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강사 새끼의 고백 (이까르의 탄식)--1

 

                                                                                                                                                   필명  김  자현

                    한겨레 포토--게잡이 축제
                    한겨레 포토--게잡이 축제

 

너울거리는 둥근 원 속에 소년의 얼굴 얼굴들, 탈과 탈이 춤을 춘다. 둥근 탈, 세모 탈, 뭉실한 탈, 여우 탈 장방형의 탈과 탈들! 맨발로 지축을 다지며 원을 따라 도는 영락 없이 토인들이다. 밤늦게 떠난 어른들의 뒤를 따라 소년들이 노성천에 이르면 거긴 그믐이다. 잉크보다 깊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강이 바르르 끓을 때 하늘이 베일을 한 장 걷은 첫새벽! 별들과 눈을 맞추러 새카만 털게들이 강바닥에서 올라온다. 이날은 올라온 검정 털게보다 사람들 머리통이 더 많이 강변에 깔린다. 준비해 온 각자의 망태기가 흡족하도록 불룩해지면 밤은 이제 푸른 새벽에 다리를 놓는다. 산을 타고 달려온 대략 초등교 오학년부터 중학생들이다. 소년들 수십 명은 횃불을 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무를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횃불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내밀고 한 손은 옆 사람의 어깨를 잡고 강변 바닥을 다진다. 횃불의 둘레만큼 암흑에 구멍이 뚫린다. 횃불이 돈다. 둥글게 짠 횃불이 이십 개가 된다. 삼십 개가 돈다. 사십 개 얼굴이 큰 원을 따라 일렁거린다.

잡아라 잡아라 털게를 잡아라

임금님 상이 부럽거든 털게를 잡아라

시월 그믐이 지나면 때는 다하리

여름내 논배미에 잠겼던 다리를 들어

지축을 흔들고 지축을 다지면

이쁜 순이 착한 영자 속살을 키울

잡아라 잡아라 털게를 잡아라

숲은 캄캄한 칠흑이다. 불빛이 뱀의 혀처럼 너울거렸다. 뻣뻣하게 긴장된 소년들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삽시간에 흩어진다. 대장의 구령이 떨어진 것이다. 횃불을 든 소년들은 산 아래 노성천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횃불은 발이 닿는 2-3미터 반경을 밝힐 뿐이다. 잎 떨어진 나목들을 겨울로 몰아대며 바람은 수수수 산을 통째로 흔든다. 원골 산성골 윗말 아랫말! 노성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 소년들이 모조리 모였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노성천 게잡이 축제! 초겨울 그해 첫 번째 한파가 닥치기 전 마을은 게잡이로 들끓는다. 조여드는 새벽 한기의 강도는 소년들 기억세포의 원형을 만드는 고탄력이다.

 

김강사는 잠에서 깨어나듯 현실로 돌아왔다. 뜨거운 숨을 토하듯 기억세포를 비집고 나온 소년들의 함성이 기차 유리창에 와 부딪는다.

‘나는 왜 그때도 축제의 원무를 늘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까. 강바닥을 구르던 그 소년들 속에 내가 없다니...너무나도 아름다운 기억,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낙원!’

예리한 면도날이 후벼파는 듯 가슴 속이 아팠다. 마음이 아픈 것인지 가슴이라는 살 속이 아픈 것인지. 고통을 심히 느낀 김강사는 창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강구를 향해 걸었다. 통로에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지방대에서 서울로 가는 통학생들이다. 김강사도 Y대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다. 마주 보고 꼭 끌어안고 있는 남녀들, 꽉 낀 청바지 앞 지퍼가 불룩한 남자 새끼도 간혼 눈에 띈다. 낯짝 빤빤한 계집애들이 남학생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섰다. 좋은 세상이야! 술꾼처럼 몸이 순간 흔들렸다. 자리를 잡느라 지난역에서 탄 사람들의 소요가 간간이 들려왔다. 영동역이 가까워 오는지 고향과 비슷한 사투리들이 김강사의 귓바퀴를 감돈다. 비로소 고통이 희미해진다. 고향 사투리 속에는 바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감정이 번번이 고이곤 한다. 그것은 무슨 이치일까. 고향에 들리려면 얼마 가지 않아 내려야 하는데...

참, 내일은 강의가 빈 날이다. S대 아이들이 축제 준비한다고 했어. 좋은 시절이야.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내게도 합법적인 휴강이란 말이다. 가뭄에 단비처럼, 짐작도 못했던 고향 아저씨벌이 내려와 내밀던 두둑한 용돈의 쾌척, 거의 그 수준으로 기분째지는 날인데. 내게도 휴강이라면 그 아이들같이 기분이 째지지는 않는다 해도 그와 비슷한 기분은 느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시간적 여유와 한가만 찾아오면 반드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악마가 있다.

승강구에 도착한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악마는 담뱃불로 지지는 수밖에. 담배를 태우면서 그는 생각했다. 고향에 들러볼까. 하지만 부모님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자 그는 얼굴에 쓴 웃음을 지었다. 영자의 그곳을 빨 듯 담배를 깊게 빨았다.

두 분의 소원대로 사법고시에 도전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어있을까? 사시에 꼭 합격하란 법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불문학 교수도 이제 물 건너갔으니 이도 저도 이제 다 틀린 셈이다. 동생들도 상급 학교를 가야 하는데 본과를 두 개나 이수하다니. 부모님 허리가 더 휘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신의 심판이다.

