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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장소 및 분위기와 상대가 잘 어울려야 제맛이 난다. 그래서 반가운 친구와 마주하는 술이라야 제격이요, 어떠한 청탁과 상담도 끼지 않은, 냄새가 나지 않는 술이라야 제맛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기분에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 주고받는 한잔 술이니 오죽이나 달고 유쾌할 것인가. 술과 친구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술은 막힌 가슴을 터주고 메마른 마음밭에 물을 주어 쑥쑥 자랄 수 있는 자양을 공급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약이란 세상에 별로 흔하지 않으리라.

술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 술이 없는 곳에는 샘물 같은 지혜도 솟아날 리 없다. 술이 없는 곳에서 훈훈한 인간관계도 기대할 수가 없다. 술과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는 영원한 친구이며, 서로 믿고 양보하고 사랑해가며 정이 깊어가는 연인이다. 술을 의학적으로 분석한 것을 보아도 아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백해무익한 것만은 아니다. 현대병인 스트레스의 치유는 오히려 술의 마력에서 얻어지고 있지 않는가. 물론 술을 상대하는 사람 스스로 술을 다스릴 수 있는 정도의 인격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나 우선은 술이 좋아서 마시게 되고, 친구가 반가워서 마시게 되고, 취하면 서로의 마음을 모두 얻을 수 있어 마시게 된다. 애주가의 주붕(酒朋)도 되지 못한 내가 술을 즐기는 것은 순간순간 생활의 환희를 알게 하고, 의식에서 벗어난, 때묻지 않은 순수를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술이 주는 해로움과 이로움을 따지지 않는다. 술은 칼로리 식품일 뿐 영양이라곤 전무하며,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어떠어떠하다는 과학적인 분석은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직 술이 있어 고맙다는 감사 속에서 술은 기쁨이고 친구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기고 있을 뿐이다. 동서양이 함께 나누는 음식은 흔치 않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함께 나누는 음식 또한 술이다. 인간과 신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도 술이 아닐까? 그래서 가끔 술에 취한 신의 취기로 인해 서산머리에는 무수한 별똥별이 그토록 그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