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남쪽에는 까오슝(高雄)이라는 제2의 항구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2018년 개관한 웨이우잉(衛武營)국립문화센터가 있지요. 일 년에 두세 번은 다녀옵니다. 골프 친구가 협찬사를 통해 구해주는 공짜 티켓도 한몫 하는데, 음악회에 관해서는 언감생심, 감히 논할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웨이우잉 National Art Center 전경
웨이우잉 National Art Center 전경

이번에는 지인이 애들 시험이 끝나면 춤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해서 수락했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렸습니다.

조명이 들어오고 커다란 북 하나가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작은 북 기다란 북들이 무대를 가득 메웠습니다. 난타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북소리에 5분을 못 버티고 잠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잠결에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에 의식을 붙들었습니다. 이어서 여자 단원이 어린 목소리로, “아빠, 엄마랑 가족이 아빠가 돌아오기를 집에서 기다릴게!”

그 이후로 잠이 달아나 춤과 내레이션 속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대와 함께 춤을(與你共舞) 도록 표지
그대와 함께 춤을(與你共舞) 도록 표지

與你共舞(그대와 함께 춤을)는 黃誌群의 자전적 깨달음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춤사위와 함께 만든 공연이었습니다.

‘黃誌群은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여섯 살부터 북을 쳤고, 열 살에는 정식으로 중국무술을 배우며 20여 년을 북과 무술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타이베이 민족무예단에 단원으로 들어가 해외공연을 다녀왔고, 1993년 처음으로 인도에 가서 靜坐를 배우고 「活在當下」(주:불교용어로 일체 번뇌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에서 오기에 외적 마음의 변화를 멈추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수행법)의 지혜를 깨우칩니다. 대만에 돌아와「優人神鼓」 감독을 맡아 정좌를 먼저 가르치고, 북을 연습하는 방식으로 극단의 체질을 바꿉니다. 그리고 무술을 접목하여 연기의 뿌리로 삼았습니다. 1994년과 1996년에 단원들과 함께 인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도록에서 발췌)

도록
도록

‘인도인은 물을 신성한 원소로 여깁니다. 무릇 물이 있는 땅은 인도인의 정신이 있는 영역입니다. 길고 긴 갠지스 강가에 앉아있는 수행자를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명상을, 어떤 이는 독특한 요가 자세로 수행하고 있으며, 강에서 생을 마치고자 합니다.’(도록에서 발췌)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려 내레이터와 함께 저도 여행을 떠납니다.)

만약 여행이 인간에게 일생의 양분이 된다면, 인도여행은 내 생명의 정신적인 양식이었습니다... 인도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당신이 인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인도는 당신의 세계관, 생명, 생활의 가치, 관념 등을 바꾸게 할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으로「나」를 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도록
도록

여행 중에 매일 듣는 질문이 “어디에서 오셨습니까?”였습니다. 이 호기심 어린 질문이 점점 더 내재화되더니 화두가 되었습니다. ‘너는 정말로 어디에서 왔나? 생명은 어디에서 왔고, 어느 곳으로 가는가?’ 하지만 “모르겠다.”였습니다.

한 번도 생명에 대한 의혹이나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의혹의 불덩이는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습니다. 나는 알아야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서 길을 떠납니다.

기차에서 피리 부는 늙은 장님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매일 기차에 올라 피리를 불며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에게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빈곤과 고통 그리고 슬픔이 전부일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한 잔의 차를 음미하고 있을 때, 소녀가 다가와 손을 내밀고 구걸을 합니다. 나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올리고 말했습니다. “차를 한 잔 살 테니 마시겠니?”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손을 뺀 뒤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떠납니다. 몇 걸음 걸어가더니 갑자기 뒤돌아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찬란하고 천진한 얼굴. 그 미소. 나도 소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데 눈가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방콕에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길지 않은 골목 한쪽에는 호객꾼과 기녀 마약 판매점들이 늘어서 있고, 다른 쪽엔 절이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이 거리는 환락에 젖은 중저음과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소리로 밤새도록 시끌벅적합니다.

새벽이 오자 청정과는 거리가 멀던 골목이 텅 비고, 탁발하는 승려가 나타나자 선남선녀가 무릎 꿇고 음식 공양과 재물 보시를 합니다. 똑같은 골목인데 어느새 장엄한 도량으로 변했습니다.

‘세속 안에 청정 도량이 있고, 출세간의 도량 역시 세속을 떠남이 아니었구나. 고요(靜)는 동(動) 안에 있고, 動은 靜을 품고 있다. 이원(二元) 대립의 세계는 모순이 아니라 하나로 통하는 것을.’

기차역에서 거의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이미 초조함도 사라진 상태. 결국에는 기차가 오고 두세 시간을 달려 눈 덮인 산에 이르렀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멀지 않았습니다.

도록
도록

아직은 찬기가 가시지 않은 4월의 봄, 창문을 여니 바람 따라 춤을 추던 나비가 들어오고, 저 멀리 한 마리 독수리가 용맹한 날갯짓으로 창공을 가릅니다. 면면히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다 눈을 돌려 바위를 바라봅니다. 바위가 되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니 나무가 되었습니다. 꽃 한 송이를 바라보니 꽃이 되었습니다. 산언덕 양치기 소녀를 바라보니 소녀가 되었습니다. 마음(心)과 물체(物)가 마치 거리가 없어진 듯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서로 방해가 되지 않고.

히말라야 산록을 떠나 갠지스 강가에 다시 왔습니다. 실명한 노인이 손풍금을 타며 처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마도 마음속에는 갠지스가 있고, 숭배하는 신도 있을 것입니다. 탁하게 쉰 목소리가 도도한 갠지스보다 더 진실해 보입니다. 그 깊은 정감이 폐부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그에게 만약「사랑」이 없다면, 혹은 아직도「나」라는 인식이 있다면 갠지스의 숭배하는 신은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드시「空」이어야 했고,「사랑」이 있어 그의 존재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순간「사랑이 공이고, 공이 사랑이다. 空과 愛는 나누어지지 않는다.(愛就是空,空就是愛,空愛不二)」는 깨달음에 눈앞이 환해지며 희열이 용솟음칩니다.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 갠지스로 뛰어들어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고, 슬픔이 아닙니다. 이 희열을 울음 말고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空愛不二의 깨달음을 얻고 펼치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도록)
空愛不二의 깨달음을 얻고 펼치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도록)

 

갠지스가 마른다고 하여도, 사랑은 그치지 않으리라.

準備回家(집으로 돌아가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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