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99를

▲ 출처 : 한겨레신문, 남북정상 남북평화시대를 열다.

1 : 99의 법칙은 대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1%의 준비시간이 99%의 결과를 좌우한다.

•1%의 사람이 99%의 부를 소유한다.

•1%의 고객이 99%의 매출을 차지한다.

다소 과장됐지만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 시장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합작으로 만든 병폐다. 이로 인해 팽배해진 물신주의는 유·무형자본을 소수에게 집중시켰고, 분배마저 정의롭지 못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본(물질)이 사람을 구속·지배하였고, 부자와 빈자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

필자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를(1:99) 살펴보고자 한다. 즉 “일상의 삶에서는 99%의 상식을 준용하고, 혁명(대변혁)을 위한 도전에서는 1%의 비상식을 적용하자”라는 것이다. 혁명(대변혁)은 시대사조를 바꾸는 것이다. 신문화·신문명의 탄생이다. 개인/기관/단체/국가도 동일하다. 여기서 논의중심은 긍정의 대변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명(대변혁)의 근처에 못 간다. 혹 혁명근처에 가도 감히 접근하거나 합류하지 못한다. 오히려 피하고 도망간다. 그러기에 혁명이리라. 대변혁하려면 상식을 넘어서야 한다.

지지부진한 정체를 벗어나 개혁을 도모할 때도 그렇다. 보통사람들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는 것은 도전할 가치가 적다. 성공을 확신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특히 확신이 100%라면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성공해보았자 별 볼일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평상시 생활이다. 대변혁은 비상식이고 괴상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의 반대와 비난비판이 빗발쳐야 한다.

“미쳤구먼! 정상이 아니야! 어찌 저럴 수가?” 이런 말을 들으면 시도할 만하다. 그들의 비난과 비판을 넘지 못하면 범상에 그친다. 수준(상식)이하이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대개 미친놈, 또라이, 비정상, 돌연변이, 괴짜로 비난 받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함께하지 못하기에 그들은 외롭다. 책상아래서 어찌 책상 위를 보겠는가? 본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다. 하룻강아지는 범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해도 동조도 불가하므로.

무리군중은 목적지와 방향에 별 관심이 없다.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몰리는 곳으로 그저 따라갈 뿐이다. 삶의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무리군중을 함부로 쫓지 말아야 할 이유다. 무턱대고 따라가다간 죽음의 계곡일 수 있다. 무리군중을 무시함이 아니라 휩쓸리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리군중의 선두 즉 지도자는 중요하다. 결과는 그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무리군중은 대개 맹목적이다. 쏠리는 대로 가서 휩쓸리고 함몰된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나머지는 흘려버린다. 당연하다. 잘못 되었음은 지난 후 깨닫는다. 이마저도 다행이다. 깨닫지 못하는 자도 허다하다. 곤이불학(困而不學: 어렵게 겪고도 배우고 깨닫지 못함: 논어 계씨편)이다. 이런 자들과 어찌 함께 하겠는가? 집단지성이 좋다고 하지만 참 뜻을 모으기는 진정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고로 무리대중 의견은 참고하되 그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 출처 : pixabay, 둥글고 둥근 원형, 모두에게 피해 없으니 모두에게 피해다.

둥근 돌이 모난 돌을 비난한다. 너는 왜 그렇게 모났냐고 비아냥댄다. 자신처럼 둥글지 않다고. 자신은 뾰쪽한 이도 없고, 날카로운 손톱도 없고, 발끝도 없다고 한다. 그저 모든 게 둥글다고 한다. 둥글게~둥글게~. 둥글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단다. 사실 둥글면 안정이 없다. 중심이 없으므로 작은 힘에도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갈피를 못 잡는다. 이리저리 쏠리므로 항상 불안하다. 멈추지 못하니 서로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조그만 경사(위험)에 닥치면 계속 굴러 결국 산산조각으로 박살난다. 모날 때는 모가 나야 안전하고 안정된다.

모난 돌이 일을 낸다. 한 모퉁이를 넘기기는 힘들어도 일단 넘고 나면 안정된다. 모난 괴짜가 진짜인 것이다. 괴이해야 가치가 있다. 평범하거나 어중간한 것은 널려 있다. 많은 것은 가치가 없다. 고가품은 희소가치다. 미친 자가 미칠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미친 자와 괴짜의 소리를 귀담아 듣자. 거기에 활로와 살길이 있다. 모난 돌이 닳고 달면 둥근 돌이 된다. 개성과 특성이 없어지고 평범해지므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 출처 : pixabay,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넘으면 평화와 안정이 온다.

한겨레신문과 한겨레온이 새 길을 찾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소견 1:99를 참고하면 좋겠다. 한겨레는 탄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평범함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의 잘못된 판단이면 좋겠다. 대중과 함께 하되 대중을 따르면 곤란하다. 그리하면 존재감을 잃고 존재가치도 떨어진다. 주변을 보고 감안하되 그들을 쫒지 말아야 한다. 1% 아니 0.1%의 괴짜를 찾아 그들에게서 지혜를 얻고 방법을 찾아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게 하는 것이 비책이다. 그리고 일단 정했으면 필사의 힘으로 매진해야 한다. 대변혁을 이룰 때까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범상에 그치게 되고 점차 잊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한겨레신문과 한겨레온에게 쓴 소리로 아픈 마음을 전한다. 편하면 편하게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겨레가 새 길을 찾아 질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30년이 넘었으니 한겨레도 대변혁의 시점이다. 변해야 될 때 변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대변혁을 위해서는 작은 권익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담과 울타리를 허물어야 열린 세계로 나간다 하지 않는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성에 따라 편하게 안주하면 순식간에 편하게 사라진다.

진리는 평범하고 단순하다. 실행과 실천이 관건이다. 광야와 대양과 거산은 앞에 있다. 그곳으로 가는 것은 한겨레의 몫이다. 한겨레온(중장기적으로 한겨레상생사업단)이 제대로 성장하면 한겨레신문을 능가할 수도 있음을 경각해야 한다. 경영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남북평화시대 개막은 한겨레에게 더 없는 호기다. 이 흐름을 탄다면 한겨레신문은 통일시대를 선도할 수 있지 않을까?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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