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강사 새끼의 고백 - 3

                                                                                                                                    필명 --김   자현

 이런 싹퉁머리 없는 놈을 봤나! 군기에 군자를 몰라도 그렇지. 부대에서 아무리 휴메니티한 김 상병이라지만 날아오는 대답이 ”...알 거 없구먼유?“ 더구나 동료병사도 아니고 상급자에게? 머리에서는 화가 뻗치고 가슴에서는 웃음이 폭발할 것 같았다. 갓 들어온 신참병사가 신고하라는데 알 거 없다고 받아치는 놈은 국군 창설이래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상급자들처럼 폭력을 행사할 수는 더욱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수 없이 김상병은 일과가 끝나고 테니스장 앞 벤치로 놈을 불렀다.

 ”아까 하던 질문인데 빨리 불어라!“
 또 꾸물거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놈이 순순히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자빡 때리다 왔슈!~“
 ”무엇이라구...무엇하다가 왔다구?“
 ”자빡 때리다 왔슈, 자빡이유!“
 ”잣빳을 때려? 그게 뭐하는 건데?“

김 삼식은 여전히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거만한 표정인 채 입귀를 올리고 있었다.
”잣빳이 아니라 자빡이유. 그란디 상병님은 뭐하다 왔는디유?“
”글쎄...  나는 뭐 하다 왔을 거 같냐?“
 ”얼굴이 폐병쟁이마냥 하냐니께 서울서 대학 다니다 왔겄지유!“
 ”서울서 대학 다니다 온 것은 맞는디, 나도 시골 출신이다.“

 

 김 상병이 시골 출신임을 밝히고 나자 삼식은 금방 친근해지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딱딱하던 얼굴을 갑자기 누그러뜨리며 그는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것 아닌가. 김 상병은 어쩐지 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에게 마구 끌리는 것을 느꼈다.
 ”왜 가을이문 추수하잖아유. 상병님도 농촌 출신이니께 아실만도 헌디......왜 자빡 뚜디리는 걸 여태 모르시까? 쌀이 되기 전 벼에서 턴 낱알을 가마니에 담잖아유. 정미소로 가서 찧어서 쌀을 만들기 전 말이여유. 농촌 지도소 공무원이 나와 낱알이 얼마나 실한가 검사하지유. 기다랗구 오목한 쇠꼬챙이 생각 안 나셔유? 그 쇠꼬챙이루다가 가마니를 쑤셔서 낱알을 검사하고 판정을 하잖아유.“
 ”그래서?“
 ”그래설라무네, 큰 원안에 일급은 동그라미 하나, 이 급은 동그라미 둘, 그리구 삼 등은 공그라미가 세 개구유. 원 안에 세모가 한 개 있는 도장이 있는디 그것이 등 외구먼유!“

 ”그런데 그 자빡이라는 게 뭐냔 말여?“
 ”아- 그기 그러니까 검사관이 부르는 급에 따라 손잡이가 달린 등급 매기는 길다란 도장을 들고 있다가 빡빡 때리는 공무원이 따로 있슈. 그기 자빡 때리는 거유!“
 ”아아- 가마니에 등급 도장을 빡-하고 박는다?“
 ”그류, 그기 자빡 때리는 거유. 지는 그 일만큼 재밌고 폼나는 일이 세상에 없구먼유. 어려서부터 자빡 때리는 사람이 되기루 마음을 굳게 먹었슈!“
견디기 어려운 한순간이 김 상병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입술을 깨물며 폭발하는 웃음을 참았다. 전기 충격기에 스윗치를 넣은 듯 경미한 오한이 지나갔다. 폭소가 터지려는 늑골 밑으로 누군가  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다니. 맞아! 인생의 목표란 그렇게 선명하고 직접적인 것이라야 해!   


