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30년을 향하여

그와 나는 같은 독자였다 유원진 주주통신원l승인2018.04.16l수정2018.04.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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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일정이 끝나고 저녁 후 3박 4일 내내 우리를 안내하던 지도원과 함께 당시 우리가 묵던 고려호텔 지하에 있는 가라오케(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 먹으며 마신 반주가 아쉬웠던 탓도 있지만 며칠을 같이 움직이면서 느낀 친밀감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욕심이 2차를 하자고 조른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노래책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는 오래된 트로트 곡 몇 개와 팝송뿐이었다. 그가 북측 노래 한 곡, 내가 팝송 한 곡을 부르고 우리는 더 이상 노래는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족화해협회의 업무로 두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다는 그는 남측의 사정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 2005년 11월 24일 평양을 방문했을 때 지도원 동무와 함께

 

나는 도착하던 날 여권심사 때 남측의 모 신문에 대해 보였던 북측의 노골적인 적개심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오히려 남측의 언론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마침 얘기를 잘 꺼냈다며 그 신문의 왜곡보도에 대해 언급했고, 그럼에도 그 신문이 남측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라는 사실에 대해 분개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해 악담을 하고 왜곡 보도를 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네들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렇게 악의적으로 말하고 거짓말을 하는데도 그 신문을 가장 많이 보는 남조선 동무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네다. 아주 악질적이고 반민족적인 집단 아닙네까?”

나 역시 폐간 운동까지 하면서 미워하는 신문이었지만 막상 북측인사로부터 노골적인 비난을 들으니 심정이 아주 묘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아차 싶었는지 나에게 동무는 어떤 신문을 보느냐고 물었다. 한겨레를 본다고 대답해 주었더니 분노에 차 있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바뀌며 자기도 그 신문을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의아해서 평양에서 한겨레를 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매일 신속하게 볼 수는 없지만, 업무상 남조선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자주 본다며 한겨레야말로 북남이 모두 믿을 만한 신문이 아니겠느냐며 악수를 청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한겨레의 독자로서 자주 머릿속에서 맴돌던 문구였다. 옳은 것이 거짓을 이기지 못하고 진실이 왜곡 속에 파묻히는 꼴을 보면서 한겨레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도 하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피아 언론들의 횡포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도대체 진실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고 회의적이 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보라... 촛불을 켜게하고 그 심지를 돋우고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 나라를 다시 만들자 하며 앞에서 인도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한겨레였다. 그가 없었다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도, 촛불혁명도, 탄핵도 그리고 민주정부도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쯤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박근혜스러운 대통령이 북한과 싸우고 있고, 우리는 밤낮으로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며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30년 동안 한겨레가 걸어온 길은 굳이 북측 지도원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고난의 행군이었을 터였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 자본가들을 친하게 두지 않고, 권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권력과 거리를 두며 버텨온 시간들은 쉽지 않았을 터였다. 수많은 보도들을 통해 진실이 바로 서는 세상을 꿈꿔온 시간들은 아직 미완일 터, 또 다른 30년이 앞에 놓여 있으니, 30년 후 한겨레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통일 한국에서 남북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 되어 있지 않을까.....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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