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침에 일어나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세상을 만날 수 있지만 신문은 좀 더 깊이있는 세상을 만나보게 한다. 거기에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존재하고, 인간들이 겪는 애환이 서려있으며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설날이 지나 군대 동기들을 만났다. 40년지기들이다. 여태껏 정치얘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삼성이 화제가 되었다. 왜 진보세력은 이재용을 구속시키라고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싸잡아 비난한다. 그러더니 '한겨레' 신문은 볼 게 없다고 투덜거린다. '한겨레'가 얼마나 볼 거리가 많은 신문인지 증명할 필요를 느꼈다.

2월13일자 <한겨레>를 펼치며 머리와 마음을 굴려본다.

'한겨레' 1면의 기사는 <한겨레프리즘>을 통해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벌이는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3인방의 발언들을 조명한다. '혐오가 미세먼지처럼' 덮친다. 나의 시선을 끈 건 마지막 부분이다. 침묵과 투쟁의 사이클.

- 지금껏 다수는 '어느 정도' 침묵하다 '어느 순간' 놀라는 방식을 되풀이해왔다. 그러면 마르틴 니묄러의 시처럼 '침묵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설은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사설 옆에 실리는 오피니언은 다양성과 의외성이 있고 재미도 있다.

<세상읽기> '성인지감수성과 두개의 점'이 눈에 들어온다. 안희정 판결의 1심과 2심에서 유무죄가 갈린 것은 두개의 점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의 차이에 기인한다.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 중에 등장하는 두개의 점. 밤중에 오간 대화. 1심에서는 두개의 점("..")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 두개의 점을 불쾌함이나 침묵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굉장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사회전반적으로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느꼈다.

<아침햇발>의 '욕하면서도 봐야 하는 자유한국당 막장극'은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정도지만 포인트는 마지막 글에 있다. - 막장드라마의 묘미는 욕하면서도 계속 본다는 것이다. 결말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 이 기사를 보며 '막장의 재미는 악역 주인공들이 자충수를 둘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친 트럼프 행정부 성향의 이스라엘 이익단체를 공격했다가 큰 곤경을 치른 일한 오마 미국 하원의원.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오마 의원은 지난 1월 하원에 입성한 초선이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81818.html#csidxb591b1981fe799a877a7996cc2f9035

국제 면에는 친 이스라엘 단체를 비판했다가 당 안팎에서 '화살'을 맞고 있는 미국 30대 무슬림 초선 하원의원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소말리아 출신의 난민 출신인 오마 의원은 미국 정치인들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도록 돈을 내고 있는 단체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에이팩, AIPAC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도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의외의 내용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가 아랍국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폈고, 트럼프는 아랍을 배척하는 공약을 표방하여 유대인들이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고 들었는데 기사를 보니, 사실은 반대였다. 친이스라엘 이익단체인 제이스트리트 조사에 따르면, 대선에서 유대인의 70%가 힐러리에게 투표했고, 트럼프를 지지한 이는 25%에 그쳤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유대인들이 정치자금은 트럼프에게 보냈고, 투표는 힐러리에게 한 것이다. 역시 영리한 유대인들이다.

국제 면에 정의길 선임기자의 기사가 눈에 띈다. 미국 민주당의 부자 증세안에 미국인들의 65%가 찬성한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가브리엘 주크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8일 발표한 '부의 불평등' 보고서에 의하면, 상위 400명의 부는 1980년대 초보다 3배 증가한 반면, 하위 60%인 1억5천만명의 부는 1987년 5.7%에서 2014년에는 2.1%로 1/3로 줄어들었다.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면 내란이나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건 상식이다.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건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에 장벽을 세우려 하는 것도 과연 그 상식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까?