목과 어깨에 잔뜩 깁스를 하고 침을 튀기며 열심히 얘기하는 김 삼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긍지와 자랑에 넘쳐있는 삼식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사하러 나가는 날은 끝발 날리겠는데......“
”말씸이라구유. 어떤 집에서는 저녁을 대접한다. 어떤 집은 술을 사마......끝내주는구먼유. 우리가 매기는 등급에 따라 그해 농사가 결정되는디유, 안 그렇겄슈!“
목을 주억거리며 한 치의 의심 없이 자랑스러워 하는 삼식의 웅변이 계속되는 동안 끓어오르던 폭소의 거품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검사관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는디유. 실은 검사관이 일등이라고 소리쳐도 지가 빡- 하고 삼등을 때리면 그만이여유. 그래서 약은 사람들은 지에게 잘 보이려구 지를 대접하는 일도 많구먼유!“
”오늘부로 삼식의 별명은 자빡으로 선언하노라!“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삼식이 다시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자네가 얼마나 폼을 재며 그 얘기를 했는 줄 아나? 나도 자빡이나 될 것을......그럼 일주일에 한 번씩 완행열차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구 말이야!“
”참말이유, 병장님을 가까이 모실수도 있구...병장님이 자빡 뚜리리는 모습을 상상허니께 ...흐흐흐 지가 검사관이 되구 병장님은 내 지시에 따라 자빡을 빡-때리는 거유.“
과거의 김 상병과 졸병은 허리가 부러져라, 한참 웃어제쳤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자빡이 됐다고 했지?“
”그때는 오급 공무원 시험을 봐야 혀유. 시험을 봤는디 떨어질까 봐 엥간히 켕기드먼유. 그런디 딱- 붙었슈. 참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거구만유. 지금도 그 합격자 발표 날만 생각허문 가슴이 뛴다니께유. 농수산부 산하 공무원이 되었으니......생각해 보셔유. 즈 부모님이 손바닥만 한 논에서 쌀을 스무나문 가마니 허는디 그 공무원이 납시문 나랏님 납신 거보다 더 쩔쩔 매는디......어땠겄슈. 그때마다 제 맴이 맴이 아니었어유. 그 어린 날부터 지 꿈은 죽으나 사나 자빡이 되는 것이었쥬!“
”참 꿈 같은 날이었겠군!“
”세상을 다 얻은 것이 그만한 기분일라구유. 참말 좋았어유.“


 
두 사람은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 인생의 절정이라고 말해도 좋은 청춘 시절을 떠올리며 젊음이 다시 불붙어 오는 착각에 빠지며 들길을 걸었다. 아담한 마을로 접어들어 고샅을 지날 때 여러 마리의 들개들이 두 남자의 다리 사이를 빠져 달아났다. 저것들에게도 정치패거리가 있겠지. 