한국 불문학사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논문 심사위원들의 최고의 찬사도 찬사일 뿐!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돈신의 사당을 지어야 했던 것을. 올해가 전임에 걸린 마지막 나이인데 박사논문 지도교수이던 사형師兄이 엉뚱한 놈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대학원에서 공공연히 지진아로 불리던 선배로, 사형이 흔히 지진아 아니냐고 뇌까리던 놈으로 발표되기 전, 일억인지 이억인지 하는 소리들이 바람결에 들려왔었다. 소름 끼치는 그 소문이 들릴 때마다 설마로 때려잡았는데 설마가 잡은 건 지진아가 아니라 최고의 찬사를 받은 놈 아니던가.

정겨운 고향 사투리에 날이 새고 밤이 오고, 푸른 공기 쏘이며 찬물 보리밥에 씀바귀를 씹을망정 누구 뒷덜미 치는 살벌한 세상을 멀리하고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멈칫거리던 기차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야 완행열차에 흔들리는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강사새끼’라는 닉네임을 떼어버리긴 아예 글렀는지 모른다. 강사새끼는 인간도 교수도 사람도 아니더라. 지방대도 마찬가지로 돈이라고는 먹고 죽을래도 없는데 전임을 따려니까 돈을 요구하더라. 돈신의 사당 짓는 법이라는 논문을 쓰는 게 나을뻔 했어.

술을 잘 마시면 강사새끼가 무슨 돈이 있어 술을 먹느냐. 술을 못하면 술도 못하는 새끼가 그게 강사야? 옷을 잘 입으면 강사새끼가 주제를 모르고 까분다 하고, 옷을 못 입으면 강사새끼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한다. 어쩌다 강의에 늦어 택시라도 타면 강사새끼가 돈지랄 한다고 욕을 한다. 담배를 피우면 강사새끼가 담배도 끊지 못한다고 손가락질이다. 강사가 아니라 강사새끼는 세상에서 이미 선고받은 존재다. 보들레르에 매단린지 십오 년! 가족도 다 떠나고 남은 것은 악화일로의 건강과 ‘강사새끼’라는 직함, 그리고 월세방을 전전할 때 힘겨운 원서뿐이다.

갑자기 피곤하고 나른해진 김강사는 담배를 고만 피우리라, 담배갑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너는 김강사도 아니고 강사새끼야!' 하는 소리가 다시 짱-하게 들려왔다. 그는 주위를 휘둘러보면서 포켓에 넣으려던 담배갑에서 담배를 다시 꺼냈다. 불을 붙이는 손이 마구 떨렸다. 연기를 답즙처럼 토해낸다.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자 기차는 마침 고향 노성산 자락을 지나가는 중이다.

고향을 등지고 최고로 높이 날며 낙원에 한발 한발 다가가는 줄 알았었다. 살을 섞고 사는 일상은 빛나는 지성과는 무관한지 모른다. 버들피리를 불던 냇가를 이야기하고 홍수가 진 벌건 흙탕물, 노성천 게잡이 날들을 같은 칼라 같은 옥타브로 떠올리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상대는 얼마나 고귀한가. 그렇게 목을 메던 고향 계집애들을 모두 마다 하고. 다분이, 영자 또 누구더라! 궁기 흐르는 고향은 무조건 싫었어. 세련된 서울물과 연을 맺으리라. 실은 서울로 떠나기 전, 중간 기착지였던 대전으로 유학을 갈 때부터 먹었던 마음이다.

흠- 가지마오? 계집애들과 늘 함께 떠오르는 것은 남기다. 엉덩이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앞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고샅을 오가며 줄기차게 나훈아의 <가지 마오>를 읊어대던 쬐깐한 남기도 보고 싶다. 포항제철에 들어갔다더니 어느 날 자가용을 몰고 와 마을 사람들을, 아니 내 어머니를 놀래켰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라고 장남만 대하시면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그 흔한 자가용 한 대를 여태 장만하지 못하고 이때나 저 때나 완행열차에 흔들리는 신세라! 막상 고향이라고 하지만 지금 가보면 아는 사람들 모두 떠나고 어딘지 낯설고 생경한데 오로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영혼을 칭칭 감고 있는 끈질긴 기억뿐이다.

구렁이처럼 칡넝쿨에 감겨 있는 아카시아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보라색 칡꽃이 디룽디룽 매달려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카시아보다 더 진한 칡꽃 향기를 맡으며 칡뿌리를 찾아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박힌 걸 보니 분명 암칡이다. 조금만 더 파내야 뽑힐 거야. 승찬이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 무릎을 꿇고 앉은 영자도 작대기를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소년이 흙을 파던 작대기를 버리자 영자도 일어서며 작대기를 멀리 던진다. 승찬이 먼저 땅 가까이 드러난 칡뿌리를 움켜잡았다. 소년의 뒤로 돌아간 여자 아이는 끄트머리 쯤을 잡았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소년과 소녀는 용을 쓰기 시작했다.

“진짜 안 뽑힌다.!!”

“더 많이 팔 걸 그랬나 봐!”

두 아이가 함께 굵은 나무뿌리에 매달려 용을 쓰지만 칡은 좀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는다. 찬의 이마에서 드디어 구슬 같은 땀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붙들고 실랑이를 했을까. 우지끈! 시커멓게 기름진 흙을 헤치고 드디어 버둥대던 검은 육신이 뽑혀 뻐드러졌다. 아이들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영자의 봉긋한 가슴이 찬이의 팔꿈치에 와 닿았다, 또래보다 발육이 좋은 영자다. 그것은 단순한 탄력이 아니다. 그날 영자에게 동정을 바쳤다. 15살이었다. 그날의 화인은 그 후 승찬의 발기의 근원이다. 뇌에 새긴 문신이다. 수음 할 때도 반드시 등장하는 마의 삼각지다.

<다음 호를 기대해 주세요.>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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