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리 해변에서

진리는 덕적도의 중심마을인 면 소재지이다. 그 서쪽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서포리 해수욕장. 1977년 3월에 서해안의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서포리국민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한 이곳은 2010년에 자동차 야영장과 공원을 조성하여 서해 최고의 관광지로 떠올랐다.

 

모래밭의 파수꾼, 갯그령

 

▲ 서포리 해변 모래밭을 뒤덮고 있는 갯그령. 오른쪽은 예전에 실미도에서 담은 갯그령꽃.

 

30만 평이라는 넓은 백사장을 점령하고 있는 갯그령 군락이다. 갯그령은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염생 식물이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길게 벋으며 줄기의 높이는 1미터쯤 자라기도 한다. 잎을 만져 보면 여느 풀과 달리 맥이 튀어 올라 있고 아주 거칠다. 강한 바닷바람과 해무, 뜨거운 햇빛, 침수, 소금기 섞인 지하수 모두 하나같이 최악의 조건 아닌가? 비록 볼품없지만 이렇게 막강한 세력으로 자라고 있으니 참으로 경이롭다. 밟히고 되밟히고 또 다시 짓밟혀도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모름지기 그대는 분명 토사유출방비초(土沙流出防備草)! 위대한 자연의 표상이요, 모래밭의 파수꾼이다.

 

만조선 가까이 출현하는 통보리사초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갯그령과 세력 경쟁을 펼치고 있는 통보리사초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사초’란 모래땅에 사는 풀을 말하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식물은 우리나라에서 130여 종이나 산다고 한다. 벼과식물인 보리와 달리 줄기를 만져보면 세모꼴로 각이 져 있다. 투박하면서 세모지고 단단한 줄기, 바로 사초과 식물의 특징이다.

꽃은 이미 졌나 보다. 보리이삭같이 생긴 큼직한 열매가 익어간다. 누런 이삭들이 즐비하다. 줄기는 제법 단단하고 뿌리는 매우 굵고 깊다. 갯그령 다음으로 만조 때의 바다와 땅의 경계선 가까이 출현하는 식물종이다. 그만큼 해안가 모래밭의 우점종이다. 인위적인 장벽과 사람들의 무관심, 그리고 잇속만 챙기려는 자본의 논리 앞에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래땅! 자기를 믿고 따라 달라는 통보리사초의 애원에 해안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보잘것없이 보이는 ‘큰보리대가리’가 나 보란 듯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다.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갯방풍

 

▲ 갯방풍 꽃가루가 이파리 위에 수북하다. 오른쪽은 강릉시농업기술센터에서 재배 기술을 개발, 시판하고 있는 갯방풍(강릉시농업기술센터 제공)

 

풍을 예방하는 약초로 알려진 방풍(防風)나물은 오늘날 나물, 쌈채, 장아찌 등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황사와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중금속을 해독하며, 비염이나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에도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기운이 없을 때 멥쌀죽에 방풍을 넣고 다시 끓인 방풍죽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여느 염생 식물처럼 잎은 광택이 나고 두껍다. 가장자리에는 자잘한 톱니가 많은데 마침 꽃자루 끝에서 흰색의 작은 꽃들이 오종종하게 만발한 나머지 온통 꽃가루 범벅이다. 방풍나물과 달리 바닷가 모래밭의 갯방풍은 산림청 희귀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몰래 베거나 캐 가는 경우 위법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강릉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비가림 하우스와 노지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훼손되어 가는 자생지를 복원하고 강릉의 특산품으로 시판하고 있다.

 

하루를 살아도 향기롭게 스러지는 갯메꽃

 

▲ 꽃이 피기 직전 갯메꽃 모습(2020. 06. 28. 06시 30분경 서포리에서)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통통한 땅속줄기는 모래 속에 길게 뻗고, 땅위줄기는 모래 위에 가로눕거나 다른 물체를 감고 뻗는다. 윤기 나는 도톰한 잎이 어긋나고 하트 모양으로 둥글다. 잎겨드랑이에서 긴 꽃자루가 나와 그 끝에 분홍색 꽃이 하나씩 달린다. 서포리의 갯메꽃은 아직 어린 개체들인가 보다. 꽃도 열매도 보이질 않는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갯내 맡으며
밤낮으로 거친 바닷바람과 부딪쳐 온 아이
숫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큰애기 혼자
홍조 띤 얼굴로 이른 새벽 용틀임을 하고 있다.
콩팥 닮고 심장 닮은 도톰한 이파리마다
남북을 관통하고 동서를 가로지르는
하얀 길 투명한 길 형통(亨通)의 길
그 길은 너의 물길이요 숨길이요 생명길이다.
새벽에 피었다가 이내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지고 마는 삶이지만
누가 널 덧없다 하랴?
하루를 살아도 향기롭게 스러져 간 갯메꽃 있어
허기진 오늘을 살아도 구김살 없는 내일을 노래한다.

 

갯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나비 자매들

 

▲ 지난 5월 9일, 강원도 양양 남애항 근처 모래밭에서 담은 갯완두. 갯완두는 염생식물이지만 한강변애서도 발견된다.

 

그늘 한 점 없는 벌거숭이 모래밭을
기댈 곳 전혀 없는 외로운 홀몸으로
비스듬히 엎드리고 뻗어간다.
모가 진 줄기에서 나온 조막손
또르르 말린 채
어딜 향하는가
무얼 잡겠다는 것이냐
앙증맞아 더 애잔한
하지만 경이로운
긴 꽃대에 핀 적자색 꽃
영락없는 다섯 마리의 나비 자매
갯일 나간 엄마는 언제 오려나?
다소곳이 앉아 하염없이 갯녘을 바라보고 있다.

 

이미자를 즐겨부르던 어머니가 생각나는 해당화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절로 흥얼거리다 말고 피식 웃었다.
온 동네 처녀들이 살평상에 둘러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자를 따라 불렀다던 어머니!
연필에 침 발라가면서 받아쓴 잡기장이 헤지도록
보고 또 보면서 부르던 동백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잡기장 없이도 잘 부르던
총(聰)한 친구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던 어머니.
어렸을 때 건성으로 흘려버린 어머니의 노래,
그 이미자를 내가 지금 흥얼거리고 있다.
해무 짙게 깔린 서포리에서…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일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계속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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