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심심해.”  
“그렇게 심심하면 우리 공부해볼까?”
“아니, 학교공부는 재미없어. 그림을 그리다가도 종 치면 그만해야 돼.”
“아빠도 학교공부를 시킬 생각은 전혀 없어.”
“그럼, 무슨 공부를 하려고?”
“그건 함께 정해야지.”
“정말?”
“당연하지. 네가 할 건데 아빠 마음대로 정하면 네가 속상하잖아? 하기 싫고.”
“맞아, 아빠.”
다향이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극장에 가서 영화 보기 어때?”
“음, 좋아.”
다향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평소에 꾸준히 해온 일인데도 좋아했습니다. 다향이가 네댓 살 때부터 만화영화를 보러 다녔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도 좋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이한테 이해하기 다소 어렵기도 합니다. 제주에서는 접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이야기와 인물이 있고 음악과 미술까지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보지?’라거나 ‘DVD를 빌려다 보면 될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우리는 꼭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나 ‘레미제라블’의 음향이나 색채, 색감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는 충분히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다향이가 최신영화만 본 건 아닙니다. 찰리 채플린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다향이가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물론 아빠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걸 반복해서 봤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메릴린 먼로 정말 매력적이지 않아?” 하면 “나는 오드리 헵번이 더 예뻐” 하고 대답할 정도로 고전 영화도 챙겨서 감상했고, ‘쇼생크탈출’과 ‘빠삐용’을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아빠, 나 피아노도 계속 치고 싶어,”
“그것도 좋지.” 
중문동으로 이사한 2학년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피아노 수업을 쉬고 있을 때였지요. 학교를 그만두면서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꺼렸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시간에 다른 피아노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럼 또 어떤 걸 해볼까?”
“난 그림 그리기가 좋아.”
“좋아. 그럼 아빠랑 같이 그림을 매일 한 장씩 그리면 어떨까?”
“매일 한 장씩?”
“응. 학교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종이 울리면 그만둬서 싫다며?”
“그래도 매일 그림 하나는 좀 그런데.”
“그럼, 매일 그리고 싶을 만큼만 그리고, 며칠이 걸리든 네가 됐다 싶을 때까지 그리면 어때?”
“좋아.”

이렇게 해서 네 과목이 정해졌습니다. 수영을 좋아하는 다향이는 계속해서 강습을 받고 있었거든요. 아니 다섯 과목이군요. 다향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고, 또 집에 없는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을 받거나 구매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으니까요. 수업이 네 과목인지 다섯 과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아니 태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주어서인지 다향이는 틈만 나면 책을 붙들고 놀았습니다. 그러니까 독서는 전적으로 다향이한테 맡긴 것입니다.

“음! 또 뭘 해볼까?”
“이것 말고도 더해?”
“영화는 일주일에 한 번 보러가는 거잖아. 책읽기랑 수영은 네가 노는 거고. 그럼 실제로는 피아노랑 그림밖에 없는데 그것만 할 거야?”
“그렇네. 그럼 아빠는 뭘 하면 좋겠어?”

그때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주면서 말했습니다.
“이건 아빠 선물이야. 이걸로 네가 찍고 싶은 걸 마음대로 찍어봐.”
“싫어. 그러다가 고장 나면 어떡하라고?” 다향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괜찮아 다향아. 너한테 준 이상 네 거잖아. 고장 나면 고치면 되니까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 돼.”
“정말?” 기대와 호기심으로 다향이가 물었습니다.
“정말이지. 언제 아빠가 너한테 거짓말 했어?”
“아니.”

“그리고 아빠가 너랑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아빠?”
“매일같이 동시(童詩)를 하나씩 외우는 거야.”
“동시를 외우라고?”
“책장에서 동시집 몇 권을 꺼내서 다향이에게 보여줬습니다.
동시집을 펼쳐본 다향이. 입이 나오면서 불퉁하게 대답했지요.
“이걸, 어떻게 외워?”
“왜? 아빠생각에는 금방 외울 것 같은데.”
“아냐. 금방 못 외워.”
처음엔 시를 외우고, 암기한 걸 공책에 써보게 하려고 했는데 다향이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새로운 제안을 했지요.
“너 혼자 외우기 힘들면 아빠랑 같이 외우자. 누가 먼저 외우는지 내기를 하자고. 하지만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놀아야 하니까 건너뛰고. 어때?”
그때서야 마지못해서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짜임새 있는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아침 8시나 9시 사이에 일어난 다향이와 함께 밥을 먹고 동시를 한 편씩 외웠습니다. 먼저 동시를 운율에 맞춰서 두세 번 읽어주고, 따라서 낭송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향이의 느낌을 물어본 다음에 모르는 단어를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큰 소리로 낭독을 하면서 동시를 외웠지요.

