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강사 새끼의 고백 - 2

                                                                                                                                         필명   김   자현

비는 여전히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물이 없어 시골 어디에서는 초등생들에게 급식을 중단했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모처럼 단비다. 서울로 유학 간 아들을 위해 논바닥보다 더 갈라진 아비 어미의 가슴속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강사라는 영세민보다 못한 경제적 최저 생활자를 만들기 위해 전공을 바꿔가며 대학을 두 개나 다니고 박사학위에만 바친 세월 15년! 강사라는 박사가 보따리 장사라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다. 어디 공사판에 나가 벽돌을 나를 수 있을 것인가. 등짐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잘 하면 전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실낱보다 가느다란 희망 하나를 붙잡고 기다리는데 바친 세월 이십 년이다.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친 승찬은 기차 간 좁은 통로를 거쳐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었다. 누군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손잡이를 밀고 들어설 때부터 보였다. 머리를 짧게 깎은 흰 노타이 차림이 꼭 말단 공무원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회색 자켓을 걸친 그의 얼굴이 유난히 가무잡잡하다는 생각 뒤로 어디서 본듯한 인상이다. 남성은 다부져 보였다. 말 걸기도 싫은데 그냥 갈까 하였으나 다음 순간 승찬은 화기 치밀어올랐다. 그동안 수없이 강탈당한 밥그릇이 시커먼 가마솥으로 변했다. 유약해서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면서 사십을 넘었단 말이다. 사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김 강사는 그를 내려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짧게 내뱉었다.

“자리 좀 비켜주실까요?”

사나이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앉은 채로 승찬을 찬찬히 올려다보던 사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두 사나이는 억-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눈을 감고 있던 옆 좌석의 중년 여인과 앞뒤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나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이게 누구십니까? 김승찬 병장님 아니신지유?“

사나이가 김 강사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어어-이게 얼마만이요?“

”왜 그류! 말씸 놓어셔유. 병장님 일단 앉으셔유. 병장님을 이렇게 만나다니 세상 죄짓고는 못사는 거유. 울매나 병장님을 보고 싶었다구유. 어디 가시는 중이십니까?“

”어- y대 강의 마치고 올라가는 중이라네.“

”결국 교수님이 되셨구먼유!“

교수? 명치 끝으로 강타가 날아왔다.

”그래 어떻게 살만한가?“

”그람유, 장가도 가구유...애들도 낳았슈. 병장님은유?“

”으음, 나두 남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뭐!“

”한...십오 년은 족히 되얏을 법 한디....... 결국은 교수님이 되셨구먼유. 우리 모두 그때부텀 그럴 줄 알아 봤다니께유. 틈만 나문 책하고 씨름해쌓더니만......“

삼식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김 강사의 손을 움켜잡고 옆의 사람들을 흘끔거리며 호들갑을 떤다.

”지는 조치원 역에서 내리는데 병장님, 별일 없으시문 즈 집어 하룻밤 묵어 가시문 안 되실라나?“

”시간이야 있지만......다음에 하지.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여전히 고 깔끔한 성격하고는...어서 사모님께 전화 넣어유. 하룻밤 묵어 간다구유.“

사모님이라는 단어가 승찬의 가슴을 꼬챙이로 후벼팠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딸을 데리고 공항 로비를 걸어가던 모녀의 마지막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나는 이제 완전히 홀로란 말이다. 누가 뒤통수를 한 대 갈기는 것처럼, 왜 하필 이 순간에 그 사실이 번개처럼 벼락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참 사모님은... 그때 부대루 면회 오시던..... 그 아가씨지유? 차암 하얗고 이뻤는디......“

사나이의 가늘어진 실눈에서 회상의 뽀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최악의 불행을 애써 얘기할 필요는 없지. 이 순간만 잘 넘기면 되는 것을......

