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항일운동의 이모저모5

마광남 주주통신원l승인2018.05.10l수정2018.05.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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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소안노농대성회사건

단체의 조직연대로 보아서는 배달청년회보다 늦었지만 사건의 발단은 소안노농대성회 사건이 배달청년회 사건보다 앞선다.

1924년 9월 15일 조선노농총연맹의 산하단체로 소안노농대성회가 결성되던 날 총회 주체 측과 일경이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총회 측 의장인 송내호가 개회를 선언할 무렵 일경 추상민이 회의를 간섭할 목적으로 무단 입장하였다.

이때 의장이 “여기가 어딘데 회원도 아닌 일본 순사 놈이 감히 입장하느냐” 고 고함치자 회의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본 순사를 힘으로 쫓아내버렸다.

일제는 이것을 사건화 하여 정남국, 최형천, 신광희, 백형기, 이갑준, 신만희, 송내호, 신동희, 박홍곤, 김정태, 박기숙, 신준희 최기정 등을 투옥시켰다.

재판에 부쳐진 이들은 집무방해죄, 협박죄, 보안법 위반 등을 적용하여 송내호 징역 1년, 최형천, 신준희, 정남국은 징역 6월, 신광희, 신동희, 백형기, 이갑준, 박기숙은 징역6월에 2년 집행유예, 강정태, 신민희, 박홍곤, 최기정은 면소되었다. 그런데 1925년 10월 1일 형기만료로 석방된 정남국, 최형천, 신준희 등은 석방되기가 무섭게 1925년 10월 17일 대성회 5차 총회를 열고 활동을 재개하는 외경스러움을 보여준다.

또 신준희는 1925년 11월 30일 해방동맹자위원의 자격으로 진도에 가서 필연단을 조직하였으며, 1926년 4월 28일에는 완도노농연합회 의장으로 활약하고 완도의 나봉균과 전남노농연맹 출석대의원으로 피선된다.

이들 투사들에게는 감옥이 생활의 전부였다.

10, 모도배달청년회사건

▲ 사진출처 : 한겨레, 항일투사의 고향 모도

1923년 9월 청산면 모도리 천병섭(25세), 장한준(19세 일명 석칠), 정두실(24세), 최창규(19세), 천홍태(24세), 서재만(20세) 등 14명이 개량서당을 지원할 목적으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박열(무정부주의자로서 히로히토를 폭탄으로 죽이려다 거사 직전 체포되어 투옥), 정남국, 박홍곤 등과 접촉하면서 의기투합하고 애국혁명가를 보급하였다. 1925년 10월 21일에는 대모도 동, 서리와 소모도 전 주민을 대상으로 집회를 갖고 “일제는 필연적으로 망한다” 고 역설하면서 항일운동의 방편으로 사회주의 혁명론을 전개하였다. 특히 천병섭은 일본에서 법대를 나온 지식인으로 동아일보 완도주재기자로 활약하면서 군내 각 마을을 순회, 일제만행을 폭로하는 강연을 했다.

이들은 검거 후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장흥지청에서 천병섭, 장한준 징역 1년, 정두실 징역 10월, 최창구, 서재만 징역 6월, 그리고 전홍태는 1926년 10월 4일 같은 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의 처분을 받았다.

한 가지 애석한 것은 이 사건에 함께 투옥되었던 천병래가 구속 6개월 만에 옥사한 점이다. 모도배달청년회는 소안배달청년회와 연대하고 있었다. 소안의 정남국과 박홍곤 등이 이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11, 여수수산학교사건

1931년 여수수산학교 안에 학생항일운동단체가 조직되었다.

항일사상이 화고한 14명이 독서회를 조직하고 동지들을 규합 매주 1회씩 회합을 갖고 토론을 하면서 일본사회를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사상을 선전하였다. 때로는 시내 종고산 산정에서 모임을 갖고 상호간의 단결을 꾀하는 한편 끝까지 일제와 맞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이들은 학교 내에서도 영향력 있는 학생들이었다.

14명 중에는 여수, 장흥출신들이 함께하였고 완도출신으로는 군외면 조병호(20세), 고금면 오노을보(20세). 고금면 김양호(19세), 청산면 차용헌(20세) 등이 활동하였다. 이들은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931년 9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조병호 징역 1년 6월에 3년 집행유예, 오노을보, 김양호, 차용헌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3년 집행유예를 내렸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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