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맨이죠. 언제나 만나면 먼저 다가와서 말 걸고, 어려운 일을 도와달라 하면 언제나 싫은 내색 한번 안 하시죠. 푸근하면서도 젊은 패션감각과 유머감각까지, 겨울밤 따뜻한 호빵 같은 분입니다.” 초등학생 아들 영진이를 키우고 있는 안지애 <한겨레:온> 편집위원은 38살 차이나는 그를 만나면 언제나 ‘할아버지’, ‘아저씨’가 아닌 “오빠”로 부른다.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 한겨레주주통신원회(이하 ‘한주회’) 전국총회에서 최호진(77세) 주주통신원이 제4대 전국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나이가 너무 많은 것 아냐?”며 고사했지만 청년 못지않은 감각과 열정을 잘 아는 분들이 적극 지지를 보냈다. 그의 세심한 배려와 인정 많은 인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하나로 모아준다. 그가 가는 곳에는 늘 사람이 모이고 남녀노소 웃음이 시작된다.
그런 그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카페인 <산타페> 사장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화 <연애소설>(2002), <청춘만화>(2006)뿐만 아니라 수많은 TV 드라마의 촬영 장소였다. “샐러리맨 은퇴 후 카페를 차렸는데 새로운 음식을 배우려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여행지에서 진기한 물건들도 수집했다. 카페를 가득 채웠던 기념물들을 지금도 지인들에게 나눠준다.
자영업의 전쟁터 같은 인사동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나간 것은 그의 인품에 더해 경영자로서의 풍부한 경험 덕이다. 1965년 한양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30대 그룹 기업에 입사해 25년 근무 후 중견 건설회사로 옮겨 경영총괄전무이사를 지냈다. 다양한 경력은 인사동에 자리잡은 ‘문화공간 온’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문화공간 온’의 조합원이다.
‘한겨레’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가 총괄전무를 지낸 회사는 바로 ‘한겨레’가 새신문 창간 사무실을 둔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안국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아들(민수)은 ‘한겨레’에 입사해 2010년까지 근무했다. 그가 한겨레 주주가 된 것도 한겨레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들 덕이라고 했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카페를 정리할 때쯤 한번은 경기도의 유명한 절에 갔었다. 그곳 주차장은 일반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유명인, 지역유지들에게만 이용하도록 한 것을 알고는 이래선 안 되는데 하던 차에 <MBC>에서 시민기자 모집 공고를 보았고 그때부터 늦깍이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4년 가을 ‘한겨레주주통신원’ 모집 광고를 보았고 바로 지원했다.”
그는 이제 그가 사는 서울 은평구의 저명한 <한겨레:온> 기자다. “은평구에는 서민들이 많이 살고 야성도 강해서 시민 모임이 활발하다. 그들의 고민과 주민들의 바람을 전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구정 활동도 열심히 취재해 알리니 이젠 여기저기서 취재 와달라고 하여 매일 바쁘다. 사람들은 <한겨레:온>을 <한겨레>와 같다고 본다. <한겨레:온>에 기사가 실리면 아주 고마워한다.”
“3년 전부터는 수채화도 배우고 있다. 그동안 그린 20여 점의 작품전을 ‘문화공간 온’에서 열 계획이다.” 그의 작품은 지금 <한겨레:온>에도 연재중이다. 직장인으로, 사업가로, 여행가로, 기자로, 지금은 화가로. 그래서 그에게 ‘버킷리스트’랄 것은 없단다. 그래도 중요한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한겨레 주주.독자들은 성품이 강하고 그래서 강한 일을 하니 재미는 없다. ‘즐거운 소통’이 더 큰 일을 이루게 하는 시대다. 소통과 화합을 위해 애써보려 한다. 특히 우리 주주통신원들의 경우 소통의 시작은 ‘기사쓰기’다. 다음으로 주주통신원의 자립과 연대를 모색하겠다. 한겨레는 창간이래 경영이 넉넉지 않다. 주주들이 주인공인 <한겨레:온>을 더 발전시키고 7만 주주와 독자, 더 나아가 시민들이 동참하도록 하려면 한주회 스스로 자립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한겨레 관련 우호 단체들과 교류 협력에 앞장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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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