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찰해야 할 친일세력!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으로 출발하겠다는 윤석열이라는 야권의 대선주자! 그는 위와 같은 번드르르한 말로 대선 도전의 포문을 열더니 날마다 일제 앞잡이와 다름없는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한일 수교 이후 최악의 한일관계라고 지적하면서 자꾸 들먹이는 위안부 문제와 철 지난 죽창가를 부르는 바람에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고 전 조국장관과 현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흡사 일본인이 대한민국 대권에 도전하러 대한해협을 건너온 것일까. 버젓이 우리나라 대표 언론이라면서 일본 전범 자본에 복무하는 조선일보와 궤를 같이하는 발언으로 영웅본색을 날마다 드러낸다.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은 패망했으나 이후 한반도를 동강 내는데 기여하고 한국동란으로 어부지리를 얻고 이후 대한민국을 흡혈하여 세계 경제 대국이 되었던 일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역사를 세계인은 다 아는데 지금 윤이라는 자는 마치 반세기 전에 살다가 깨어난 것처럼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2019년을 기점으로 일본을 모든 분야에서 제치고 올라선 것을 모르는 듯 일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가 기술의 연구와 선진화를 꾀할 수 없던 것은 노예 문서와 다름없었던 한일청구권 협약 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분노를 누를 길 없었는데, 그러던 차에 일본 아베의 불소 전면 수출거부는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던가! 이를 기점으로 한일동맹은 깨지고 준비하고 있었던 듯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문재인 정부는 기술의 선진화, 홀로서기에 돌입했던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급기야 세계 G7 국가로부터 정상 회담에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받았던 것이다. 그간 그들에게 혜택을 구걸, 소비국이었던 코리아가 은혜의 나라, 세계 제일의 K 방역까지 성공하며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일등 국가가 되었는데 윤이라는 대선 주자는 일본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쩔쩔매며 어쩔 것이냐고 법석이다. 60년생이라 일제강점기를 거친 인물도 아닌데 그는 언제부터 일본화 되었을까.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하늘도 무심치 않으셔서 일본의 오지고도 오진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 모양이다. 지구촌이 새롭게 전이된 바이러스 창궐로 무관중 올림픽을 치른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깨닫고 참회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는 하늘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것을 모르고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둥,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정하라는 둥, 늑대처럼 지금도 약탈에 열을 올리고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때 발을 맞추어 국내에서는 친일 색이 보이는 인사가 대권 도전에 나서고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큰일이다.  이명박이 민주진영을 주저앉히기 위해 노무현 신드롬을 거세했듯이 그는 또한 현 정권이 깔아준 권력과 자유의 멍석 위에서 그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한 개의 가문을 거덜 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으니 검찰개혁은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것이 전 국민에게 학습된 것으로 천만다행이요 이는 事必歸正이다.

그런데 명박산성에서 내려온 이 왜색에 환호하며 몰려드는 인사들, 그들은 보나마나 청산하지 못한 친일부역 세력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해방 후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번성하여 시민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세력들이 같은 편이라고 윤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제 민족의 아들과 딸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어 일황에 충성하라고, 일제가 저지른 대동아 전쟁에 나가 목숨을 불사르라고 선동질하던 친일 부역과 연이 닿는 사람들이 그에게 동조하며 몰려들고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기득권을 누리던 친일 인사와 그 후예들, 그들이 조국의 독립을 저해하기 위해 얼마나 고약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들이 끼친 민족적 해악이 얼마나 큰지, 지금이라도 친일 청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엄숙한 역사적 의미와 당위가 여기서 출발한다. 제 나라와 민족 앞에 저질렀던 매국과 매족, 비열과 비겁을 가리기 위해,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제 민족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하여 필자야말로 글을 쓰는 문학인으로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부역 문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행적과 친일 작품을 한겨레.온 지상에 다시 한번 작가별로 연재하기로 한다. 교과서에 실렸던 거의 모든 작품의 임자들이 적극적 친일 인사들이었으며 그들이 해방 이후의 정국에서도 약삭빠르게 기득권층을 형성해 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투표권이 있는 일반에게 알려 쇄신된 사회분위기 아래 정의로운 정치권이 형성되면 좋겠다. 

