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떠오른 지 서른 하루가 떠나갔다. 간 자는 오기도 하지만 떠난 자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왕래’(往來)는 실속을 갖춘 말이나 ‘거자필반’(去者必返‘은 언어유희다. 그렇게 믿은 지 십 년이 됐다. 떠난 자, 떠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기에 그에 대한 미련(未練)은 미련한 정신의 작용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우습게 들릴 텐데, 내게 ‘미래’(未來)는 알맹이 없는 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다. 어느 시점에서든지 미래는 말로써만 존재할 뿐 그 실체가 확실하지 않다. ‘미래 희망’은 헛말이다. 반면 ‘장래’(將來)는 곧 닥치는 내일이다. 올해 춘삼월은 가까운 장래이고, 내년 춘삼월은 먼 장래이다. 2050년은 더 먼 장래이다. 그래도 삼라만상이 반드시 직면할 날이다. ‘장래’는 알이 가득 찬 영광 굴비처럼 탐나는 말이다. ‘장래 희망’은 실천을 부추기고 격려하는 말이다.

새해 운세를 운운할 만큼 공부가 충분하지는 않다. 한겨레 주주인 도명 김상학 선생의 글을 읽고 용기를 냈다. 아쉽게도 직접 뵙지도 못하고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도명 선생은 <한겨레:온>에 “김상학의 ‘쉬운 역학(易學)’ ”이라는 주제의 글을 격주로 약 4년 4개월 동안 올리셨다. 첫 글은 2015년 9월 25일 ‘역학이란’이고, 104회차의 글은 2020년 1월 17일 ‘사랑에 대한 단상’이다. 2019년 11월 교통사고를 당한 후 3개월여를 투병하시다가 지난해 1월 29일 작고하셨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글을 써서 보내셨다. 작고 직후 2월 1일에 실린 ‘마지막 인사말’을 보니, 대학과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우리 민족의 3대 경서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를 연구하신 도명 선생의 숨결이 다가옴을 느낀다.

출처: 한겨레 신문, 2015.03.13.
출처: 한겨레 신문, 2015.03.13.

[김상학의 ‘쉬운 역학(易學)’ 1000. 마지막 인사말]

나의 본고향

저 광활한 우주

허공 속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저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공부였지요.

 

매끄럽지 못한 글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명(陶明) 김상학 드림

도명 선생은 2016~2020년 기간에 매년 새해 운세에 관한 글에서 입춘이 새해의 시작임을 명시하고, 5運6氣學학과 주역으로 운세를 풀이하셨다. 도명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2021년 새해 운세 풀이를 주역의 관점에서만 시도해보고자 한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양력 2021년 2월 3일 23시 59분, 입춘(立春) 시각부터 시작한다. ‘흰색 소 해’이다. 辛은 오행으로 金이고, 金은 백색이고, 丑은 소이다. 참고로 2020 庚子년 입춘 시각은 양력 2020년 2월 4일 18시 02분이었다.

우선 천간과 지지의 선천수는 아래와 같다. 왜 그렇게 짝을 짓는가는 놔두고 그냥 받아들이자.

주역의 관점에서 辛丑년 운세를 보면, 辛은 선천수로 8, 8은 주역 8괘로 8곤지(八坤地), 천간(天干)이므로 상괘(上卦)가 된다. 丑은 선천수로 2, 2는 주역 8괘로 2태택(二兌澤), 지지(地支)이므로 하괘(下卦)가 된다. 상괘와 하괘를 연계하여 64괘로 보면 지택림(地澤臨)이다. 지택림은 64괘 중 상경(上經)에 속하고 고유번호는 19번이다.

주역 원문에서 지택림(地澤臨)의 괘사(卦辭)를 보면(김석진, <대산 주역강해: 상경>, 245-246쪽),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 有凶 (림, 원형이정 지우팔월 유흉)

: 림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8월에 이르러선 흉함이 있으리라.

림괘는 땅에 모내기하는 데 필요한 못물이 임하여 만물을 기르는 상이다. 즉 모체 속에서 양(⚊)이 자라, 나올 때가 임박한 괘상(卦象)이다.

괘상과 괘사는 서로 암시하는 바가 다르다. 못물에서 양(⚊)이 자라, 나올 때가 임박한 상이나 8월에 이르러선 흉함이 있다. 나오려고 자라는 양(⚊)이 흉함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간략하고 소박하게 함이 좋겠다.

