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넘나드는 '선자령' 가을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20.10.16l수정2020.10.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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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령(仙子嶺)'에 다녀왔다. 선자령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고개다. 옛날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영동·영서지역을 왕래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자령을 넘어 다녔다. 영동·영서 지역 특성이 동쪽은 급경사, 서쪽은 완경사를 이루고 있기에 영서에 속하는 선자령 왼쪽은 조금은 쉽게 개발될 수 있었다. 대관령 양떼목장을 비롯한 목장이 2개 더 있고 이를 위한 임도와 초지가 잘 만들어져 있다.

▲ 선자령 위치

'바우길'이라고 있다.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 의미도 있고,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건강의 여신 ‘바우(Bau)’라는 의미도 있다 한다. '바우길'은 강원도 산과 바다를 낀 총길이 약 400km가 되는 ‘걷는 길’이다. 강릉바우길 17구간, 대관령바우길 2구간, 울트라 바우길, 계곡바우길, 아리바우길로 이루어져 있다.

▲ 바우길 전 구간(출처 : https://www.baugil.org/html/course/preview.html)

강릉바우길 1구간이 화살표 구간으로 이번에 다녀온 '선자령 풍차길'이다. 전체 바우길의 3% 정도 되는 아주 짧은 구간이다. 순환코스라 차를 가지고 다녀오기 편하다. 차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주차장에 하면 된다.

▲ 선자령 구간(이미지 출처 : https://www.baugil.org/html/course/preview.html)

우리는 지도 순서 반대로 걸었다. 입구에서 통신탑을 지나 전망대를 거쳐 선자령 정상에서 돌아 선자령계곡길과 양떼목장을 지나는 코스다. 총 12km로 4∼5시간 걸린다. 선자령 정상은 1,157m이지만 이미 850m 고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길이다.

올라가는 초입은 마스크를 벗고 깊은 숨을 막 들이마시고 싶을 정도로 공기 향이 좋다. 조림을 한 탓에 빽빽한 잣나무와 소나무들이 청정 향기를 쏟아내고 있다.

임도가 끝나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가다보니 자연스레 만들어진 '바위전망대'가 보인다. '바위전망대'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큰 안테나를 가진 '한국공항공사 항공무선표지소'가 보인다. 대관령 해발 1,049m에 지은 이 표지소는 항공기 항로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전파 방해를 피하려 일부러 오지에 지었다. 가까이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보니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난다.

▲ 바위 전망대에서 본 강원항공무선표지소

바다 쪽을 보니 구름이 둥둥둥.... 진격하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차할 때 음산한 기운이 도는 찬바람이 불어 비 맞고 가는 산행이 되겠구나... 했는데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려나 보다.

▲ 바위 전망대에서 보는  움직이는 구름

사람이 만든 전망대에 올랐다. 무거운 구름이 잠시 올라가고 나니 저 멀리 동해바다와 강릉까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진짜 전망대다. 이름 붙인 값을 한다.

올라갈 때 다리 근육을 써야 뻐근하니 운동이 좀 되는데... 2시간을 걸었다는데도... 힘을 하나도 안 쓴 것 같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언제 저 봉우리를 넘었나 싶을 정도로 평탄한 길이었는데... 가을 억새와 어우러진 봉우리 뒤태가 순하다.

선자령을 바로 눈앞에 두고 올라가는 길에 풍력발전기가 우리를 맞는다.  

예전에 가봤던 인제 응봉산 동화마을이 생각날 정도로 단풍이 빚어낸 고운 빛깔이 길고 부드러운 능선을 장식하고 있다.   

드디어 선자령에 도착했다. 넓은 초지다. 구름이 하늘을 메워 우리를 덮는다. 이곳은 주변 목장 동물을 위한 초지로 개발되었다 한다. 초지를 밟거나 야영, 취사를 할 수 없다고 쓰여 있던데... 초지 가운데 텐트를 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들어갔을까? 한참 뒤에 앉은 사람 옆에 김이 올라온다. 버너를 켜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사진 찍어서 고발했을 텐데...

멀리까지 웅장한 풍력발전기 수십 대가 돌고 있다. 끊임없이 바람 부는 고지대에 주로 설치한다는데 선자령이 그런 곳인가 보다.

▲ 선자령에서 만난 풍력발전기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사진을 찍히느라 '백두대간선자령'이 바쁘다. 간신히 사람이 비킨 틈을 타 잠시 내 차지가 되었다.

