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성서신학 석학인 정양모 신부님. 신부님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에 어머니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는 모습.(2018년 11월7일) ©️장영식 
당대 최고의 성서신학 석학인 정양모 신부님. 신부님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에 어머니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는 모습.(2018년 11월7일) ©️장영식 


스승의 날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부끄러운 일도 고마웠던 일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성서신학 석학인 정양모 신부님을 은사로 모셨던 것은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제도화된 교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인간에 대한 자애로움으로 넘쳐났던 분이셨습니다. 성서학에 대한 역사 비평적 고찰은 늘 새로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성서의 언어를 박제화하지 않고, 지금 바로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하느님을 교회 건물 안에만 계시는 옹졸한 분으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세상과 인간을 위해 열려 있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역설하셨습니다.

신부님의 구두는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밑창이 드러날 정도였지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면 가난한 제자들에게 지갑을 열어 용돈을 주셨습니다. 철이 없었던 제자는 그 돈으로 후배들과 함께 학교 앞 실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시대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병환 중에도 강의를 쉬지 않고 하셨습니다. 혹시라도 강의 중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처치 요령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을 생각하면 가장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학교를 떠나 성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중동 지역을 탐방하는 성지순례단을 지도하셨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신부님과 함께 예수님과 제자들의 살아 있는 거룩한 현장을 함께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 것에서 벗어나니 신부님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지금도 앨범 속의 신부님은 자애가 가득합니다. 신부님이 최근 저서 "예수의 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과 예수님을 뵈러 가는데 빈손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결국은 사랑입니다. 가난하고 수줍은 사랑 속에 함께 계시는 신부님의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 이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장영식 사진작가  han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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