”자네는 아이가 몇 이라구?“

”예, 둘이유. 위가 계집애구먼유. 즈 에밀 닮아서 예뻐유!“

”아---그래?“

웃음을 잔뜩 머금은 김 강사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시늉을 보낸다. 그의 자랑은 예나 지금이나 왜 역겹지 않은 것일까. 김 강사는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 김삼식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큰 애는 중 1학년이구유. 작은 것이 4학년이유. 나처럼 자빡뚜디리는 사람 허문 어떻겠냐고 했다가 하루는 난리가 났어유. 그런 거 창피해서 안 헌다구...“

김 강사가 폭소를 터뜨리자 삼식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아직도 자빡 뚜드리나?“

삼식은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으며 양미간을 찌푸렸으나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게 어디로 가남유, 그게 지 천직인디유. 이제는 검사관이 되어 날마다 뚜디리지는 않구유. 아래 애들 손이 모자랄 때나 지도 나가지유.“

”승진했다는 소리여, 시방?“

어느새 승찬의 입에서도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허긴 그렇다고 볼 수 있쥬. 호봉이 많이 올랐으니께유.“

”살만 혀? 한 달 봉급이?“

”흡족허진 않지만유. 시골살림이니께 그럭저럭......그기다 우리 처자가 아주 알뜰허구먼유. 틈틈이 놀지 않구 부업이라두 허구 해서 먹구 살만 혀유. 집두 장만 했슈!“

옛날 부대배치 받고 신고하던 날처럼 그는 여전히 긍지와 자랑이 넘친다. 어떤 마누라를 얻었기에 마누라 자랑을 은근히 하고 싶은 모양이야!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볼까?

평생소원이던 직업을 갖고 마누라가 이쁘고 자식도 둘이나 두었다? 전국 모의고사 일등에 전 공주 바닥이 떠들썩하던 강사 새끼는 월세방을 지금도 전전하는데 집 장만도 했단 말이네. 김 강사는 행복한 조건을 모조리 갖춘 사내의 뒤를 따라 조치원 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그란디 교수님, 우리 밖에서 한잔 걸치고 갈까 했는디유...제 마누라가유. 솜씨도 좋구먼유, 그냥 집으루 곧장 가는 건 어떻겄슈?“

”글쎄 뭐...생각대루 혀. 그런데 증말 가두 되남?“

”말씸이라구유. 발써 핸드폰 때려놨슈. 걱정 붙들어매서유.“

삼식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 한 개를 빼앗아 들고 두 남자는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고렇게 하얀해 가지고는... 병장님 때문에 참 통쾌한 일두 많었었는디...“

말을 마친 삼식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왜 있었잖아유. 순잔지 주걱턱인지 대통령 부인이 부대에 시찰왔다가 사병들 앞앞이 종합선물 나눠주고 간 사건 말여유!“

”그런데......무슨 얘기지?“

다시 삼식이 우스워 죽는다고 발걸음을 멈춘다.

”왜 병장님이 상병 달고 있을 때 임 병장이라는 작자가 아이들에게 배당된 종합선물을 모조리 따가꾸 좋은 걸 모조리 제 사물함에다 감춘 사건 말여유.“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승찬은 멀뚱한 표정으로 아직 안개 속을 헤맨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삼식은 다시 킬킬거리느라고 말을 잇지 못한다.

”임병장이 없는 틈에 스무 나문 명 넘는 아이들에게 쪼꼬렛 들어있는 임병장 사물함을 뜯고 모조리 먹게 하셨잖아유!“

아 맞다! 기억의 어둔 방 하나에 30촉 전구가 확 켜졌다.
”나중에 자기 사물함이 털린 걸 알게 된 임병장이 아이들을 개처럼 패던 날이 있었슈. 그때 밖에서 들어오다 이를 본 상병님이 임병장을 옆구리에 끼고 사정없이 코를 뭉게 버렸잖아유. 지는 그때 쪼꼬렛을 꺼내 먹을 때보다 김상병님이 임 병장을 옆구리에 끼고 사정없이 조질 때가 더 통쾌힜구먼유!“

읔- 창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김 강사는 삼식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삼식은 땅에 주저 앉다시피 하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아아- 영창갈 뻔 했던 그 사건! 그 사건으로 해서 상급자는 코뼈가 부러졌다. 이제야 사건의 전모를 생각해 낸 김 강사다.

