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오딧세이아 11 지식의 귀환

十七年丁未        영락17년 모자란 까마귀[未]들의 양떼[未]를 고무래[丁]로 쓸어 담은

敎遣步騎五萬      중화[敎]가 ‘한물간 말[步馬]’을 폐기[遣]하고 五萬을 차별화[奇]하매

掃盡倭 倭還侵平穰 버려진 말을 사면[掃]하자 부역자[倭]들은 도리어 평양을 투사하였다.

王師四方合戰      왕王은 사師가 처방[方]하면 포획[四]하고 전율[戰]하면 합일[合]하며

斬煞蕩盡          부활[蕩]을 참수[斬]하고 죽음[盡]을 도륙[煞]하였으니,

所獲鎖鉀          소멸[肖]하고 싹[甲]틔우는 족쇄[鎖]갑옷[鉀]과

一萬餘領          ‘전갈을 합일[一萬]하는 공작새들의 강령[餘領]’을 노획[獲]당한[所]

軍資器械 不可稱數 선비[軍]의 그릇[器]과 자資의 기구[械]는 꾸짖음[數] 칭송을 불허하고

還破沙溝城婁城    도리어 섹스[冓]를 헐뜯는[少] 사구성沙溝城, 착취[婁]하는 루성婁城

牛住城○城○○○○ 소가 자살[住]하는 우주성牛住城, ○성, ○○○○

那○城            나○성 등을 격파[破]하였다.

(통론: 영락17년(407년) 정미丁未, 태왕은 보기병 오만 병사와 수군을 보내어 ○○○○○○○○ 왕의 군대[師]가 사방에서 맞붙어 싸워 목을 베어 다 죽이고 노획한 갑옷이 1만 개이며 (노획한)군수물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과 루성, 우가성, ○성, ○○○○, 나○성을 격파하였다.)

 

 

 

 

 

위 사진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1936년)>의 서막을 장식하는 두 장면이다. 이른 아침 양떼들이 총총히 들판으로 향한다. 그 시각 모자를 눌러쓴 공장노동자들이 떼지어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 누가 그들을 움직이는가? 찰리로부터 250여년 전 아담 스미스가 예언하지 않았던가.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라고 말이다. 아니지, 어쩌면 2000여년 전 양떼를 몰던 목자 예수님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시장'이 그러하듯이 2000년 전 예수님이 그랬으며, 그보다 수 천년 전부터 중화의 성인들은 인간을 양[未]처럼 길들여 왔다. 백성을 순한 양[未]으로 길들여서 그들의 양떼[未]를 착취하고, 착취당한 양들이 분노가 치밀어오를 즈음 성인군자들은 착취한 왕을 제거하고 군자가 따라 죽는 변혁의 쇼(음양)를 하며 양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고는 하늘의 이름으로 참신한 군주를 책봉한다. 

1~2행은 '착취-죽음-부활'을 반복하는 중화의 수레바퀴다. 五萬은 '하늘과 땅 사이를 춤추는[五] 전갈들[萬 선비들]'이다. '보步'는 '섭涉'을 대신하는 글자다.(주역 제57중풍손重風巽 참조) 2행(敎遣步騎五萬)은 영락10년記의 2행과 똑같지만, 문맥상 다른 뜻임을 유의하라.

3행의 8자는 학계에서는 '미상未詳'으로 간주되지만, 일본에서도 위서라고 비판받는 ‘남연서南淵書’에 근거하여 '掃盡倭 倭還侵平穰'이 맞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진왜[盡倭]’는 2행의 ‘버려지고 한물간 말[遣步馬]’이며步≒涉), ‘왜倭’는 부역자이며, ‘침侵’은 마음속으로 ‘침투project’시킨다는 뜻이다.

4행(王師四方合戰)은 왕은 사師가 처방[方] 전율[戰]한 것을 포획[四] 합일[合]한다는 말이다. ‘전율[戰]’은 논어 팔일21장의 밤나무[栗 전율하는 인재]로서 전율[戰]하고 업그레이드 버전을 처방[方]하는 것이 유가의 ‘죽음과 부활’전략이라면, 포획[四]과 합일[合]은 광개토왕의 전략이다.

5행의 ‘참살탕진斬煞蕩盡’ 4행 ‘사방합전四方合戰’의 다른 표현이다. ‘탕蕩’은 「서경」‘홍범弘範’편 “無가 편들고 無가 편당해야 왕도가 탕탕하다[無偏無黨 王道蕩蕩]”의 ‘탕탕한(끊임없이 부활하는) 중화’이며, ‘진盡’은 부활을 위한 죽음을 말한다.

6행의 “소멸[肖]하고 싹[甲]틔우는 족쇄·갑옷[鎖鉀]”은 음양의 기술(문화)이며, 7행의 “전갈을 합일[一萬]하는 공작새강령[餘領]”은 군자들의 信義이다. 기술과 결속이라는 두 개의 동력을 상실한 유가儒家에 선비들은 더 이상 충성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선비들의 그릇(無)과 그들이 지배하던 경제문화계(資)의 기구들(有)은 이제 인간의 편으로 돌아오리라.

다시 광개토-오딧세이아의 흐름을 짚어보자.

1 주몽의 르네상스

2 음양오행 vs 진보상생

3. 에피탑

4. 여자와 노동자를 위한 변명

5. 是가 주인인가 사람이 주인인가

6. 백제의 자아를 찾아가는 60고개

7.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8. 오라큭 vs 오라클

9. 백이숙제를 추격하라

10 삼족오깃발을 휘날리며

11 지식의 귀환

12 되찾은 아버지의 까마귀나라

1과 2는 주몽-유리왕-대무신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역사를 돌아보고, 3 에피탑은 '공자왈맹자왈을 폭로하라'선언한다. 그 선언은 '파괴'의 선언이지만, 다음 4~12의 이야기는 파괴와 건설의 서사였으니, '에피탑'은 파괴를 선언함으로써 그 다음의 '건설'까지 묵시하였다고 할 것이다. 4~6은 인간을 돌아보고, 인간을 지배하는 是를 성찰하고, 是를 맹신하느라 잃어버린 자아를 추적한다. 7은 우리가 왜 중화와 싸워야 하는지를 조명한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되찾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8~11은 승리의 길이며, 키워드는 '오라클oracle'이다. 8은 동북아역사가 '중화문명(오라클) vs 오라클(유화문명)'의 구도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9는 신라 땅에서 중화의 오라클을 파괴하고 유화의 오라클을 재건한다. 10은 민중과의 오라클(접속, 소통)을 시도하였으니 11에서 중화에 부역했던 지식인들은 귀환한다. 민중이 각성해야 비로소 지식인은 민중의 편에 선다는 냉혹한 질서를 확인한 것이다.

12고개를 넘어 '되찾은 아버지의 까마귀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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