그간 독재정권의 삼엄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들을 발굴, 연구해 오신, 학계와 작가 제위께 감사드리며 큰 용기로 역사의 틀을 바꾸신 고 임종국 선생! 이 지면을 통해 마음속 깊이 그분을 기리며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문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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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종한(金種漢) 그는 누구인가

 

連峯제설/ 김종한

 

地圖의 靜脈처럼

電線은 하이얀 山脈을 기어 넘어가오

첫눈을 밟고 와야 할

配達夫 오지 않아 그런 줄 없이 기다려지는데

銃소리에 놀라 깬 마을이

돌아누워 다시 冬眠하오

故鄕은 아니었소...... 그것은 茶房 벽에 걸린

風景畵였소

마을은 영원히 冬眠하는데 配達夫는 영원히 오지 않는데

빼어나 빛나는 하이얀 山脈을

電線은 영원히 기어 넘어가오

첩천 산중에 연이은 봉우리만 보이는 깊숙한 마을, 겨우내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쌓인 빛으로 세상은 두절 되었다. 오는 이 가는 이 없고,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高絶 속에 하늘의 명처럼 배달부라도 올까 하지만 그의 발도 묶인 絶海孤島! 그 강고한 적막을 깨고 산맥을 넘어온 총소리에 놀라지만 마을은 뒤척이며 돌아누워 다시 깊은 겨울잠에 빠져든다. 산맥과 산맥을 넘어가는 전선을 ”지도의 정맥처럼“ 으로 표현하여 산맥만 보이는 시계의 완전한 침묵, 백색의 무성을 형상화 했다! 흡사 영화 동막골이 연상되기도 하는 경치로 순백의 우리 산촌을 유린했던 대동아 전쟁을 고발하는 한 편의 영상이라고 내 나름으로 평을 해본다.

 

고원의 시((故園-詩)>/ 김종한

 

밤은 마을을 삼켜버렸는데

개고리 울음소리는 밤을 삼켜버렸는데

하나 둘…… 등불은 개고리 울음소리 속에 달린다.

이윽고 주정뱅이 보름달이 빠져나와

은(銀)으로 칠한 풍경을 토하다.

어스름 저녁이던 시간을 지나면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온전한 암흑이 저녁을 점령할 때 개구리 울음소리는 절정을 이룬다. 수천 수백만 마리의 합창이 부시를 치는 듯 우리의 달팽이관을 화끈거릴 때 마을은 하나 둘, 하나 둘 등불이 밝혀진다. 구름에 가렸던 보름달이 일그러진 얼굴을 내민다. 삼라만상에 은빛을 쏟아부으면서......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우리 민족 정서에 나오는 달은 주선이었던 이태백이 놀던 달이다. 취하지 않고는 시가 나오지 않았다던 이태백, 시취로 읽는 밤 풍경이다.

친일작가들은 대체로 우리가 배웠던 중고등 교과서에 실렸던 사람들인데 김종한 그는 낯설다. 위의 시들은 폐결핵이라는 지병으로 해방을 못 보고 죽은 천재가 친일하기 전의 시편들이다. 그는 1914년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에서 태어났다. 호는 고구려 고국천왕 당시 명재상의 이름을 딴 을파소이다.

여섯 살 때 큰 집에 양자로 가면서 생모와 백모 사이에서 혼란한 유년기를 보낸 그는 “가을비” “하소연” 같은 시를 조선일보에 발표할 때가 1928년, 15세다. 1934년에는 “임자 없는 나룻배”로 당시 유행하던 소곡 현상 공모에 당선하는가 하면 다음 해에는 “베 짜는 각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또 다음 해인 1936년에는 “망향곡”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의 총아로 등극한다.  다음 문단에 나온 것은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이었지만 그는 37년에 다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도전, 또 한 번 당선되어 기염을 토한다. 그에게 유독 상복이 많았던 것일까. 하지만 그의 시 속에는 번뜩이는 천재가 보이는 것이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살구꽃처럼/ 김종한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電光 뉴스臺에 하늘거리는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흩날리는 낙하산 보대

낙하한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청제비처럼 날아오는 총알에

맞받이로 정중선을 얻어맞고

살구꽃처럼 불을 토하며

살구꽃처럼 떨어져 가는 융커기(機)

음악은 혈액처럼 흐르는데

 

달무리 같은

달무리 같은 나의 청춘과

마지노선(線) 과의 관련, 말씀이죠

제발 그것만은 묻지 말아 주세요.