”그때 아마도 상병님은 그 건으루다가 영창 갈 뻔하지 않었슈?“

”창피하게 그만 좀 해. 난 뭐라구...!“

”창피하시다니유. 지는 그때로부터 비겁한 것이 무엇인 걸 알게 되얏구먼유. 용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구유. 그란디 또 그렇게 살기는 어렵더라구유!“

얼굴이 점점 닳아 올랐다. 그것이 무슨 용기며 그것이 무슨 비열이란 말인가. 과자 나부랭이를 가지구. 그보다 치사한 인간이 여기 있다. 지난 15년 동안 대학원에서 겪었던 일에 비하면 그것은 이야깃거리도 아니란 말이다. 처지는 새끼들에게 잡혀 후딱 하면 주먹질이 오가던 화장실 뒤편 공간! 사부와 사형에게 그렇게 오지게 당하면서도 전임교수 자리하나 따보려고 깩-소리 하나 내지를 수 없었던 세월! 썩을 대로 썩은 나라라지만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 화장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죽으라면 죽은 시늉까지 해야 했던 세월! 비겁과 소심 비열과 저열한 인간이 여기 있다. 억 단위로 노는 판에 2~3십만 원 짜리 양주가 대수랴! 그걸 모르고 어머니를 졸라 어렵사리 구하던 로열 살루트니 스코틀란드 위스키 30년 산! 아아~~

갑자기 햇살이 너무 쏟아지는 듯, 승찬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척 얼굴을 가렸다. 들판으로 퍼져나가는 김삼식의 폭소가 승찬의 귀청을 찢었다. 저건 임병장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폭소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김 강사가 소리쳤다.

”고만 좀 햇! 명령이닷!“

”그기 아녀유. 과자 나부랭이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녀유. 아무리 작은 것이래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 병사를 위해서 용기를 내신거지유. 게다가 그깟 것이 뭐라구 쫄따구한테 돌아가는 과자부스러기를 감추는 그 상급자의 비열과 불의를 못 참으신 거잖아유!“

그래, 그때는 아주 작은 비열도 못 참았지. 그런데 지금 자신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되었는가. 군대에서의 사건이 모기만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산이 무너질 만큼 큰소리를 쳐야 할 것 아닌가. 삼식의 말처럼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서? 대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은 비열이 아니라 거의 불의였지 않았느냔 말이다.

”병장님 표정이 갑자기 왜 그류? 어디 콘디션이 안 좋으셔유? 지가 공연히 좋지 않은 기억을 꺼냈는 모양여유?“

그제서야 삼식이 승찬의 행색을 찬찬이 훑어본다.

”그란데 부대에서 제 별명을 자빡으로 지은 것은 병장님 아니셨슈?“

장난기 어린 눈을 빛내며 승찬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던 삼식이 얼른 화제를 돌린다.

”그랬지, 왜 유감 있나? 은근히 그 별명을 자랑스러워 했으면서......“

감정을 가까스로 다스린 옛날의 김 병장이 대답한다.

”아... 아녀유. 그때가 생각나서 한 번 디려본 말씀이여유. 그런데 왜 자빡이 그렇게 궁금하셨슈?“

”자네가 얼마나 얼굴하구 목에 힘을 주구 그 말을 했는지 아나?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그렇게 의기양양한 직업이 있다니 궁금할 수밖에...“

김 강사의 머리에 그날이 떠올랐다. 신입 병사가 들어오면 으레 신고를 받게 마련이다. 그날은 두 명의 신입이 들어왔다. 하나는 짱깨 하다 왔다고 해 병사들이 넘어갔는데 이 녀석, 삼식에게 묻자 아주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그런 거이 있슈!“

”뭐- 그런 거이 있다? 그런 거이 뭐하는 건데?“

”알 거 없구먼유!“

이런 싹퉁머리 없는 놈을 봤나. 군기에 군자를 몰라도 그렇지. 부대에서 아무리 휴메니티한 김 상병이라지만 날아오는 대답이 ”...알 거 없구먼유?“ 더구나 동료병사도 아니고 상급자에게? 머리에서는 화가 뻗치고 가슴에서는 웃음이 폭발할 것 같았다. 갓 들어온 신참병사가 신고하라는데 알 거 없다고 받아치는 놈은 국군 창설이래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상급자들처럼 폭력을 행사할 수는 더욱 없는 터, 하는 수 없이 김상병은 일과가 끝나고 테니스장 앞 벤치로 놈을 불렀다.  <다음 호에서 뵙겠습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포토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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