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의 코로나 상황을 경험하며, 행복이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소소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측 가능한 삶이 왜 필요한지,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절실해졌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봉쇄 조치를 취한 곳이 대만이었습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연임을 못 하도록 중국이 대만으로의 자국인 여행을 막았지요. 코로나가 유행하자 대만은 재빠르게 대만에 있는 중국인들을 돌려보내고 중국인의 입국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대만인 이외의 외국인 입국도 금지하였습니다.

섬나라에서 공항으로의 해외 입국을 차단하자 몇 달간 양성 확진자가 0 주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외국인 항공사 승무원을 통해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서 하루 5~600여 명이 확진되자 학교, 식당, 체육시설 등을 모두 닫아걸며 다시 안정화시켰지요. 오랫동안 미뤄왔던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2021년 6월에 입국하며 넉넉하게 11월에 다시 들어오는 비행기 좌석을 예약했습니다.

남아공발 변이종이 확산하면서 대만 정부는 또다시 외국인 입국을 막았습니다. 여행이나 상업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대학에서 12월부터 중국어공부를 하겠다며 입학허가서를 받았는데, 갑자기 대만 입국을 불허하다가 올해 3월부터 학생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국에서 하루 50여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던 3월 20일 오후에 병원에서 PCR 검사를 받고, 21일 음성확인서를 받았으며, 3월 22일 드디어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이 아직은 썰렁하였습니다. 기내에는 30여명의 승객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고, 오랜만에 기내식도 받았습니다.

대만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기내 승객들을 한곳으로 모으더니 간격을 유지하며 신속항원 검사를 하였습니다. 난 당연히 예약한 교통편으로 미리 지정하고, 요금까지 납부한 방역호텔로 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4명씩 호명하며 통관을 하는데 내 순번은 건너뛰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 탑승자 중에서 3명이 양성 확인이 되었고, 캐나다에서 입국한 대만인과 나 두 사람은 타이베이의 三軍總醫院으로 향했습니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내 또래면 누구나 다 그러한지 모르지만 난생처음으로 엠블런스를 타보는 호사(?)를 누려봤습니다.

병원에 격리 입원하는 사태를 행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내 경우는 행운이란 단어로도 부족한 표현이랍니다. 이미 지불했던 10일 치 방역호텔 숙식비 백만 원이 넘는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고,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밖을 볼 수 있는 나름 괜찮은 병실에서 완전 무료로 숙식을 해결했으며, 때마다 간호사나 의사 그리고 병원 종사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PCR 검사도 무료로 두 번이나 더 받았으니까요.

공항에서 타이베이 병원까지 호송해준 엠블런스와 병실. 그리고 간호사가 스스로 매일 체크해서 사진으로 전송하는 법을 알려줌.
공항에서 타이베이 병원까지 호송해준 엠블런스와 병실. 그리고 간호사가 스스로 매일 체크해서 사진으로 전송하는 법을 알려줌.

방역 장비로 무장한 간호사가 들어와 여러 가지 체크와 설문조사를 했고, 병원에서의 생활수칙도 알려주었습니다. 전화도 불나게 울렸습니다. 병원, 대만 방역청, 공부하기로 했던 학교, 예약했던 방역호텔과 그 지역 보건소에서 끊임없이 나를 찾았습니다.

첫 병원식! 병원측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묻기에 고기는 좋아하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렇게 나옴. 
첫 병원식! 병원측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묻기에 고기는 좋아하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렇게 나옴. 

병원에서 제공한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의사가 와서 PCR 검사를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1시가 넘어서 피곤한 몸을 좁은 병상에 겨우 뉘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누가 흔드는 기척에 비몽사몽 눈을 뜨니 달나라 우주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정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취한 듯 일어나 검사를 받고, 의사가 나간 후 아침 몇 시나 됐나 시간을 봤더니 밤 12시 20분경이더군요.

아침에는 죽이 나오는데 배가 고프다고 하였더니 다음날 부터 빵을 추가해줌.저녁은 과일이나 푸딩, 음료 등을 추가로 넣어줌. 덕분에 남김없이 잘 먹었음.
아침에는 죽이 나오는데 배가 고프다고 하였더니 다음날 부터 빵을 추가해줌.저녁은 과일이나 푸딩, 음료 등을 추가로 넣어줌. 덕분에 남김없이 잘 먹었음.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공항에서 양성판정이 뭐지? 병실에 입원한 첫째 날보다 둘째 날 목이 더 간지러웠고, 2~3일 후에는 그런 증상도 없어졌습니다. 입실 첫날인 3월 22일은 빼고 23일부터 10일간 병원 격리를 마치고 4월 2일 저녁을 먹은 후 퇴원했습니다. 당시에는 대만의 방역 규정에 따라 자가 격리 1주일을 또 해야 했습니다.

복도와 병실 사이에 방이 있고, 간호사나 병원 관계자는 중간 방까지만 들어옴. 문과 벽에 투명 유리가 있고, 우측은 음식과 물을 넣어주는 곳. 문 아래 빨간 줄을 넘지 말라는 경고가 있음.
복도와 병실 사이에 방이 있고, 간호사나 병원 관계자는 중간 방까지만 들어옴. 문과 벽에 투명 유리가 있고, 우측은 음식과 물을 넣어주는 곳. 문 아래 빨간 줄을 넘지 말라는 경고가 있음.

현지 보건소에 매일 체온을 보고하고, 두 번 신속항원검사를 해서 음성 결과를 통보하였습니다.

대만은 한국보다 더 늦게 정점이 와서 5월경에 20만 여 명의 양성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오늘 7월 1일 양성 확진자는 3만 8천 명 대에 사망자가 114명이라고 합니다. 8월경에나 일상으로 갈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먼 길을 돌아 다시 나의 보금자리 타이난 집에서 대만이야기를 또 이어갑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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