▲ 선자령 정상에서

선자령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메우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춥기까지 하다. 밥이 차다고 느껴지니 야외에서 도시락 먹기는 이번이 올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다행히 구름이 지나갔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손가락도 시렸고 속도 덜덜 떨렸다. 

이제 하산길이다. 정상 아래로 약 300m 정도 너덜바위 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좀 가파르다. 올라가는 길엔 없던 깔딱고개가 하산 길에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은 숨이 좀 턱턱 차겠다. 그런데 이 너덜바위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멋진 장면과 마주쳤다. 구름이 바람에 밀려 선자령 주변을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이 바람이 선자령 풍력발전기를 돌리는 힘이겠지?

대관령 하늘목장으로 갈라지는 목장사거리에서 선자령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품 같이 둥글고 부드럽다. 저 푸근한 품에서 온갖 동식물도 살고, 목장에서 필요한 풀도 나오고, 전기도 나온다.    

목장사거리에서 숲길로 내려가자 단풍과 계곡길이 우릴 반겨준다. 이 계곡이 선녀가 와서 목욕하고 갔다는 계곡일까? 선자령(仙子嶺)은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한 선녀들이 아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놀다 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옛사람들은 선자령 계곡을 소중한 비경으로 생각했나 보다.

선자령 계곡 주변은 산림생태계에 소중한 역할을 하는 산림습원 지역이라 한다. 비와 바람, 사람 발길로 지속적인 침식이 일어나고 있어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고산 지대 습지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속새'를 복원 식물로 심어놓았다. 속새는 늘푸른 식물이다.

▲ 속새

풍해조림지에서 멀리 KT통신탑이 보인다. 이 지역은 2007년 3월 2일간 회오리성 강풍이 불어 잣나무 약 3,000그루가 쓰러졌다. 이후 12,000그루 잣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이 나무들은 서로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서 웬만한 풍해에도 견딜 수 있다 한다. 풍해조림지 덕에 잣나무 향도 실컷 맡고 멋진 풍광도 만날 수 있었다..   

양떼목장 너머 능선과 구름이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선자령 풍차길' 산행은 끝났다. 

'선자령 풍차길' 이름처럼 선자령에 풍력발전기를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강원도에서 풍력발전기를 관광자원이라 설명했으니... 그러나 나는 이들이 불편했다. 선자령 꼭대기 땅과 하늘 사이에 당당하게 서있는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발전기는 음울한 소리를 내며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세운 컨트롤 타워처럼 보였다. 어떤 이들은 멋있다고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기념사진을 찍는데 나는 멋있기는커녕 파괴적으로 보였다. 풍력발전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재생에너지라 예쁘게 봐줘야 하는데... 산꼭대기에 세운 풍력발전기는 산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고통받는  동식물들 처지가 자꾸 떠올랐다.  

다행히 정부는 육상풍력 발전사업의 환경문제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기사에서 보면 산업부는 육상풍력 발전사업 허가 요건으로 '환경성 검토'를 추가했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 영향과 입지규제 저촉여부 등을 점검하고 환경훼손을 최소화한 풍력보급 확대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그런데 한국이 육상풍력이 적합한 곳일까? 산이 70%라 평지에 비해 바람이 막히는 한국에서는 육상풍력보다 삼면이 바다인 해상풍력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해상풍력은 육상풍력보다 소음이 작고, 대형 터빈을 설치하기 쉽고, 바람의 흐름도 안정적이라고 한다.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한겨레>에 '전북 고창·부안에 원전 2기 규모 해상풍력단지 본격 추진'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특히 서남해권은 지형상 해상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데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 한다. 국내 해상풍력발전기도 기술력과 경쟁력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가 크다.

해상풍력발전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해양 동물에게 어떤 영향이 없을까? 해상풍력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양어장에 물고기가 몰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제주 대정해상풍력발전기로 인해 남방큰돌고래 지느러미가 잘리고 암에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겠다.

선자령에 갔다 와서 에너지 문제로까지 넘어가니 나도 참... 못말리는 인간이다.

참고기사 : 환경성 낙제점 받으면 육상풍력 발전사업 못한다
https://news.v.daum.net/v/20200326105903651
참고기사 : 전북 고창·부안에 원전 2기 규모 해상풍력단지 본격 추진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54123.html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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