이본영 기자의 '이탈리아, 이번엔 금괴 포퓰리즘?'도 눈길을 끈다. 1971년 금본위제도가 막을 내린 뒤로도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을 주요 외화보유고로 삼아왔다. 세계금협회는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규모가 1971년 이래 최대였다고 밝혔다. 세계 경제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봐도 될까? '중앙은행 금 보유고 상위 5개국'표를 보니 5위인 중국의 금 보유고(1842톤)가 1위 미국 금보유고(8133톤)의 22%에 불과하다. 아직은 중국이 미국을 상대하기에는 버겁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닐까? 미중 무역분쟁에서 중국이 미국에 지고 들어가는 것도 중국의 미국 수출량이 미국의 중국 수출량보다 5배나 많기 때문이니 말이다.  

▲ 국가사정 지정이 예고된 만해 한용운의 거처 ‘심우장’. ㄱ자형의 팔작지붕 근대한옥이다.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1790.html#csidxbd4a62ab2743a0aa5e2d701b7caa1db

노형석 기자의 '만해 한용운의 옛집(심우장)이 문화재가 된다'는 기사는 볼까말까 하다가 읽었다. 기사를 보니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도 문화재 등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의거자금 송금증서도 있다. 1931년 12월28일 김구가 중국 상하이에서 도쿄에 있는 이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증거자료다. 그 자금을 발판으로  1932년 1월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는 김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중근 의사의 아우 안공근의 집에서 선서식을 벌인 뒤 선서문을 썼다.  

전국 면 송인걸 기자의 기사는 일상처럼 사소하게 다가온다. 일본 교토부의 도시샤대 정책학부 4학년생들이 행정수도 추진과정을 알기 위해 세종시를 견학 온 내용이다. 일본도 1990년 수도이전 계획인 '국회 등 이전에 관한 결의'를 하였으나 후쿠시마 지진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도시샤대는 윤동주, 정지용 시인 들이 유학한 대학이란다. 이런 건 인연일까, 우연일까?

전국 면에 박수혁 기자의 기사는 의문을 일게 하는 제목을 달았다. "수입산 생태탕은 먹어도 됩니다"라니? 알고보니 해수부가 2014년부터 고갈된 명태 자원 회복을 위해 명태 종자를 방류하는 등 '명태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다니, 그것이 오히려 놀랍다

▲ ‘가미카제 아리랑’의 한 장면

기획기사 '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와 길윤형 기자의 '가미카제 아리랑 / 꽃 같은 조선 청년들, 왜 사쿠라의 요괴가 되었나' 기사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쓰리다. 감상문조차 쓰기 어려울 지경이다. 살처분 노동자가 '시각과 청각, 후각과 촉각까지 모든 감각에서 생명을 짓이기는 듯한 이물감을 느꼈다'고 한 것은 생명체로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한 인간의 뼈아픈 고백이었다. 

그 외 사색거리를 제공한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시인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고 했던 그 껍데기는 실은 '친일파나 우익만이 아니라 오직 명분에만 사로잡혀 다양성을 짓밟는 짓'이었다. '오래된 미래'인 선비정신으로, 서로를 아프게 한 폭력과 분열 이전으로 되돌아가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조휴의 휴심정 / 인터뷰 : 동양학자 기세춘)

-행복의 가장 큰 장애는 비교하는 마음이 아닐까 해요. 인정받고 싶어서 늘 시선이 바깥에 가 있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을 가로막는 세 가지는 비교, 비판, 경쟁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 남의 허물을 봐줄 수 있습니다. (쉼과 깸/용수 스님)

-사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다분히 망각과 왜곡을 거쳐 편집된 주관적 객관화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자기 경험에 갇힌 생각이 아닌 열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미래가 암울할수록, 앞길이 막힌 것 같을수록 생각은 열어야 합니다. (빛깔 있는 이야기 / 문병하 목사)

이렇게 '한겨레' 신문에는 무한한 생각 거리가 담겨 있다. 어떤 날은 책 수십 권 읽고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볼거리와 사색 거리가 가득 실려 있다. 이래도 '한겨레'가 볼 게 없다고 투덜거릴 것인가?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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