 마을 한가운데 허리가 굵은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 초록색 대문 앞에서 삼식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담한 기와집이다. 집도 샀다고 자랑을 하더니만 이 집이군! 얕은 담장 위로 안이 다 들여다 보인다. 그냥 들어가도 되겠는데 기어이 삼식이 벨을 누른다. 작은 키의 해맑은 여인이 마루에서 황급히 내려서는 것이 키가 큰 김 강사의 시야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나온 여인의 어깨를 잡으며 삼식 김 강사 쪽으로 돌아선다.
”자야, 내가 늘 얘기하던 그 김 병장님 이시다. 인사드리! 김 교수님 우리 안 사람이유!“
”어서 오셔유!“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던 그의 아내가 이 여인이던가. 갑자기 승찬 앞으로 고향 노성산 자락이 무너져 내렸다. 가빠지는 숨을 은근히 내리눌렀다. 긴 머리를 검은 끈으로 질끈 동여맨 그녀가 아름다웠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 강사의 눈동자 속에서 동공이 확대되던 삼식의 아내는 재빨리 고개를 떨어뜨리고 부엌으로 달아났다. 60촉 전구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삼식의 너스레를 듣고 있었으나 소리들은 김 강사의 주변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곤 했다.
융숭하게 차려 온 저녁 밥상을 물리고 있을 때 교복을 입은 상큼한 여학생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김 강사는 다시 한번 소리 나지 않게 긴 호흡을 뱉었다. 여중생 교복을 입은 영락없는 영자가 와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김 교수님 눈이 휘둥그레해지셨슈. 즈 에밀 닮아서 예쁘다구 했잖아유!“
”그려그려 참말로 예쁘구먼!“
다시 한번 노성천변 갈대밭을 나선 듯 거센 바람 소리가 쏴아- 몰려갔다 몰려왔다. 승찬은 마침 뜰 앞에 있는 물아카시아 나무의 작은 가지를 꺾었다.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작은 줄기에서 분홍색 물이 맺혔다. 마침 교복을 벗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자빡의 딸이 가까이 다가왔다.
”중학교 일 학년? 이름이 선율이라고?“
소녀는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하고 김 강사를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마치 옛날의 영자처럼. 그녀의 솜털과 냄새가 코끝에 만져지는 듯했다. 꺾어 든 물아카시아 가지를 들고 선율의 손목을 붙든 김 강사의 손이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엄마도 너만 할 때 물아카시아 매니큐어 칠하고 다녔을 거야!“

 

수줍은 듯 선율이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열 개의 손가락에 다 발라주고 돌아서자 후식으로 과일을 겸한 술상이 마루에 차려져 있었다. 삼식과 술을 몇 순배 하고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보이스카웃 엠티를 가고 없다는 삼식의 아들 방에 들어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까르*가 생각났다. 감히 하늘의 중심을 가늠해 보겠다고? 에덴동산을 엿보는 것은 몰라도 하늘의 눈을 찌르는 수작이었어. 불을 끈 천정에 줄지어 공주와 노성산 자락과 게잡이 필름이 너울거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아침은 유난히 화창했다. 비번이어서 출근하지 않는다는 자빡을 집에 두고 김 강사는 학교 가는 선율과 함께 집을 나섰다. 방금 이슬로 세수를 마친 들과 산들이 반짝 눈을 뜨고 공기는 싱싱한 날개를 펴서 지친 영혼의 살갗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마을이 끝나고 내를 건너서까지 따라 나오며 마냥 아쉬워 하는 자빡의 몇 발짝 뒤에서 그의 아내는 망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과 헤어져 내를 건너 차부로 나올 때까지 승찬은 옛날 영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가 엊저녁에 그러셨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교수님 계신 K대학교에 들어가래요.“
”...저희 엄마도 중학교 때 어떤 남학생이 물아카시아 매니큐어 칠해 줬대요!“
영자보다 낮은 선율의 목소리에 놀라 승찬이 밟는 환각의 들길이 심하게 꽈리를 불었다.

 

  (에필로그)  

  한가한 주말 오후, 이십 년 만에 만난 동창, 승찬의 과거사를 듣는 사이 한산하던 단골 까페는 저녁 손님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쌍한 강사 새끼는 이야기를 마치자 주말인데도 고3짜리 아르바이트 간다고 서둘러 일어서더니 술이라도 한잔 하자는 내 청을 깨끗이 거절하고 가버렸다. 그가 잊고 간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오로지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피워보지 않은 담배지만 입에 물고 탁자에 뒹구는 플라스틱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가 앉았던 앞 좌석을 향해 가는 연기를 눈으로 쫓았다. 정치가들의 희생물이 된 ‘강사 새끼’가 일어난 자리에 하얀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날개가 부서져 나간 이까르의 겨드랑이에 붙어있던 밀랍 가루였다.  

 

*이까르-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불어표기. 부모의 당부를 듣지 않고 하늘에 너무 높이 날아올라 밀랍으로 된 날개가 태양에 녹아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는 희랍의 신화.    

끝-- 다음 소설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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