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재벌 총수들에게 늘 적용되던 ‘3·5 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석방)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되풀이된 겁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으로 다뤘습니다. 그런데 ‘관점’은 확연하게 갈렸습니다. 뉴스는 하나였지만,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의 시선은 정반대로 향했습니다. 마치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종합일간지 5개와 경제지 2개의 보도를 비교해봤습니다.

먼저 사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각 언론사의 관점이 응축돼 있는 글이 바로 사설이니까요. 7개 신문의 사설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조선)
-이재용 집유…법리와 상식에 따른 사법부 판단 존중해야(중앙)
-이재용 집유…특검 여론수사에 法理로 퇴짜놓은 법원(동아)
-특검의 ‘누더기 기소’에 제동 건 이재용 2심 재판(한국경제)
-삼성은 심기일전해서 글로벌 정도 경영에 매진하길(매일경제)
-이재용 ‘솜방망이 판결’, 유전무죄 부활인가(한겨레)
-이재용 집행유예는 재벌 봐주기, 납득 못한다(경향)

제목만 봐도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이 중에서도 압권은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작년 1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는 ‘삼성 장학생’이라는 매도와 문자 폭탄 피해를 입었다. 누구라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미 사법부 지도부도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사람들로 교체됐다. 이 상황에서 재판부가 순전히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에는 아직 법과 양식(良識)을 우선하는 꼿꼿한 판사들이 있었다. 2심 판사들도 온갖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를 받치는 기둥이 아직은 건재하다고 느낀다.”

반면 <한겨레>는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판결”, “희대의 ‘유전무죄’ 판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상고심에서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이번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재용 ‘정경유착 굴레’서 풀려났다(조선)
-법원 “정경유착 없었다” 이재용 석방(중앙)
-353일만에…이재용 석방(동아)
-“묵시적 청탁 없었다”…이재용 석방(한국경제)
-“승계 청탁없었다” JY 353일만에 석방(매일경제)
-이재용 면죄부…“삼성이 겁박당한 뇌물 사건” 변질(한겨레)
-이재용 풀려났다(경향)

1면 머리기사 제목도 단연 <조선일보>가 발군입니다. 무려 ‘정경유착 굴레’에서 풀어줬군요. <조선일보>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법 피해자’ 이미지를 씌워주고 싶었던 걸까요?

내친김에 1면 사진도 비교해 보겠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1면에 이재용 부회장 사진을 썼는데,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에 실린 이 부회장의 표정이 다릅니다. <한겨레>와 <경향>에는 웃는 표정의 사진이 실린 반면, 나머지 5개 신문에는 모두 굳은 표정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참 공교롭죠? 

일간지 1면 사진은 1면 머리기사만큼이나 비중이 큽니다. 각 언론사들은 나름의 ‘가치’를 담아서 신중하게 1면에 쓸 사진을 고릅니다. 같은 사안을 다룬 사진이라도 어떤 각도에서, 어떤 순간을 포착했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집니다. 

물론 보수언론이 굳은 표정의 이재용 부회장 사진을 1면에 배치한 것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듭니다. 웃는 표정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호송차로 걸어가는 장면이고, 굳은 표정은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장면인데, 출소하는 모습이 더 기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편집자 주] 이종규 <한겨레> 참여소통에디터는 1994년 한겨레 입사, 사회정책팀장, 문화부 공동체팀장, 사회2부장, 디지털부문장을 지냈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종규 <한겨레> 참여소통에디터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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