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와 청둥오리

김미경 주주통신원l승인2019.03.14l수정2019.03.15 08:4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비가 오면 미세먼지가 준다는 소식에 우산을 쓰고 일부러 산책을 간다. 지난 2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비가 많이 온 날, 집 근처 냇가를 따라 걷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열심히 뭔가를 뜯어 먹고 있었다. 허연 덩어리인데 식빵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 때 노랑부리백로(?) 한마리가 급히 쫓아 왔다. 먹이를 뺏으려 그랬을까?

청둥오리는 먹이를 놓고 도망 갔다. 청둥오리는 백로와 대적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백로의 그 긴 부리로 콕콕 쪼아대면 어쩔 것인가? 그냥 당할 수밖에 없지. 백로는 먹이를 앞에 두고 '내 거야' 하는 것처럼 가로채긴 했지만 부리를 먹이 근처에 가져가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먹이에 입을 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백로가 뒤로 돌아 잠시 자리를 뜨자 청둥오리는 다시 먹이를 향해 갔다. 이를 눈치 챈 백로가 재빨리 돌아 청둥오리를 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먹이만 차지할 뿐 부리를 대진 않았다. '제가 먹지도 않을 걸 남도 먹지 못하게 하네. 백로 심보가 참 고약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지켜보았다. 

백로는 또 바위 틈 사이로 먹이를 찾아 나섰다. 그 사이를 틈타 청둥오리가 또 먹이를 먹으러 왔지만 또 쫓겨났다. 

백로는 물살에 둥둥 떠내려간 허연 덩어리가 청둥오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또 바위틈으로 먹이 사냥을 나섰지만 온 신경은 청둥오리에게 있는 것 같았다. 청둥오리가 먹잇감 근처에만 가면 바로 쫓아와 방해했다.

이러길 수차례... 왜 백로는 먹지도 않을 먹잇감에 탐을 낼까? 처음엔 백로의 욕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먹잇감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물에 녹지 않고 둥둥 떠내려갈 수 있는 덩어리는 스펀지 아니면 스티로폼 아닌가? 개울에 들어가 볼 수 없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빵이나 음식은 아니었다.

백로는 본능적으로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아닐까? 그래서 청둥오리가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영리하고 배려심 많은 백로인가? 인간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백로의 방해에도 청둥오리의 먹잇감을 향한 행동은 계속될 것 같다. 일시적으로 백로가 쫓아다니면서 못 먹게 한다 해도, 겨울이라 먹을 것이 부족해 허기진 청둥오리 뱃속으로 허연 덩어리는 결국 들어가고야 말겠지...

지난 해 ‘죽은 향고래 뱃속에 일회용 컵 115개, 비닐봉지 25개’ 나왔다는 한겨레 기사를 보았다. 또 바다에 버려진 비닐과 양식장 스티로폼 등이 녹아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이것이 물고기 체내에 축적이 되고, 결국 물고기를 섭취한 우리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은 조용히 쌓여간다는 기사도 보았다.

미세먼지 무서워 산책도 잘 못하는데, 미세플라스틱 무서워 생선도 잘 먹지 못하게 생겼다. 우리 인간들이 차곡차곡 올려놓은 죄라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물고기에, 청둥오리에, 자연에 미안할 뿐이다. 자연의 순환을 보복이 아닌 순리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871122.html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61275.html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미경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동호,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태평, 김혜성, 유원진, 이미진, 허익배
Copyright © 2019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