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비가 오면 미세먼지가 준다는 소식에 우산을 쓰고 일부러 산책을 간다. 지난 2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비가 많이 온 날, 집 근처 냇가를 따라 걷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열심히 뭔가를 뜯어 먹고 있었다. 허연 덩어리인데 식빵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 때 노랑부리백로(?) 한마리가 급히 쫓아 왔다. 먹이를 뺏으려 그랬을까?

청둥오리는 먹이를 놓고 도망 갔다. 청둥오리는 백로와 대적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백로의 그 긴 부리로 콕콕 쪼아대면 어쩔 것인가? 그냥 당할 수밖에 없지. 백로는 먹이를 앞에 두고 '내 거야' 하는 것처럼 가로채긴 했지만 부리를 먹이 근처에 가져가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먹이에 입을 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백로가 뒤로 돌아 잠시 자리를 뜨자 청둥오리는 다시 먹이를 향해 갔다. 이를 눈치 챈 백로가 재빨리 돌아 청둥오리를 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먹이만 차지할 뿐 부리를 대진 않았다. '제가 먹지도 않을 걸 남도 먹지 못하게 하네. 백로 심보가 참 고약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지켜보았다. 

백로는 또 바위 틈 사이로 먹이를 찾아 나섰다. 그 사이를 틈타 청둥오리가 또 먹이를 먹으러 왔지만 또 쫓겨났다. 

백로는 물살에 둥둥 떠내려간 허연 덩어리가 청둥오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또 바위틈으로 먹이 사냥을 나섰지만 온 신경은 청둥오리에게 있는 것 같았다. 청둥오리가 먹잇감 근처에만 가면 바로 쫓아와 방해했다.

이러길 수차례... 왜 백로는 먹지도 않을 먹잇감에 탐을 낼까? 처음엔 백로의 욕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먹잇감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물에 녹지 않고 둥둥 떠내려갈 수 있는 덩어리는 스펀지 아니면 스티로폼 아닌가? 개울에 들어가 볼 수 없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빵이나 음식은 아니었다.

백로는 본능적으로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아닐까? 그래서 청둥오리가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영리하고 배려심 많은 백로인가? 인간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백로의 방해에도 청둥오리의 먹잇감을 향한 행동은 계속될 것 같다. 일시적으로 백로가 쫓아다니면서 못 먹게 한다 해도, 겨울이라 먹을 것이 부족해 허기진 청둥오리 뱃속으로 허연 덩어리는 결국 들어가고야 말겠지...

지난 해 ‘죽은 향고래 뱃속에 일회용 컵 115개, 비닐봉지 25개’ 나왔다는 한겨레 기사를 보았다. 또 바다에 버려진 비닐과 양식장 스티로폼 등이 녹아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이것이 물고기 체내에 축적이 되고, 결국 물고기를 섭취한 우리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은 조용히 쌓여간다는 기사도 보았다.

미세먼지 무서워 산책도 잘 못하는데, 미세플라스틱 무서워 생선도 잘 먹지 못하게 생겼다. 우리 인간들이 차곡차곡 올려놓은 죄라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물고기에, 청둥오리에, 자연에 미안할 뿐이다. 자연의 순환을 보복이 아닌 순리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871122.html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61275.html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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