한편 효(爻)를 살펴보면, 선천수 辛 8에 丑 2를 더하면 10이다. 대성괘는 효가 모두 6개이다. 10을 6으로 나누면 몫은 1이고 나머지는 4이다. 그러면 아래로부터 4번째인 4효(六四)가 동효(動爻)로 된다. 지택림(地澤臨) 괘에서 4효에 변화를 주면, 상괘 팔곤지는 맨 아래의 음(⚋)이 양(⚊)으로 바뀌어 4진뢰(四震雷)로 변한다.

상괘 사진뢰와 하괘 이태택을 연계하여 64괘로 보면 뢰택귀매(雷澤歸妹)이다. 뢰택귀매는 64괘 중 하경(下經)에 속하고 고유번호는 54번이다.

주역 원문에서 뢰택귀매(雷澤歸妹)의 괘사(卦辭)를 보면(김석진, <대산 주역강해: 하경>, 205-206, 210쪽),

歸妹, 征凶 无攸利 (귀매, 정흉 무유리)

: 귀매(누이동생을 시집보냄)는 가면 흉하니,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네 번째 효(九四)의 효사(爻辭)를 보면,

九四 歸妹愆期 遲歸有時 (구사 귀매건기 지귀유시)

: 구사는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데 기약을 어김이니, 더디게 돌아감이(시집감이) 때가 있느니라.

천천히 부드럽게 목적지로 돌아가면, 도중에 적절한 때가 온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지택림(地澤臨)의 괘사에 따라 8월에 있을지 모를 흉함에 덜 다치게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처신하는 게 필요하겠다. 마음이 급해지면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하리.

지택림 괘와 뢰택귀매 괘의 상육효(上六)가 모두 좋으면 오히려 안 좋을 수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지는 않다. 후자는 실물이 없어 이로울 바가 없으나 전자는 일이 상서로워서 허물이 없다.

지택림 괘의 여섯 번째 효(上六)의 효사를 보면((김석진, <대산 주역강해: 상경>, 252쪽),

上六 敦臨 吉 无咎 (상육 돈림 길 무구)

: 상육은 돈독하게 임함이니, 길해서 허물이 없느니라.

뢰택귀매 괘의 여섯 번째 효(上六)의 효사를 보면(김석진, <대산 주역강해: 하경>, 211쪽),

上六 女 承筐无實 士 刲羊无血 无攸利 (상육 여 승광무실 사 규양무혈 무유리)

: 상육은 여자가 광주리를 이는데 실물이 없느니라. 선비가 양을 찔러서 피가 없으니 이로운 바가 없느니라.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머물 당시 맏상좌 덕조 스님(왼쪽)과 마루에 앉아 있다. 불일암 제공출처: 한겨레신문, 2020-02-19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머물 당시 맏상좌 덕조 스님(왼쪽)과 마루에 앉아 있다. 불일암 제공.
출처: 한겨레신문, 2020-02-19

요컨대 2021년은 세상이 길하도록 돈독하게 임하는 힘과 실물을 없이하는 힘이 작용하는 해로 풀어진다. 어느 힘이 더 클지는 일상생활의 간소화 여부가 좌우하리라. 두 해째 온 세상을 지배하는 코로나19는 인간의 번잡한 삶, 즉 3밀(밀집, 밀폐, 밀접)을 좋아한다. 그 심각성이 현실로 다가오는 기후위기도 매사를 신속하면서도 번잡스럽게 한 탓이 크다. 그렇다면, 올해 신축년에는 간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야 한다. 또한, 더디 가더라도 즐거워해야 한다.

레오폴트 코어(1909~1994년): “거대함은 모든 사회적 불행의 원인”
레오폴트 코어(1909~1994년): “거대함은 모든 사회적 불행의 원인”
출처:  한겨레신문, 2020.12.12.

도명 선생께서 광활한 우주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지혜를 주시리라 믿는다. 아마도 <한겨레:온>에 연재한 글을 잘 읽어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내년 이맘때는 도명 선생이 정성들여 설명한 오운육기학과 주역을 더 공부하여 2022년 임인년(壬寅年)의 운세를 풀어보리라.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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