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출신 실미도 사건 희생자 7인 다룬 다큐소설
[실미도로 떠난 7명의 옥천 청년들] 작가 고은광순씨
“희생자 명예 회복과 엉킨 현대사 풀어갈 시발점 되길”

고은광순 작가
고은광순 작가

고은광순씨는 “운명처럼 옥천이 내게 왔다”고 말했다. 한의사이자 사회운동가로서 바쁜 삶을 살아 온 고은광순씨는 2012년 청산면 삼방리로 왔다. 그의 명상 스승이 정해준 장소였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조용히 명상을 하며 평안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옥천은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쥐어줬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청산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치고 들어왔다’고. 그렇게 동학농민혁명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다큐소설을 기획해 2015년 <해월의 딸, 용담할매>를 출간했다. 마을 공동체도 꾸려나갔다. 행복마을사업을 기획했고 올해 3월 그 이야기를 엮어 <도끼부인의 달달한 시골살이>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실미도 사건으로 희생된 7명의 옥천 청년들 이야기가 고은씨를 치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다큐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희생자의 가족과 주변인을 취재했다. <실미도로 떠난 7명의 옥천 청년들> 초고 작업을 마친 고은광순씨는 ‘옥천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조각난 현대사를 꿰어가며 7인의 옥천 청년들과 실미도의 진실을 밝히는 기회를 줬다는 이유다. 

14일 ‘다큐소설가’ 고은광순씨를 옥천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실미도 사건과 옥천 출신 희생자에 대한 작품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운동 동지이자 학교 후배인 안김정애씨가 실미도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과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때 안김씨의 자료를 받아 봤는데 ‘옥천사람 박기수’가 눈에 박혔다. (고(姑) 박기수씨는 7명의 옥천출신 희생자 중 한 명이다_편집자주) 실미도 사건으로 희생된 7명의 옥천사람들에 대해 써야겠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며 가슴이 뛰었다. 

■ 소설을 보면 일곱 청년들의 거주지나 이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수집했나.

친구들, 지인들, 동네사람들, 가족들 모두 만나 인터뷰를 했다. 특히 고(姑) 김기정씨의 누이동생인 김기자씨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일곱 청년이 옛 극장 주변에서 주로 모였고 10분이면 누구의 집이든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는 것, 김기정씨가 그렇게나 다정한 오빠였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자료에 남아있지 않다. 사람이 곧 자료였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7명의 청년들이 글 속에서나마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 소설의 앞에는 청년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뒷부분에는 모집책의 유인부터 실미도로 떠나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글 중간 상당부분은 현대사에 대한 서술이 자리한다. 이런 구성을 취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실미도로 끌려간 청년들 중 7명이 옥천사람이었던 것은 우연이지만 이들이 희생당한 이유는 잘못된 현대사가 만든 필연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소설을 기획한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영화 <실미도> 때문에 생긴 희생자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영화 <실미도>에서 희생자들은 흉악범, 사형수 등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실제 이들은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다. 7명의 옥천 청년 중 범죄기록이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_편집자주)이다. 다른 하나는 실미도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밝히는 것이다. 기획의도를 반영한 구성이다.

■ 실미도 사건이 일어난 원흉으로 박정희, 미국, 남북분단을 꼽았다. 

실미도 사건을 조사하는데 한국 현대사의 엉켜버린 실타래가 풀리듯 착착 맞아 들어갔다. 이 자료들을 3차원 큐브를 맞추듯 조합해 보니 사건의 거시적 원인이 박정희, 미국, 남북분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공파시즘으로 권력을 지킨 독재자 박정희가 있었고 미국이 그를 이용했다. 결정적으로 남북분단의 현실이 있었기에 북파공작원 양성을 기획했다.

역사에 만약이라고 가정법을 쓰는 게 의미가 없다지만 저 셋이 얽혀있지 않았다면 실미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다. 

실미도 사건과 7인의 옥천 출신 희생자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실미도 사건의 원흉들은 한국 현대사가 비정상의 궤도를 달리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정상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비정상의 토대 위에 살고 있다. 비정상의 정치가 비정상의 경제를 낳고, 비정상적 불평등을 배양하고, 비정상적 정신세계를 키웠다. 

실미도 사건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이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움직임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내 글을 읽는 일이 일곱 청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한반도를 모든 증오와 협잡을 녹이는 용광로로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정식 출간일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올해 8월23일이 실미도 사건 50주기다. 그 전에 출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책은 2권으로 나온다. 하나는 내가 쓴 다큐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안김정애씨가 쓴 <실미도의 아이히만>이다. 내가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면 안김정애씨는 가해자의 이야기와 실미도 관련 재판기록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 초고 작업을 끝냈으니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기셨을 것 같다. 무엇을 하며 지낼 생각인가.

다시 또 바쁘다. (웃음) 행복마을사업을 해야 한다. 풍물을 배워 가을에 마을 축제를 열 예정이다. 마을대학을 진행하면서 친환경 농법, 동학과 청산의 역사 등도 주민들과 공부할 계획이다. 바쁘게 사는 게 내 업보다. 그래도 이 땅에 태어나 밥값을 하고 있구나 느낀다. 

■ 동학농민혁명과 실미도 사건에 대한 소설은 청산으로 귀촌하지 않았다면 쓰여 지지 않았을 책들이다. 끝으로 옥천이라는 공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감사한 곳이다. 명상하며 조용한 삶을 살겠다고 내려온 사람 계속 바쁘게 만드는 곳이긴 하지만···. (웃음) 다큐소설 작업이 이제는 내 숙명이었다고 받아들인다. 옥천으로 온 것은 운명이고. 현대사를 바로잡는 일에 한 몫 할 수 있게 해줘 옥천에 감사하다. 

* 이글을 옥천신문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 원본보기 :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649

[편집자주] <한겨레:온>주주통신원 고은광순씨는 한의사, 여성운동가, 평화운동가이다. 2015년부터는 평화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 양성숙 편집위원

유하빈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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