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딸 승미에게 주는 아버지의 글

2020년 12월 결혼식 날 찍은 가족 사진. 왼쪽부터 필자, 딸 승미, 사위 이브 힉스, 부인 이경순, 아들 승주씨. 
2020년 12월 결혼식 날 찍은 가족 사진. 왼쪽부터 필자, 딸 승미, 사위 이브 힉스, 부인 이경순, 아들 승주씨. 

 

태명처럼 ‘아빠의 별님’으로 30년 
바쁜 부모 대신 ‘동생 돌보미’ 노릇
밤늦게 퇴근해오면 밥상 차려 '감동' 
’벨기에 남자친구 데려왔지만 ‘든든’
코로나 탓에 작은 결혼식해서 ‘섭섭’

항상 당당하고 예쁜 우리 딸 결혼 축하해 !승미야, 네가 벨기에로 떠난 지 벌써 석달이 넘었구나 . 아빠 엄마 딸로 30 년간 살다 짝을 만나 한국을 떠나 먼 타국으로 갔구나 . 아빠도 서른이 넘어 엄마를 만나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던 서울로 와서 너희 두 남매를 낳고 살았지 .

아빠는 원래 추억 이야기 잘 못하는데, 아니 잘 안하는데, 네가 멀리 가 있으니 옛일들이 마구 떠오르네 . 네가 태어났을 때 아주 멋지고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어 .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 별님 ’ 이라 불렀지 . 그리고 진짜 아빠의 별님 이 되었지 . 넌,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면서 퇴근하고 오면 ‘ 만세 ~~’ 를 부르면서 아빠를 맞이해 주곤 했어 . 지금도 선하게 떠오르는 너의 예쁜 모습이야 .

네가 다섯 살 때였지 . 동생 승주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출근해서 없고 엄마는 산통을 느껴 네 손을 잡고 집 근처 산부인과에 갔단다 .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심한 산통으로 너를 챙길 수 없을 정도였다지 . 엄마도 너도 혼이 빠졌겠지 . 이웃 비디오 대여점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달려와 아빠 회사로 전화를 해주었지 . 아빠가 달려오기 전까지 네가 잠시나마 아빠 대신 엄마 옆을 잘 지켜주었지 . 아마 그때부터 ‘동생 돌보미 ’ 노릇 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

초등학교 시절에도 너는 늘 엄마 아빠 퇴근할 때까지 동생을 챙기곤 했지. “ 그때 나는 누나가 있어서 지루하지도 무섭지도 배고프지도 않았어 . 엄마 아빠를 기다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 누나는 엄마 아빠를 좀 많이 기다렸던 것 같아. “ 얼마 전 승주의 얘기를 듣고서야 아빠는 네게 진짜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단다.

너의 중 · 고등 시절 ,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학원을 열었지 . 너의 공부 스트레스도 늘어나던 시절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 아빠 일 끝내고 밤 10 시 넘어 집에 돌아오면 너는 따뜻한 밥을 해놓고 있었지 . 늘 감동이었던 우리 딸 .

딸 승미가 길에서 데려와 가족이 된 고양이들.
딸 승미가 길에서 데려와 가족이 된 고양이들.

대학에 들어간 뒤 어느 날, 너는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왔었지 . 고양이가 아사 직전이라 사료를 사러 밤 12 시 넘어 24 시 마트에 갔던 기억이 나는구나 . 그 고양이가 벌써 10 년째 우리와 살고 있고 , 1 년쯤 뒤 또 데려온 길냥이까지, 지금은 두 마리가 재롱을 떨고 있구나 . 이 녀석들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단다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 날, 너는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파견 나온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었지 . 엄마한테 전해 듣고서 언제나 당당하고 예쁜 우리 딸이 이제 우리 곁에서 독립하는구나 생각했어 . 왜 남자친구가 외국인이지 ? 하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 아빠는 네 선택이 항상 당당하고 올바를 것이라고 믿었어 . 그 선택을 네가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도 믿으니까 .

함께 여행중인 우리 부부와 딸 승미(가운데) 
함께 여행중인 우리 부부와 딸 승미(가운데) 

그리곤 남자친구의 한국 주재원 근무가 끝나 네덜란드 본사로 복귀해야 한다고 하면서, 결혼해서 남편의 나라 벨기에로 같이 가겠다고 했지 . 코로나로 인해 어차피 작은 결혼식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일가친지들만 모여 작은 결혼식을 한 것이 조금은 아쉽구나 .

그렇게 지난해말 결혼식을 올리고 ‘벨 서방’은 먼저 본국으로 돌아가고, 5 개월 뒤 너마저 신랑 따라 벨기에로 가고 없구나 . 그래도 그사이 아빠 엄마를 위해 여행 , 글램핑 , 산책 등등 많은 추억 쌓기를 해줘서 너무 고마워 . 출국하는 날에도 피곤하단 말 한마디 않고, 공항 주변 을왕리 드라이브 함께 해준 시간도 고맙고 . 사랑한다 . 내 딸 . 그리고 다시 한 번 결혼 축하해 .

투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4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



* 이글은 2021년 9월 10일 한겨레 22면에 실린 글입니다. 
*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11184.html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창홍 주주통신원  ksch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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