음악은 혈액처럼 흘러 흘러

고향 집에서 편지가 왔소

전주 백지 속에 하늘거리는

살구꽃은

살구꽃은 전쟁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차라리 웃으려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

 

대동아 전쟁을 살구꽃 만발로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가 일으키는 전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청년의 고뇌가 엿보이기도 한다. 음악이 무엇 때문에 섬뜩한 피, 혈액처럼 흐를까. 또한 쏟아지는 포화 속의 전장의 모습을 살구꽃이 만발했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현실이 아닌 듯 객관화시킴으로써 차가운 시선으로 전장을 형상화 시키고 있다. 위의 시편 또한 전쟁을 궁극적으로 찬양하고 있어 친일시로 분류하고 있지만 전쟁의 참상 자체를 회화를 보는 듯 서정성 속에 회화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를 추천한 정지용이 언급한 것처럼 그의 시는 감각적이다. 또한 시각적이고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미당을 능가하는, 시에 있어서 소리와 색채의 마술사가 되지 않았을까. 회화를 보는 듯 언어가 탄생시킨 그림 그림들이다. 야수파 그림에 심취했다던 이력 때문이었을까. 독특한 한국적 애상과 향토적 풍광 속에 모던을 덧입힌 솜씨가 오늘날 모더니스트들의 뺨을 치고도 남는다.

경성군의 경성보통학교를 졸업한 김종한은 잠깐 일을 하다가 1937년에서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예술과에 입학한 김종한은 1939년 문장 지면에 <나의 작시설계도(作詩設計圖>를 발표, 우리나라 현대시사 최초로 '선시(禪詩)이론'을, 「시문학의 정도(正道)」에서는 순수시론을 펼치기도 했다.

40년 졸업한 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않고 도쿄의 <부인화보사> 혹은 <해양문화사> 등에 근무하면서 시와 평론을 발표했으니 문인으로 행세하기는 일본에서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귀국한 때는 태평양 전쟁이 극심하던 1942년으로 그는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 지면인 <국민문학>과 <매일신보>에 기자로 근무하면서 별 저항 없이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해방 전, 평소 지병이었던 결핵으로 쓰러지기 단 몇 년 동안 22편이나 되는 친일 시와 선동 글을 써댔으니 그가 얼마나 일제에 경도되었었는지 알만한 일이다. 이른 나이에 친일을 한 경우대체로 강권이 아니라 자발적인 친일을 했다던데 김종한 그도 이에 속하는 인물임에 틀림 없다.

42년 5월 조선징병제 실시가 결정되자 징병제 선전 선동에 동원된 그는1943년 1월 매일신보에 “전쟁은 아름답고 위대하다.”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 글은 와세다 재학 중 좌익활동을 하다가 황국신민으로 다시 태어나 중일전쟁 군속으로 자원해 전사한 "김형"이라는 조선 청년의 아버지를 취재하고 그 취재기를 올리면서 그의 친일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정 --

해묵은 돌배나무에 늙은 원정은/ 능금의 애가지를 접목하였다/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놓고/추워보이는 유리빛 하늘에 담배 연기를 흘려보냈다/ 그런 일이 성공할까요 하면서/원정의 아내는 저으리 고개를 갸웃하였다/이윽고 철쭉꽃이 매소하였다/이윽고 버들은 음탕하였다 해묵은 돌배나무에도 변명하듯이/두 송이 반의 능금꽃이 피었다/그런 일도 성공하는군요/원정의 아내도 비로소 웃음 지었다 그리고/버들은 실연하였다/그리고 철쪽꽃은 노쇠하였다/내가 죽어버리고 난 다음에는/늙은 원정은 생각하였다/이 가지에도 능금이 열려주겠지/그리고 내가 잊혀져 버릴 무렵에는...“/아닌게 아니라 원정은 죽어버렸다/아닌 게 아니라 원정은 잊히고 말았다/해묵은 돌배나무에는 추억처럼/능금의 볼이 자기를 휘일 듯이 빛나고 있었다/그런 일도 성공하는군요/원정의 아내도 지금은 죽고 없다. <국민문학- 42년 1월>

