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흔히 원만하게 살자고 한다. 과연 그리해야 하는가?

오래 동안 굽이친 강을 보면
바깥쪽 가장자리는 모래 등이 부드럽게 쌓이지만
안쪽 가장자리는 절벽이 날카롭게 생긴다.

오랜 세월을 거친 인생에는 양면이 있다.
세련하게 날카로운 면도 있고, 부드럽게 원만한 면도 있다.

날카로운 절벽에서 인생 의미를 느끼는 걸 나는 아직 더 좋아한다.

며칠 전 서울 인사동 아트갤러리에서 우리가 주선하고 우리 시대 거인 채현국 선생의 배려로 ‘베트남’에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이 있었다.
의식 있는 여러 예술인과 우리학교 선생님들을 모셔 채현국 선생, 구수정 박사, 송필경 선생 그리고 나 이렇게 이야기 하고 청중의 질문을 주고받았다. 
베트남에 관한 채현국 선생의 문제의식은 다년간 고민한 나보다 더 날카롭고 폭넓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83세이신 채현국 선생은 아직 불의에 대해 너그러이 눈 감을 생각이 추호도 보이시지 않으셨다.
“친일을 역적으로 흔히 말하는 데 이건 돼먹지 않은 이야기야.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거잖아. 이승만 이래 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은 부일(附日) 즉 일본에 빌붙은 작태야, 부일배(附日輩)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버젓이 좌지우지하잖아.“

채현국 선생은 당신이 지닌 어마한 기득권을 젊은 시절 일찍이 내려놓았다. 팔순을 넘기고도 불의에 추호도 타협하지 않는 날카로운 지성만은 놓치지 않고 계시는 걸 어제 대담에서도 다시 확인했다.

젊은 시절 한가닥한 사람들이 늙어서 시대정신을 팽개치고 적당히 안락만을 누리는 얄팍한 이 세태에서, 
날카로운 지성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시는 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7406.html

[편집자 주] 채현국 선생은 지난달 20일 <쓴맛이 사는맛!> 미술전시회에서 '호치민과 베트남'을 주제로 토크쇼를 했다. 글쓴이(고교교사)가 사회를 보았고 구수정 베트남 역사학자와 송필경 <왜 호치민인가?> 저자가 대담에 참여했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희종 주주통신원  hanion@han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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