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처럼 우직하고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지난 8월, 31년 6개월의 교직생활을 서울 신길초등학교에서 마치고 명예퇴직한 정영훈(57) 한겨레 창간주주다. 그의 성정은 어려서부터 이미 나타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식으로 받은 빵을 빼앗은 덩치 큰 아이와 싸워 약자에게 빵을 되돌려주었다. 이런 게 알려져 반 아이들의 적극 추천으로 이후 반장으로 연속 선출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1등, 고교 3년 장학생이었지만 이건 습관화 한 ‘독서’ 덕이었다. 

한겨레 주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남들이 많이, 쉽게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정영훈 주주도 마찬가지다. 우등생으로 고등학교를 다녔고 최고의 학벌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풍부한 독서 덕에 세상 일에 일찍 눈을 떴다. 박정희 독재 정권의 과오와 전두환 계엄군의 폭압을 보고 고3이지만 공부를 때려치우고 광주와 동시에 목포에서 벌어진 민주화 항쟁에 두 달 간 참여하고, 끔찍한 진압 이후로도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다.”

시민의 눈과 귀가 막혀 어두우면 부당한 일을 당한다는 걸 깨달은 그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울교대에 입학했으나 대학생활은 그에게 낭만일 수 없었다. 교대는 정부의 대학이고 전국 대학 중 당시 가장 보수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대표를 맡아 교육사회 개혁론을 발표하고, 학원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결국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지도교수의 구명활동으로 다행히 복학해 무사히 졸업해 교사로 임용되었지만 학교에서 시험점수 위주 교육 반대, 이승만 묘지 참배 묵념 비판 등을 하다가 1년도 안 되어 해직되었다." 89년 전교조 창립멤버가 된 배경이다.

이런 삶을 산 그에게 2017년 ‘촛불’의 의미는 남다르다. “시민이 개, 돼지 취급 된 것은 민주화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며, 위대한 시민의 역사는 기록되고 그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최순실, 박근혜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다.”

광화문 촛불 집회가 시작될 무렵인 작년 10월 그는 정현덕, 허인회씨 등과 민주실현주권자회의를 만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일찌감치 나선 후 지금은 『촛불혁명, 시와 글로 찬연하라! -시민의 함성』 책 출판 및 역사기록 프로젝트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국민위에 군림했던 부패한 권력을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세웠다. 평화로운 촛불시민혁명은 국내외적으로 민주주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역사다. 이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혁명의 과정에서 썼던 다양한 표현물들을 모아 멋진 책으로 출판하려 한다.” 

지난 8월부터, 지난 정권 첫 촛불집회 때부터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썼던, 시ㆍ대자보ㆍ구호ㆍ깃발 문구ㆍ만평ㆍ격문ㆍ사진 등 시적인 표현물들을 모으고 있다. 현재 60여 명이 참여해 250편 정도가 들어왔고 앞으로 100여 명 이상 더 모집할 계획이다.

이렇게 곧은 삶을 산 그에게 부당한 주홍글씨가 남아 있다. 89년 학교에 있으면서 전교조 현장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정직3개월’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교직생활 해피엔딩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퇴임에 따라 주어질 문재인대통령 명의의 표창 또는 훈장을 받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직 중 징계 또는 불문경고 처분을 받은 자는 표창을 제외한다는 퇴직교원 표창 지침을 내세워 못 준다더라. 많은 불이익과 희생을 무릅쓰고 평생 교육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애썼고, 그것을 이유로 해직과 정직을 받아 지금껏 손해를 당해 왔는데, 포상은 못 할망정, 아무런 민주화 운동 등에 관여하지 않아 징계 따위와 무관한 일반 퇴직교원 모두에 주어지는 정부포상에서 내가 제외 된다니 어처구니없다.”

그는 끝으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하루아침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촛불시민행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스스로 주체로서 깨어있는 시민들이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가야한다. 이런 의지를 다지고 행동하는 첫 걸음인 『촛불혁명, 시와 글로 찬연하라! -시민의 함성』 책 출판 및 촛불정신에 따른 교육사회 변혁 모임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보기]

『촛불혁명, 시와 글로 찬연하라! -시민의 함성』 책 출판 및 역사기록 프로젝트 참여하기 http://docs.google.com/forms/d/e/1FAIpQLScYP1Se_Nz6nUHqvagO8aR1rRDR9rYyf3tF52ffBlY669HvIQ/viewform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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