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다. 어제에 비해 찬 거지 원래는 더 차야한다.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남산에서 가장 깊고 큰 계곡 용장골을 오른다. 용장마을에서 용장사지를 찾아 나섰다.

 

12월 중순인데 계곡물은 아직 얼지 않았다. 꽝꽝 얼어야 정상이다. 양지바른 곳, 물살이 센 곳만 얼지 않고 산짐승들에게 마실 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꽝꽝 얼었던 계곡이 얼음 아래서부터 녹아 졸졸졸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이다. 더 추워지길 바라며 산을 오른다.

 

용장사는 생육신이신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한시도 지었다.

 

용장골에서

               - 매월당 김시습(1435~1493) -

 

茸長山洞窈 (용장산동요) : 용장골 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불견유인래) :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細雨移溪竹 (세우이계죽) :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斜風護野梅 (사풍호야매) :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小窓眠共鹿 (소창면공록) :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枯椅坐同灰 (고의좌동회) :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不覺茅(불각모첨반) : 깰 줄을 모르는 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庭花落又開 (정화락우개) :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김시습의 법호가 설잠(雪岑)인데 용장골을 건너는 다리를 설잠교라 했다. 설잠스님이 수없이 건넜을 용장계곡에 설치된 현수교이다.

 

계곡에 방치되어 있던 돌확(절구)을 정비해 놓았다. 오른쪽 계곡에 돌확이 원래 있던 장소도 표시해 놓았다.

 

김시습 한시에 신우대(溪竹)로 묘사된 조릿대(山竹)가 용장사지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려준다.

 

용장사지 탑부재들이다.

 

저 멀리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187호이다. 삼국유사에 대현스님이 그 주위를 돌면 미륵상도 스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고 전하는 바로 그 불상이다. 둥글게 만들어 놓은 삼륜대좌가 진짜로 돌 것 같다.

 

흰 구름을 뒤로 하고 있는 모습도 멋지다.

 

내려오면서 화려한 조명을 바로 받은 모습은 환상적이다.

 

조각이 섬세하고 특히 옷자락이 아름답다.

 

이 석조여래좌상 바로 뒤에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보물 제913호이다. 실제 사람 크기 정도인데 참 잘 생겼다.

 

천년의 세월을 석조여래좌상을 지켜보았으니 불상 머리가 언제 어디로 없어졌는지도 알 것 같다.

 

이 마애불도 화려한 조명아래서는 더욱 아름답다.

 

햇살이 눈부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다.

 

두 부처님을 뒤로 하고 벼랑길을 돌아 좀 더 오르면 드디어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나온다. 보물 제186호이다.

 

산 전체를 기단삼아 탑을 쌓아 놓았다.

 

내려오면서 다시 본 삼층석탑. 참 늠름하다.

 

삼층석탑 위쪽에 남아있는 용장사지 탑부재이다. 꽤 큰 탑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큰 바위가 찬바람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다시 용장골로 내려간다. 하산 길에 올려다 본 삼층석탑은 정말 하늘에 닿아 있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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