내선일체를 간절히 바라는 친일시로 돌배나무와 능금의 애가지를 접붙이는 것으로 조선과 일본이 하나가 되어 근본이 잊혀지는 어느 미래에 두 개의 민족이 한 민족이 되는 것을 형상화 한 시로 실로 오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모자

엄청나게 많은/ 모자의 흐름 속에/ 네 모자도 흐르고 있다/ 아우여!/지금은 즐거운 등교시간/ 졸업하면/군인이 되겠다는/원기가 흘러넘쳐/ 모자 천장에/그럴듯한 바람구멍을 내어버렸다/ 군인이 되겠다는/ 아우여! 훌륭하지 않은가/ 따뜻하게 비치는 아침 태양을 맞으며/ 네 모자는/ 망가진 철모보다 아름답구나—<국민총력 1943년 8월>

1943년 8월 징병제가 시행되자 국민이 총력을 기울여 태평양 전쟁의 필승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교모를 쓰고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의 물결을 바라보며 반드시 커서 전쟁에 나갈 군인이 되라고 아주 자연스러운 발상으로 모자와 모자의 물결을 보면서도 징병제 찬양에 입각해 있다.

 

유년—징병의 시

한낮의 오후/하고 어느 대문 밖에서 그 집 꼬마가/ 글라이더를 날리고 있다/ 그날이 5월 8일이라는 사실도/ 이 반도에서 징병이 실시된 날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 오로지 꼬마는/ 보조 날개의 실을 감고 있었다/ 머지 않아 10년이 지나리/ 그러면 그는 전투기에 승무할 게 틀림 없다/하늘의 층층대를 꼬마는/ 지난밤 꿈속에서 올라갔었다/ 그림책에서 본 것보다 아름다원서/ 너무나도 높이 올라갔으므로/ 푸른 하늘 속에서 오줌을 쌌다. <국민문학 1942년 7월호>-

동네 꼬마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이 눈에 띄어도 병사로 전쟁에 나갈 인력으로 보고 있으니, 이 꼬마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안전한 책상 앞에서 누구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선동질이냐. 너희 동생이 있느냐, 너희 형이 있느냐. 아니면 그렇게 전쟁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고 싶으면 본인이 자원 하여 산산이 흩어져 산화하든가. 그냥 죽었으니 일제에 그 목숨 바치지 못하고 죽었으니 아까워 어쩌냐. 너는 뭐하고 남의 자식들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라고 선동질이냐!  잘 놀고 있는 남의 집 꼬마를 보고 10년 후면 전투기를 탈 것이 틀림없다고?? 3년 후에 일본이 패망하고 말았으니 원통하여 이는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지 않을까.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바다로 가도 좋지 않은가/그 싱싱한 파랑의 화원/ 시간과 역사가 무시되는 곳/함대는 물결의 산맥을 기어올라/ 물결의 곡간에 미끄러지고..../산으로 가도 좋지 않은가/ 너울너울 쉬고 가는 구름의 침대/ 풍속과 인정이 초절되는 곳/ 밀림을 헤치고 고산식물에 멈춰서면/전우는 여동생처럼 아름답고/때로는 전투기에 매어달려/ 하늘의 층층계를 올라가도 좋지 않은가/성층권 꿈 저쪽의 비상에는/스무살의 지도와 축제가 펼쳐지고/구름을 물들이는 충성의 피는/ 형제와 동포의 가능을 길 닦는/날씬한 전투기의 날개에 매어달려  <국민문학 —1943년8월>

징병제 실시를 기껍게 받아들이고 찬양하는 시로 남아의 기개나 용기를 부추기고 있다. 일제에 충성하라, 일황에 충성하라, 황국민이 되자, 조선민에게도 전쟁에 나갈 의무를 부여했으니 기꺼워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식의 찬양과 권유가 아니라 순수한 남아의 전투적인 남성성에 파고드는 문장이다. 아직 정체성이나 역사의식이 확고하지 못한 상태의 어린 소년이나 청년들을 향해 전쟁에 나갈 것을 충동질, 선동질하고 있다.

