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주통신원으로 취재를 하다보니 주총의 전 과정을 다 보진 못했다. 방금 한겨레TV의 한 장면을 보며 울컥 눈시울이 젖는다. 정영무 한겨레 대표이사의 큰 절! 어버이에게 올리는 심정의 결의. 그럴 경우 주주도 맞절을 해야지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누구도 맞절하지 않았다. 물론 상당수의 주주들은 연로하다. 그러나 나이라는 계급장을 떼면 갑을관계 또는 상하관계의 오만과 편견이다. 주주들은 자발적 참여였기에 어느 누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요구하기 이전 자족으로 흡족해야한다. 그리고 주주와 사측은 서로 고마움을 간직해야한다.

주주들이 만든 건 '한겨레신문사'이지 '한겨레신문'이 아니다. 신문사는 한번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신문사의 존재는 신문이 발행되기 때문이다. 신문은 공장의 생산품처럼 어떤 재료를 조합하여 똑같이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매일 수많은 분야의 기자들이 새로운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문이다. 단 하루의 수명을 가진 신문의 생명은 단 하루도 복사되지 않는다. 새 것만으로 채워져야 살아남는 신문의 정신은 기자들과 운영진의 시간과 노동을 먹고 자란다.

자, 이쯤에서 신문사와 신문의 중요성을 생각해본다. 닭과 달걀의 우선 불가와 흡사하다. 신문사만 덩그랗게 세워진다고 신문이 나오는 건 아니다. 신문을 만드는 수많은 노고가 있어야 신문사의 문이 열린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신문사가 없으면 일할 수 없다. 결론은 단순하다. 주주가 우월할 이유도 없고, 사측이 기죽을 이유도 없다. 주주가 교만할 연유도 없고, 사측이 비굴할 까닭도 없다. 그런데 바쁜 중에 내가 틈틈이 본 주총의 분위기는 적잖이 불유쾌했다. 특히 질의시간이 그랬다. 국회의 청문회 광경과 유사하거나, 죄의 유무를 가리는 법정의 분위기 같기도 했다. 참 다양한 것이 사람의 면모라지만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한겨레신문사를 만든 사람이 제 식구인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을 죄인 추궁하듯 격정적인 힐난을 퍼부었다. 주주는 돈이라는 주체의 정신으로 뭉친 집단이고, 사측은 실력과 능력으로 조합된 집단이다. 옛말에 '사람을 경시하면 사람 귀한 변을 당한다'고 했다.

▲ 한겨레 경영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


나는 애초 주주가 되면서 이 신문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잃어도 그만이라는 모험을 감안했다. 그러나 격변기의 서른 성상이 다 되도록 온갖 미운털에 박히면서도 한겨레신문은 굳건히 살아있다. 이 역사적 성과는 당연히 신문을 만든 이들의 몫이다. 이들에게 주주는 갑질처럼 닥달해선 안 된다. 멍석만 펴놓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소출이 없다. 사철 맨발 벗은 아내처럼 동분서주 바빴을 이들을 머슴 다루듯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극소수의 일부이긴 하지만 참 놀랍고 면구한 장면이 돌출되었다.

주주통신원이 되어 주주들을 인터뷰를 해보니 주주들의 격한 분위기가 싫어서 주총에 불참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바로 이런 불통의 격앙 때문에도 <한겨레:온>은 필요한 창구다. 일년 간 단단히 벼르고 별러 주총에서 독설을 토로하는 주주들에게 평소의 불만을 해소시킬 필요성이 있다. 주주매거진인 '온'을 통해 주주들의 여러 제안이나 궁금증을 최대한 해소시켜 분노의 응집을 해체시켜야 한다. 일단 지면에 꾸준히 '온'의 존재를 주지시켜 일종의 걸름망 역할을 한다면 내년 주총에는 심장이 두근거릴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모든 분들에게 내가 대신 마음의 큰 절을 올린다. 한겨레를 읽게 되어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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