인차가 없지 않겠으나, 당장에도 의사들은 “이득을 챙기기 위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핵심은 ‘누가’ ‘언제’ 그렇게 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득을 챙기는 방법을”을 쓰는 것이 언제나 누구에 의해서나 가능한 환경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함익병은 미래 아닌 현재 의료계의 행태를 본의 아니게 누설하고 있다.

함익병은 히포크라테스의 진면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서 “의사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생각하라”고 한 것을 두고, 함익병은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도구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선서를 지키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이익을 좇는 이기적 존재이고, 돈을 벌려고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진수는 그 선언적 형식의 선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방법에 있다. 그 치료는 반드시 의사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의하면 의사가 아무리 환자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해도 그 뜻을 이룰 수가 없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의료와 약물치료 자체를 최소화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근원은 약물이 아니라 섭생(다이어트 diet)에 있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인위적 시술뿐 아니라 약물치료조차 금한다. 모든 약물은 독약이므로, 곧 죽을 병 아니면 약물을 쓰지 말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다. 의사에 의한 의료가 개입할 공간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도구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이지만, 그런 선서를 지키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고 한 함익병의 단언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의학철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한 데서 나온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의사의 진료행위는 보충적으로만 작용해야 한다. 건강은 반드시 의료인이 개입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의술은 의사에 의한 적극 의료행위가 아니라, 식생활(섭생)을 통해 이루져야 한다는 뜻이다. 의료계가 전면에 나서서 온통으로 국민 건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듯, 사람 몸을 독극물에 절여놓는 것과 같다. 파김치가 된 인체는 그 자체로서 자연이 주는 저항력, 치유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의철학(醫哲學)에 대한 폄훼는 과잉진료가 횡행하는 한국의 현실을 반증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도구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선서를 지키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는 취지의 함익병의 발언은 의사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철학에 따르면, 의사가 전면에 나서서 콩놔라 팥놔라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술은 물론이고 약의 사용조차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의약이 차지하는 역할의 최소화 관련하여 한국 의료계가 가진 문제점은 1차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OECD 평가) 1차의료란 개호(介護)예방(일상의 예방적 돌봄 regular preventive care)을 뜻한다. 유럽, 일본이나 대만에 있는 개호예방 개념 자체가 한국에는 없다. 이때 ‘돌봄’은 의사 혹은 병원이 주관하는 의료행위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 구청, 동사무소 등에서 주관하는 서비스와 다르다.

1차의료 개념이 없는 한국에서는 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그 크기에 따라, 1차 의료기관(동네 의원), 2차 의료기관(병원, 종합병원), 3차 의료기관(500개 병상 이상 종합병원)으로 나누고, 이들 간 환자의 전달체계라는 점을 담론으로 삼는다. 의료기관을 크기에 따라 3개로 구분하는 것은 의료 행위의 질적인 차이로 나누는 방식(1차: 예방적 돌봄, 2차: 약물치료, 3차: 수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뿐 아니라, 영국의 경우 세 가지 의료 중 1차의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의사의 적극적 역할이 최소화된다는 뜻이다.

OECD가 말하는 1차의료란 의사와 병원이 주체가 되는 전달체계가 아니라, 의사에 의한 적극 의료가 개입하기 이전의 돌봄 혹은 완화의료를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의료기관 간 관계만을 거론하고, 의료의 질을 달리하며, 적극적 의료 개입 이전의 예방적 개호(개별적 보호)로서의 1차의료의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참조, 정희원, https://m.youtube.com/watch?si=u0v5OlIsJ2xDYUwv&fbclid=IwAR2qlV-TQr9G_-3-cfMoIx3pkWGaEzNKCaDgF7UA-iEyX3j_TXOi9k33X0M&v=f8HXRIppM-o&feature=youtu.be)

의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환자를 대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이견이 존재한다. 함익병은 “돈 생각하지 않고 환자를 위하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하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고 했으나, 이두익 백령병원장은 “의사는 부·명예 쌓는 직업이 아니라, 환자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 그러하다.(중앙SUNDAY, 2024.3.16.) 전자는 현실을, 후자는 비현실적 당위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든, 적극적 의료 개입 이전의 1차의료가 중심이 되는 의료체제에서는 의사가 돈을 벌고 싶어도 벌기 힘들고, 과잉진료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료가 돈벌이 수단 자체로 전락하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한국의 병원 접근성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사실을 두고, 한국 의료가 양호한 상태에 있고 또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등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1차의료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의료가 과다한 약과 수술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은 병원 접근성 등과는 다른 차원에서 한국 의료의 야만성을 노정한다. 인체가 의료 자본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한국은 OECD국가 중 약물 사용량에서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위 정희원 참조), 과잉진료가 만연해있다.

한편, 보충적으로만 개입해야 할 의료계가 적극 나서서 의료와 의약으로 사람의 몸을 난도질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은 월권하는 정부권력과 같다. 이는 보충적으로만 개입해야 할 정부권력이 전면에 나서서 국민 민초의 권리와 자유를 적극 침해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정부 권력이 보충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정부의 개입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제일 마지막에 나서야 하고, 정도로서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권력의 보충성을 위배한 사례는 한동훈(전 법무부장관, 현 국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걸핏하면, 마약단속 하겠다고 나서는 것에서 드러난다. 기백 명이 밟혀 죽은 이태원 참사 발생시, 국민 민초의 안전을 측면에서 지원해야 할 인력을 두 가지로 월권 사용한 것으로 회자한다. 하나는 한정된 정부의 치안인력을 두고, 시민 시위대를 염려하여, 시민이 아닌 대통령 개인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을 호위하는 데 집중 투여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태원에 모여드는 남녀노소 축제 인파를 대상으로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데 치안인력을 집중 투입함으로써, 시민의 안전 도모가 아니라, 사생활의 자유 영역을 침해하는 데 적극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마약사범을 검거함으로써 정부가 치안을 확립하기 위해 어떻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를 내보이려는 동기도 없지 않았다 하겠다. 권세 있고 돈 있는 큰 도둑은 건드리지 못 하고 만만한 상대나 골라 때리자는 심보로 읽힐 수도 있다.

배우 이선균이 마약 사범의 혐의를 받고 시달리다 급기야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이태원 참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치안 유지에 골몰하는 행태를 연출하기 위해 공권력이 ‘마약단속’이란 빌미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정작 시민의 안전을 방기한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엉뚱한 데 투입됨으로써, 시민은 국가로부터 자유의 영역을 침해당하고, 오히려 치안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게 되었다.

의료권력과 정부권력이 보충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국민 민초 시민을 볼모로 하여 적극 개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시민의 건강을 해치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 최자영  ,그리스 이와니나 대학교 의과대학 보건학부 의학박사)

편집 : 최자영 객원편집위원 , 심창식 편집장

최자영 객원편집위원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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