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78] 대만에서의 사업구상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09.27l수정2019.10.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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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라고 거창하게 공개할 규모나 수준의 업체를 경영한 적이 없어 어색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업을 찾기 위해 걸어왔던 길이기에 다소 부끄러워도 지나온 경험을 남기려 합니다.

대학원 3차 학기에 학업을 중지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수없이 많은 성을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였지요. 그러다가 대만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한국 등산 장비를 들여와 대만 전역을 뒤덮자고 생각하자 서광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존재감 미미한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무모한 상상을 했던 게지요.

그래도 산과의 인연은 깊었습니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남산 자락에 있었고, 당시의 남산은 누구나 들어가 놀 수 있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틈나면 산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중학교는 관악산 낙성대 부근의 신설 학교라서 송충이 잡기와 개울에서 돌을 주어다가 화단을 정리하는데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개학하자마자 마음이 통한 친구 셋이서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관악산에 다람쥐처럼 올라갔다 내려온 기억도 있었고요.

사람들 사이에 끼여 등산을 처음 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겨울 도봉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가난한 주머니 사정과 부모의 그늘이 사라진 외로운 신세라 자주 산을 찾았습니다. 혼자 산길을 지치도록 걷노라면 참으로 대견하고 포근했지요.

‘한국 명산 100선’이라는 책을 들고 마치 종주를 다 할 듯이 덤비면서 입문했지만 세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구례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진주 중산리까지 혼자서 종주도 해봤고, 계룡산 동학사에서 출발하여 갑사로 넘어갔다가 저녁 먹고 밤중에 달빛 따라 다시 동학사로 넘어오기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고질병처럼 또 배낭을 들쳐 메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경기도 가평 쪽에서 운악산을 몇 번 오른 적이 있어서, 가까운 명지산을 목표로 자료를 참고하여 떠났지요. 처음 오르는 산이고 늦게 출발해서 버스가 가평 등산 코스 입구에 하차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금방 어둠이 내리고 길이 희미해지더니 멀리 민가의 불빛만이 반짝였습니다. 그 불빛 위로는 민가가 없는 듯 했습니다. 민가의 불빛을 기준 삼아 좀 더 올라가니 우측으로 어슴푸레 평평한 땅이 보였습니다. 랜턴을 꺼내 비춰보니 농작물은 아니고 잡풀이 많아 텐트를 치기에 안성맞춤처럼 보였습니다.

길 쪽 방향으로 텐트를 치고 아마 라면 정도를 끓여 먹었을 텐데, 어쨌든 단잠을 잤습니다. 푹 자고 따뜻한 햇볕이 텐트를 눈부시게 밝혀주자 실눈을 뜨고 밖으로 나와 뒤편을 봤습니다. 헉!!!

텐트와 50센티 정도의 거리에 봉분이 있더군요. 서둘러 아침을 먹고 명지산을 넘었는데 간밤에 무덤 곁에서 잤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 아리산의 차밭                                 사진 : 阿里山國家風景區

저의 이 무모함은 대만으로 가서도 이어졌습니다. 등산동아리에 찾아가 아리산 산행에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선린시(森林溪) 계곡에서 아리산(阿里山: 해발 2,500m)까지 오르는 길을 시야 종주(溪阿縱走)라고 부릅니다. 텐트 코펠 등이 들어간 배낭을 메고 새벽 5시에 출발 13시간 걸어서 오후 6시에 아리산에 올랐습니다.

자신이 붙은 저는 대만 등산 관련 서적을 사서 혼자 해발 3,400여 미터의 허환산(合歡山)에 도전을 하였지요. 버스를 타고 리산(梨山) 호텔에 내려 지도를 보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3,000여 미터 되는 지점에 낡고 괴괴한 대피소 같은 건물이 있고, 인적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푸른 초원의 잔디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작은 대나무, 전죽(箭竹:화살대)이라고 부르더군요. 무릎 아래 크기입니다. 텐트를 치고 멀리 산봉우리에 저녁 햇살이 걸리는 모습은 참으로 웅장했습니다.

▲ 合歡群峯                                          사진 : wikipedia

사실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 혼자 있으니 짐승도 안 보이고, 새들도 집에서 잠든 듯 오로지 적적하고 심심할 따름. 또 기억에는 없지만 역시 부실한 저녁을 먹었을 테고, 하릴없이 잠이나 청하려고 누웠는데 밖에서는 바람이 점차 거세지고, 마치 토할 듯 말 듯 불편함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더군요. 바람 따라 산소가 부족해서 오는 고산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꿈속으로 빠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가 친 텐트 한참 아래쪽에 바람을 피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텐트가 보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시커먼 남자 하나가 텐트 속에서 엉거주춤 기어 나와 나를 보더군요.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 둘은 이른 아침 함께 정상에 올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학교가 있는 타이중(臺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발 더 나아간 저는 타이베이에서 공부하던 한국 친구 3명을 불러 아리산을 종주하기로 했습니다. 거꾸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지요. 아리산으로 오르는 협궤열차를 탔습니다. 새벽에 아리산 일출을 보고 걸어서 하산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왕복 4시간을 더 헤매고 원위치로 와서 오후에 도착해야 할 숙소에 한밤중이 되어 기다시피 겨우 도착했습니다.

▲ 아리산 협궤열차                            사진 : 阿里山國家風景區

제가 무모하기도 하지만 건망증도 심해서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을 지금도 하는 거지요. 이 무모함이 제 삶의 동력이 되었고,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무모함도 반복이 되면 나름 괜찮은 경험이 되고 나의 자산이 되고, 또 장점도 되더군요.

저는 치밀하지도, 계획적이지도, 명석하지도, 순발력도 없습니다. 담대한 용기나 호방함과도 거리가 멉니다.

저는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지혜는 호풍환우 하던 제갈공명을 당할 사람이 없다고 하고, 알프스를 넘어 전 로마를 벌벌 떨게 했던 한니발의 용기를 넘을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들도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내가 머리를 써 봐야 얼마나 쓰겠는가? 그저 생각을 따라 가보자. 그 길이 어디일지 가서 보자. 길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텐트를 짊어지고 대만 시장에 가서 두드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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