다른 친일 시인들의 작품과 김종한의 친일 시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또한 그는 소재를 발굴하는 데도 남다른 심혈을 기울이고 대단한 발상에 닿아 있다. 제복을 입고 제모를 쓰고 등교하는 학생, 글라이더를 날리는 꼬마, 그리고 돌배나무와 능금나무를 접붙이는 등에서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원초적 충동을 자극하고 인간의 속성에 파고들어 영혼을 잠식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해양과 조선문학—

금번의 해군특별지원병제의 결정은 조선의 해양문학에 새로운 영역과 가능을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엽을 애독하는 사람들에게는 아국에도 해양문학에 관한 위대한 고전이 있다는 것을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미영의 해양정신은 해적 정신에 기인한 것이요 일본의 해양정신이란 황실을 중심으로 한 자기희생의 정신이었다. <매일신보 —1943년 5월>

해군 특별지원병제 실시에 대해 드디어 조선에도 해양문학을 할 수있는 기회가 온 것이 아니냐!! 미영의 해양정신이란 해적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해양정신이란 황실을 모시는 자기 희생정신이라고 비틀어 찬양하고 있다. 일본의 학도병제가 없어서 우리가 해양문학을 할 수 없었단 말인가. 장보고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이순신 장군께서 얼마나 통탄해 마지않으실까. 이렇게 충성하여 이들은 징병을 모면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머리 좋은 놈들이 더 잔인한 범죄에 가담하듯, 친일시가 아닌 김종한의 초년의 순수시를 볼 때 거기에는 분명 천재가 번득인다. 그래서인지 다른 친일 인사들은 내선일체나 황국신민이 되라든가, 징병제에 순응하고 가담하자는 등의 일제가 강권하는 물리적 체제나 전쟁참여를 선동질하는 데 반해 이 김종한은 인간의 원초, 속성, 심리를 파고들면서 정신과 얼을 일제로 바꾸고 침식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근원적으로 우리 민족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기여하고 있어 친일문인 중에서 가장 나쁜 케이스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피도 일제의 피, 뼈골조차 일제가 녹아있었다.

 

용비어천가

용, 용이 승천한다/ 우리 동양에서는 / 새로운 세상이 창조될 때에는 /반드시 용이 승천한다.—<국민문학—신시대 1944년 1월>

 김종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안타깝다.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떨어지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목격했어야 했는데..... 일왕 히로히토의 무조건 항복 문서를 읽는 떨리는 육성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는 잡혀서 어느 광장에서 처형을 당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북간도, 삭북 하늘 아래 밀정에 잡히고 일본군에 효수된 독립군의 목들이 저잣거리에 매달려 사위어 갔던 것처럼 그의 효수된 목은 어디에 매달아야 했을까! 그러나 이들도 모두 희생자임에는 틀림 없다. 일제 침략이 없었다면 그가 친일시편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드디어 그는 용비어천가를 씀으로써 일제에 최고의 아부와 충성에 낙관을 박았다. 이런 친일시편들을 읽고 얼마나 많은 청장년이 충동으로, 고무되어, 강권으로 일제 총알받이로 나갔을까? 듣도 보도 못한 남양군도에서 값없이 이름도 없이, 일제의 천하에 못된 야욕에 죽어갔을 아까운 우리 민족의 아들들, 피맺힌 이들의 한을 이렇게라도 하여 털끝만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사진 : 한겨레 포토

참고 문헌 :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지음), 한국민족문학대백과, 위키백과, 다음과 네이버 등

편집 :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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