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오딧세이아 12 되찾은 아버지의 까마귀나라

먼저 그리스신화를 보자.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멀리 지중해바다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하얀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거품 위로 아름다운 아프로디테가 솟아올랐다. '아버지 죽이기'에서 탄생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곧 인간의 美의식을 전복하는 변혁의 여신이었으리라. 제우스신전의 모든 신들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아프로디테가 못생긴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대장장이는 아름답다'라는 새로운 미학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대장장이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뭇 남성들에게 한눈을 팔았으니, 그리스의 미학은 어디로 향하는가?

아프로디테는 숱한 남자들과 염문을 뿌린다. 그 중에서도 신화는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아프로디테가 대장장이 남편을 버리고 아레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그리스인들이 허구헌날 풀무질이나 하는 대장장이를 폄하하며 한 번의 전쟁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전쟁영웅에게 열광하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전쟁영웅보다 한 수 위의 존재는 누구일까? 베로니스의 그림을 보라. 아레스의 품에서 절정의 쾌락을 즐기는 순간에도 아프로디테의 한 손은 아들 큐피드에게 닿아 있으니, 아프로디테의 미학은 아레스의 창칼에서 사람의 마음을 포획하는 큐피드의 화살로 이동하리라. 여신의 미학과 대장장이 엔지니어링의 결합으로 탄생한 큐피드는 묻 여인들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날렸으니, 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하는 남자들은 화살이 꽂힌 자리에 포지셔닝하고자 대장장이가 되고 불굴의 전사가 되고 세상을 풍미하는 시인이 되기도 하였으리라. 그렇게 미학은 문명을 움직이고, 문명은 또 다른 미학을 좇아가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굽이굽이 흘러왔을 것이다. 서구인들이 '찬란한 고대'를 지나 '암흑의 중세'로 접어들 무렵 고구려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떤 굽이길을 돌아가고 있었는지, 이제 광개토왕비를 보자.

 

二十年庚戌東夫餘  

영락20년(410년), 개[戌]들을 절구질[庚]하는(선비를 퇴출하여 변혁하는) 동부여는

舊是鄒牟王屬民    

옛날에는 추모왕의 '(시是가)백성[民]을 따름[屬]'을 ‘시是’로 삼았는데

中叛不貢         

중화[中]가 분리[半]하며 변신[反 가짜변혁]하자 고구려에 조공하지 않았다.

王躬率往討軍     

왕이 몸소 한물간 것[往 기존의 왕]을 거둬들이고[率] 선비들[軍]을 토벌[討]하여

到餘城而餘城國駭 

여성餘城을 뒤집자 여성餘城이 말[馬]과 돼지[亥]들이 시끌벅적[駭]한 나라를 세우매

服獻出朝貢歸王請命

(부여왕은)문헌을 성복[服]하고 조공을 팽개치고 왕께 귀의하여 命을 청請하였다.

王恩普覆於是旋還

왕이 보편을 총애[恩普]하여 '어시於是'를 (따르는[於] 是에서 거스르는[於] 是로)뒤집자 순환[旋 중화의 악순환]이 죽었으니[還]

又其慕化隨官來者

키를 부활[又其]하여 변태를 연모[慕化]하며 관官이 초래한 것을 따르는

味仇婁鴨盧 卑斯麻鴨盧  木耑社婁鴨盧 肅斯舍鴨盧 ○○○鴨盧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목단사루압로, 숙사사압로, ○○○압로 등이

凡所攻       

헐뜯는[功] 도리[所]룰 유행[凡]시켜도

破城六十四            

‘파괴하는 자아[城]’는 ‘꼬치구이[十]들의 그물질[四]’을 죽이고[六]

村一千四百            

‘마을’은 다양성[千]을 합일[一]하며 획일의 깃털[百=一白]을 포획[四]하였다.

(통론: 영락20년(410년) 경술庚戌, 동부여가 본래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도중에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으므로 태왕이 직접 정벌을 나가 여성에 이르렀더니 여성국의 해왕이 항복하므로 ○○○○○○○○○ 태왕은 용서하고 돌아왔다. 또 고구려를 존경하여 관리를 보내 투항한 자들은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목타사루압로, 숙사사압로, ○○○압로 등이다. 태왕은 이 원정에서 64성과 1400부락을 깨트렸다.)

