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기름을 아끼느라 마루는 늘 추웠습니다. 아침마다 떨었을 꽃나무들에 무척 미안했습니다. 그래 세상이 추워도 우리는 이겨낸단다, 그러니 너희도 울지 말고 참으렴. 그렇게 순한 눈길로 간간이 용기를 주는 도리 밖에.

몇몇은 그만 죽어버리고, 주인의 말귀를 새겨들은 몇몇은 잘 자라 나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고맙게도, 참 고맙게도 꽃을 활짝 피워 너무나 풋풋한 향기가 집안을 맴돕니다. 이건 그냥 필 때가 돼 핀 것이 아닌 과분한 선물입니다. 가난한 주인에게 눈물 대신 올리는 환한 웃음입니다. 향기는 꽃의 언어가 분명합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지자고 속삭이는 위로입니다.

또 하나의 화분에 꽃망울이 청초한 약속처럼 솟았습니다. 뭐라 할 말이 있는 듯 말입니다. 지금 어떤 인사를 건넬까 궁리 중이겠지요. 그걸 보는 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톡, 하고 꽃의 입술이 열리고 혓바닥 같은 수술이 보이면 나도 그렇게 웃고 말 것 같아요.

이다지 매력 없는 세상에 꽃이 있어 가슴 속 모서리가 조금씩 무너집니다. 꽃의 향기가 있어 나 또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보낼 수 있겠지요.

가난해도 함부로 불행하지 않을 주인을 위해서...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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