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사지를 찾았다. 틈수골에서 올랐다. 천룡사 바위틈에서 물이 나와 틈수골이라 했다고도 하고, 골짜기 틈틈이 물이 나와 틈수골이라 했다고도 한다. 하여튼 물이 많은 골짜기인 모양이다.

 

연못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와룡동천이 나온다. 경주 최부자댁 7대 용암 최기영이 은거하기 위해 1814년 와룡암을 지었다고 한다. 이 때 연못도 만들고 계곡을 와룡동천이라 부른 모양이다.

 

그 후 18255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떠나고, 별장으로 이용하다가 법당을 만들고 부처님을 모셔 집안 평안을 비는 와룡사가 되었다 한다. 동지라 팥죽을 끓이는지 분주하다.

 

와룡사를 뒤로 하고 한참을 오르면 감나무, 향나무, 대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무덤 몇기가 보인다.

 

까치밥으로 그냥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참 많다.

양지바른 평지다. 천룡사지이다천룡사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들어와 산 모양이다. 아직도 집 몇 채가 있고, 녹원정사란 식당도 있다.

와룡계곡에 누워있던 용이 고위봉 정상에서 하늘로 올라 천룡사라 했다고도 하고, 고려 때 최제안이 두 딸 천녀, 용녀를 위해 중창하며 천룡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천룡사를 중창한 후에 두 딸 이름을 천녀, 용녀라 했을 수도 있겠다. 최제안은 시무28조로 유명한 최승로 손자이다.

 

용장사에 머물던 김시습도 천룡사를 자주 찾은 모양이다. 천룡사 스님과 차 한잔하시며 시도 한 수 읊으셨다.

 

天龍寺感舊(천룡사감구) : 천룡사에서 옛일을 떠올리며

                                - 매월당 김시습(1435~1493) -

 

齊顏二女號天龍(제안이녀호천룡) : 제안의 두 딸이 천녀와 용녀인데

爲祝延齡作梵宮(위축연령작범궁) : 이들 오래 살라고 부처궁을 지었다네

往事已成塵土夢(왕사기성진토몽) : 지난 일 이미 티끌 되어 꿈같은데

空餘山鳥自呼風(공여산조자호풍) : 하늘에선 산새만이 바람에 지저귀네

 

집들을 돌아서면 청룡사지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보물 제1188호이다. 천룡사 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90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후 1991년 기단 일부와 머리 장식부분을 보충하여 다시 세웠다. 탑 뒤로 고위봉이 보인다.

 

그 넓은 천룡사지에 흩어져 있던 석조유구(石造遺構) 한 곳에 모아 정리해 놓았다. 석등, , 맷돌 등의 일부분들이다.

 

아직도 발굴중이다.

 

용장골이다.

 

천룡골이다.

 

남산 최고봉 고위봉이다. 바람이 차다.

 

고위봉에서 내려다보는 천룡사지 넓긴 넓다.

 

용장골 건너 금오봉이 보인다.

 

잘 보면 용장사지 삼층석탑도 보인다.(빨간 동그라미 안)

 

내려오다 보니 계곡 아래로 연못이 보인다. 저 연못 근처에 부도밭이 있다는데 이번에는 못 가보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