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추구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한 뜻 높이 기려야

한 때 주먹으로 세상을 주름잡던 무하마드 알리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할까? 무하마드 알리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유가 단순히 싸움 잘하는 챔피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는 18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출입을 금지하자 인종 차별에 항거해서 그 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정신적인 스승이자 흑인인권운동가인 말콤 엑스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캐시어스 엑스(X)’로 한 때 부르기도 했다.

그는 금메달을 강물에 버린 뒤 프로로 전향하여 WBC·WBA 헤비급 통합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흑인 노예에게 붙여주었던 성을 쓰지 않으려고 ‘캐시어스 마셀루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베트남 전쟁당시 미국정부로부터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베트콩은 나를 깜둥이라고 무시하지 않소. 내가 왜 베트남 사람들을 죽여야 한단 말이오?” 라며 징집을 거부하였다. 그는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는 말을 남기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였고, 인종차별 반대투쟁인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것 때문에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야했다.

이 정도면 무하마드 알리를 제대로 몰랐던 사람이라도 저절로 고개 숙여 애도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에는 그의 복싱 중계 장면만을 보면서 ‘몸이 덩치보다 참 날렵하고 주먹이 참 세구나’ 그런 생각만 했지 그가 흑인 인권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 그가 “나비 같이 날아, 벌처럼 쏘겠다.”라고 한 말만 멋있게 들렸을 뿐이다.

우리 나라의 운동선수와 예술인 중에도 이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유달리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며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거나 무관심한 것이 더 정치적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그건 중립이 아니라 일부러 판단을 피하는 이기적 선택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입장을 가짐으로써 감수하게 될 손해를 피하겠다는 것이니까.

그건 중립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약자의 편을 들다 손해 보기 싫다는 것이며, 가만 있다가 떡이나 얻어먹겠다는 이기적 수작 아니겠는가. 가만히 있다가 강자의 승리를 지켜보는 것이나 고분고분 강자편을 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중용(中庸)에서도 ‘中者는 天下之正道요 庸者는 天下之定理라(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바른 도요, 庸이라는 것은 천하의 정한 이치이다)’하였다. 중용이라는 것은 아무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른 도를 따른다는 뜻이리라.

무하마드 알리는 식당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금하는 것에 항의하여 올림픽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렸고, 전쟁을 반대하여 챔피언벨트를 빼앗기고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나서도 그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나라 운동선수 중에도 그런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앞으로는 그런 무하마드 알리 같은 존경받는 운동선수를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 이미진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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