 

'되찾은 아버지의 까마귀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바꾸어 말하면, 빼앗긴 부여는 어떤 나라이며 되찾은 부여는 어떤 나라인가?

키워드는 5행에 있는 두 개의 '여성餘城'이다. '여성餘城'은 우선 '부여[餘]의 자아[城]'를 연상케한다. 그렇다면 두 개의 '부여의 자아'가 있다는 말인가. 우선 부여라는 이름을 생각하시라.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부여夫餘'라고 한다. 그러나 이후의 중국사서들과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는 '부여扶餘'라고 한다. 어쩌면 노동자[夫]가 아름다운[餘] '부여夫餘'가 부역자[扶]가 아름다운[餘] '부여扶餘'로 전락하였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역사책들에 적힌 다른 이름이 그러한 취지라면, 5행의 두 개의 '여성餘城'은 '夫餘의 자아[城]'와 '扶餘의 자아[城]'라고 할 수 있으리라.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여성餘城'은 '미학[餘]의 보루[城]'라 할 것이니, '여성餘城을 뒤집'었다는 말은 곧 美의 패러다임을 전복하였다는 말이 아닌가. 광개토왕이 '부역자(중화주의자)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노동자가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었으니, 새로운 美의식(餘城)을 지닌 세력들이 말과 돼지(자유인)들이 시끌벅적한 나라로 만들어버리자, 부여왕은 광개토왕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6행(服獻出朝貢歸王請命)은 일본의 미스타이 테이지로와 대만 전사년의 탁본을 판독한 김황규의 주장을 따른 것임을 밝힌다.]

그리스신화가 아프로디테와 대장장이의 결혼으로 '대장장이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듯이, 광개토왕은 미학을 전복하여 '노동자[夫]가 아름다운[餘] '부여扶餘'를 부활한다. 그렇게 美의식을 변혁하면 광개토-오딧세이아7에서 염원했던 '맛있는 저녁식사'를 쟁취하리라. 일찍이 부처님이 "밥은 곧 의식을 결정하고[色卽是空], 의식은 곧 밥을 결정한다[空卽是色],"하였으니 말이다. 광개토왕의 (깃털)전쟁으로 '노동자가 아름답다'라는 의식의 하늘(상부구조) 아래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기는 백성의 땅(하부구조)이 열렸으니, 광개토왕비를 읽은 후세들은 중화의 동굴[乾坤]을 탈출하여 백성의 하늘[人乃天]을 건설하는 유화문명의 영혼을 기억하리라. 

 

이것으로 12화에 걸친 광개토왕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광개토왕비는 세종대왕의 한글에 버금가는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치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은 고대일본이 한반도 납부를 지배하였다는 역사왜곡의 빌미로 삼았고, 최근에는 중국이 고대중국이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였다는 동북공정의 볼모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역사왜곡에 반박하는 우리의 역사학 또한 단 한 줄의 역사책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엉터리들이니, 그들에게 한 마디만 던진다. '깨어나라, 역사학이여!'

광개토왕비 12화 중에 적지 않은 그리스신화와 관련그림들을 '도용'하였다. 그것은 다분히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는 의도이지만, 또 한편 우리들의 '허망한 역사학'에 대한 한탄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 우리는 마지 못하여, 시험을 치기 위해서, 대학에서 월급받기 위해서 '역사'라는 것을 들먹이고 있지 않은가. 역사학이 수박껍데기만 핥고 있으니, 예술가들은 우리 역사를 그리지 않는다. 동학농민전쟁이 세계사적인 저항의 역사라 하였다면, 누군가 그것을 소재로 세계최고의 그림을 그렸으리라. 주몽신화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못지않는 걸작이라고 가르쳤다면, 그것을 닮은 수많은 드라마 뮤지컬 에니메이션들이 쏟아져 나왔으리라.

빈약한 역사문화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용총과 오회분4호묘의 벽화들은 광개토왕비라는 위대한 콘텐츠를 설명해주는 너무나 고마운 콘텐츠였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중국이 광개토왕비를 '진晋호태왕비'라고 부르며 중화의 문화예술이라고 우겨도 우리가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광개토왕비라는 돌덩어리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터, 최근 여러 자치단체들이 광개토왕비모형을 세우고 있다는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무용총 오회분4호묘 등등의 무덤들도 찾아오지 못하는 이상 더 늦기 전에 우리 땅에서 그것을 '복제'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이 고구려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에 담긴 고구려인의 영혼을 기억해내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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