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자서전 - 인생은 아름다워(25)]예수님과 만나는 순간 '평범한 인생'이 '특별한 인생'으로 바뀌었다

스물다섯 번째 주인공. 정지환 옥천신문 객원기자l승인2020.03.23l수정2020.03.23 15:5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은빛자서전 스물다섯 번째 주인공
김순임(81, 옥천읍 금구리)씨 이야기

이번에 만난 사람은 옥천읍 금구리에 사는 김순임(81)씨입니다. 옥천교회 신자로 70년 동안 살아온 김씨에게 올해 성탄절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80을 넘긴 나이에 직장인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성탄절이기 때문입니다. 1948년 11세의 나이에 예수와 만난 이후 김 씨는 예수가 권력자들에 의하여 매달렸던 십자가를 삶의 중심에 세우고 살아왔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를 상징합니다. 아마도 십자가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것이 사랑과 감사일 터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김 씨는 앞으로도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 은빛자서전 스물다섯 번째 주인공 김순임씨

 

나에게 특별한 인생을 선물한 예수님

나는 1938년 옥천군 옥천읍 금구리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가정의 2남5녀 중 넷째 딸로 조용히 살아가던 나에게 특별한 인생을 선물한 것은 예수님이었다.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여자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선배 언니의 전도를 받고 옥천교회에 나가면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 예수님과 만나는 순간부터 나의 '평범한 인생'은 '특별한 인생'으로 바뀌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1948년부터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내 인생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신자의 거룩한 의무이자 권리인 봉사와 교제도 실행에 옮겼다. 덕분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내가 옥천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청년회를 시작으로 여전도회(회장)에서, 그리고 시찰회(회장)와 봉사부(부장)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은퇴권사로 인생의 황혼을 맞은 요즘은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1)

건실한 교회 청년 김복택과 결혼하다

가정을 이루게 해주신 것도 예수님이었다.

나는 24세가 되던 해인 1961년 교회에서 만난 '건실한 청년' 김복택과 결혼했다. 한 동네에 살던 세 살 연상의 김복택은 6남매 중 장남으로 '독실한 신자'였다. 교회에 헌신하기 위해 아예 충성 충(忠)이 들어가는 '김충무'로 개명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이 이름은 전혀 모른다. 남편은 안수집사의 직분을 맡았다.

건실한 청년이었던 남편은 '건실한 가장'의 임무도 묵묵히 수행해주었다. 딸과 사위가 운영하는 건설사의 사무원으로 일하다가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직장 생활을 계속 했다. 군대 의무과에서 복무한 남편은 제대한 이후 충남도청 건설과, 미군부대 등에서 근무하다가 민간회사 간부로도 일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게 생활비를 벌어다준,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남편에게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남편은 건강하고 검소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겼다. 봉급을 받아도 절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넘겼다. 대신에 나는 알뜰하게 절약하며 살림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 성경을 읽고 있는 김순임씨. 그는 성경을 읽을 때 늘 무릎을 꿇는데, 이 자세가 오히려 편안하다고.

 

■ 폐결핵·위암의 시련과 고난도 이겨내고

시련과 고난으로 우리 가정을 단련시켜 주신 것도 예수님이었다.

결혼한 이듬해 장녀가 태어났다. 그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가던 무렵 내가 덜컥 폐결핵에 걸렸다. 대다수 서민이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 푹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무조건 읍내를 떠났다. 리어카에 솥단지와 이불을 싣고 군서면 입구에 있던 한 마을로 들어갔다. 친정엄마와 어린 딸이 동행했다.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며느리를 위해 시아버님이 가물치와 약재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약 20일이 흘렀을 무렵의 일이었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 나에게 약을 주셨다. 비몽사몽간의 일이었지만 폐결핵이 깨끗하게 물러갔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젊어서 아팠던 나와 달리 남편은 나이가 들어 암에 걸렸다. 2011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당시에도 우리는 예수님께 의지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술하고 7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편의 위암은 재발하지 않고 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명기 5:16)

▲ 3

 

■ 목사 된 시동생, 장로 된 사위는 '축복'

시련과 고난으로 우리를 단련시켜 주신 것도, 고난과 역경 뒤의 축복을 아낌없이 주신 것도 예수님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답하겠다. 비록 암 수술을 받고 많이 늙긴 했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남편, 넓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가 고생하며 어렵게 마련한 집, 크게 출세하거나 치부하지는 못했지만 큰 병 들지 않고 건강하게 오손도손 살아가는 4남매(2남2녀)와 손주들(3남4녀)이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나와 남편의 예수님과의 만남이 다른 가족들로 이어진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큰 축복이다. 친정에서 우선 부모님이 예수님을 만났고, 올케와 조카들도 예수님을 만났다. 나아가 장로 안수를 받은 조카도 나왔다. 시댁에서도 시부모와 시동생이 예수님을 만났다. 시동생이 목사님이 되어 가문의 영광을 온전히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녀들에게도 은총을 나누어주셨다. 장녀와 차녀가 권사와 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고, 큰 사위는 장로로 임명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자랑한다. 우리 집 현관에 걸려 있는 성경 구절처럼, 비록 지금 가진 것이 적더라도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 슬픔도, 기쁨도 서로 나눠온 신앙공동체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인데,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성도의 교제'다. 이와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모임이 하나 있다. 나를 포함해 옥천교회 권사 10명이 50년 넘게 매월 2일 모임을 가져왔다. 그래서 모임 이름도 '2일계'가 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총무로 섬기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 생일은 물론이고 경조사를 챙겨주고, 1년에 한 번은 꼭 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깊은 정이 들었다. 안 보면 보고 싶고(실제로 주일에 안 보이면 안부 전화를 꼭 하게 된다), 만나면 반갑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지금은 모두 은퇴했지만 아직도 교회에서 만나면 애틋하다.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모임을 가져 오면서 그 말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며 7명이 남았지만 끝까지 서로 의지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 상처받은 마음 치유하는 비법은 '기도'

평생을 살림만 해오던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1년 전부터 우리 집 가까이 있는 시니어클럽에 출근하고 있다. 한 달에 10일 나가서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있다. 인생 80을 넘긴 시점에 '1년 초보' 직장인이 되어서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모른다. 직장 생활을 못해 봤으니 도전해보라는 남편의 격려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늙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이종숙 관장님을 비롯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살아오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지체 없이 '기도'라고 답한다. 아무리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기에 타인과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화가 나서 싸우고 싶을 때가 나라고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 기도하면 화내지 않고 참을 수 있었고, 그것은 나중에 나에게 몇 배의 위안과 평안으로 돌아왔다.

 

글 정지환 객원기자·사진 박누리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주] 정지환 기자는 1993년부터 월간 말, 오마이뉴스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애칭을 얻는 등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논쟁적 기사를 남겼다. 2004년에는 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 창간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0년 사회적 좌절을 맛보고 ‘감사’를 만나면서 기업, 학교, 군대, 지자체 등에서 1000회 넘게 '감사' 강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1인기업 감사경영연구소 소장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30초 감사’, ‘감사 365’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 이 글은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정지환 옥천신문 객원기자  lowsaeja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지환 옥천신문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유원진,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