처음 동시를 외울 땐 30분이 걸린 다향이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25분, 20분, 15분으로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꽤 긴 시도 10분 안팎이면 외워버렸지요. 처음엔 “아빠는 어른이니까 금방 외우잖아” 하고 볼멘소리를 하더니만 곧 “아빠. 아직도 못 외웠어” 하면서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다향이랑 같이 공중파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다향이가 날마다 암송하는걸 아는 사회자가 부탁을 했습니다. 아빠와 딸이 같이 외운 시를 하나 낭송해달라고. 그때 다향이가 선택한 시가 방정환의 ‘늙은 잠자리’였습니다.

늙은 잠자리
 
         방정환
 
수수나무 마나님
좋은 마나님
오늘 저녁 하루만
재워 주세요.
아니 아니 안 돼요
무서워요
당신 눈이 무서워
못 재웁니다.
 
잠잘 곳이 없어서
늙은 잠자리
바지랑대 갈퀴에
혼자 앉아서
추운 바람 슬퍼서
한숨 쉴 때에
감나무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

다향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또렷한 음성으로 낭송을 하는데 아빠인 나는 처음에 따라하다가 나중에는 어버버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회자와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려서 얼굴이 벌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향이가 동시를 금방 외워버릴 즈음에 아빠인 나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향이는 그것만 하면 되지만 나는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느라 늘 정신없이 바빴으니까요. 물론 다향이의 양해를 얻어낸 다음에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뒀습니다. 다향이가 동시를 외우고 좋아하는 책을 읽다보면 피아노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아빠는 다향이가 레슨을 받는 동안 다락방에 앉아서 신문을 읽거나 카페에 글을 올리곤 했지요.

피아노를 친 다음엔 한 시간 정도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4B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목탄, 수채화물감등으로 그리고, 색칠을 했지요. 아빠가 볼 때 다향이는 그림에 재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향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빠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나는 못 그려”라는 말을 자주 했지요.

“다향아, 아빠는 너보다 사실적으로 그릴뿐이지 잘 그리는 건 아니야. 네 그림에는 너만의 색깔이 있는데 아빠그림에는 그런 게 없잖아. 그러니까 네 그림이 더 좋은 거야.”
“아니야. 아빠는 잘 그리고 나는 못 그려. 똑같이 그리는 게 잘 그리는 거야.”
“다향아. 똑같이 할 거면 뭐 하러 그림을 그려? 그냥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안 그래?”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아기인 다향이한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곤란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림책의 지문 중에 ‘다행히’라는 말이 나오면 저를 놀리는 줄 알고, 아주 싫어했습니다. “아빠, 왜 내 이름을 (그림책에) 넣어서 읽어? 하지 마” 하면서. 두세 살 아이한테 다향(茶香)과 다행을 설명해주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 일은 오래도록 계속 됐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먹거나 주먹밥, 볶음밥, 김밥을 만들어서 소풍을 가기도 했습니다. 오후에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두 시간씩 다니면서 제 마음대로 렌즈를 들이대도록 했지요. 그래서 어른들은 도저히 찍을 수 없는 파격적인 작품(?)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찍겠다고 꽃대를 제 손가락으로 잡고 찰칵!- 도 많이 나왔습니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함께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다향이는 좋아하는 수영강습을 받고, 나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했지요. 함께 땀 흘려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준비를 해서 아내가 돌아오면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이것이 평소의 생활이었고, 영화를 보러가거나 수영강습이 없는 날에는 조금씩 패턴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서 신문지상의 영화평을 빼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텔레비전의 영화소개코너도 마찬가지로 꼭 챙겨서 봤고요.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권은 다향이한테 줬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영화도 많이 관람을 했는데 그 정점에 ‘로보트 태권브이’가 있습니다.

-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열광하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른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득히 먼 옛날의 일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토록 재미있고, 위대(?)했던 영화가 어찌나 지루하던지. 영화를 졸면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내용이 바뀐 것도 아니고, 단지 채색을 입혔을 뿐이니 어찌 지루하지 않겠습니까?

피아노 수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향이랑 함께 소화했습니다. 아이한테만 시켜놓으면 지루한 숙제가 되지만 어른이 함께 하면 놀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가슴앓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향이가 오전에는 외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넌 왜 학교에 가지 않았어?”라거나 “몇 학년이니?” 하고 묻는 걸 몹시도 싫어했거든요.

“다향아, 학교엔 꼭 다녀야 하는 게 아니니까 홈스쿨링 한다고 해. 몇 학년이라고 물으면 아홉 살이라고 대답하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학교라는 소속감을 잃어버린 게 다향이를 주눅이 들게 한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또래집단을 만들어줄 수 없었던 것도 마음 아픈 일이었고요.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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