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세상은 더욱 혼란을 거듭하며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듯 보인다.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의 다이아나와 사별하고 아담하고 귀여운 레이첼과 재혼한 슈만은 행복한 신혼 생활에 잠겨 혼탁한 세상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신혼 여행으로 레이첼과 전 세계를 유람하는 크루즈 여행을 한 달 간 다녀오고 난 후  명상 프로그램에서 회원들과 명상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말은 현재의 매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슈만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슈만은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오페라 펜던트의 조명이 걸려있는 거실에서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누볼레 비앙케(흰구름)'와 '북극의 슬픔(Elegy  for the Arctic)'을 감상하며 레이첼과 더불어 알랭의 '행복론'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중이다.

- 음악은 (의지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모든 사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성악에서조차 의지의 힘이 있어야 오래 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체코 부르노 음대교수였던 슈만은 알랭이 음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특히 눈여겨본다. 알랭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에밀 어거스트 사르티에는  행복에 있어서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음악에 있어서조차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슈만이 알랭을 거론하며 행복은  각자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하자 레이첼이 동감한다고 말했다.

"알랭이 한 말 중에 제일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요. '사랑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고, 욕망도 오래 가지 않으며, 참다운 감정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구절이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있어요. 알랭은 왜 사랑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고 한 걸까요?"

레이첼의 질문에 슈만은 자신도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며 대답했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잖아요. 남녀관계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가족 간의 사랑도 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있지요. 가족간의 사랑에서도 모성애는 숭고한 사랑이긴 하지만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랑으로 흐른다면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이 아닐 수  있어요."

"모성애가 자기 자식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식들을 향해서도 이타적으로 폭넓게 적용될 때 비로소 자연스러운 감정이 된다는 말이군요."

"남녀 간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야릇한 기분이나 성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가까운 과정이라고 봐야죠. 청춘 시절을 잘 생각해봐요.  자신의 애틋한 마음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아픔은 얼마나 처절한지 말이죠."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그 처절한 아픔이 두려워 고백하지도 못하고  홀로 가슴앓이하는 짝사랑으로 끝나기도 하지요. 또한 사랑은 상대방의 반응이 뜨거운가 차가운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 일쑤지요."

슈만은 청소년 시절에 짝사랑했던 소녀를 떠올리며 레이첼은 아마도 그 시절에 많은 소년들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레이첼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은 그 사랑을 얻었다고 사랑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게 더 문제지요.  사랑을 확인한 후에 결혼하고 나면 그 앞날에 꽃길만 있는 게 아닌 걸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부부의 연을 맺은 후 다들 꽃길을 기대하지만, 가시밭길이 더 많을 수도 있지요."

"그렇게 어렵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도 결혼 후에  숱하게 많은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랑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알랭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레이첼이 결혼 후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슈만은 다이아나가 떠올랐다. 슈만은 처음에 다이아나의 우아함에 반하여 결혼했지만, 그 후의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레이첼과 결혼한 지금은 더 없이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레이첼이 슈만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에야 묻는 말인데, 2년 전에 다비드의 행복 경시대회에서 9점 만점에 9점을 맞은 당신은 행복에 대해 논하면서 사랑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어요. 왜 그랬는지 궁금해요."

레이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슈만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변했다.

"당시로써는 다이아나와의 부부관계가 그리 좋지 않아서 행복에 미치는 사랑의 영향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요. 지금 다시 행복경시대회가 열린다면 사랑이야말로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는 글을 쓰게 될 테니까요."

슈만의 어설픈 해명을 듣자 레이첼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랑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불행 또한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슈만의 가슴에 기대어 있던 레이첼이 뭔가를 생각한 듯 질문을 했다.

"행복이라는 건 어쩌면 보물찾기 게임 같은 건 아닐까요? 소풍 갔을 때 교사들이 보물을 숨겨놓고 아이들에게 찾으라고 하면 신이 나서 찾잖아요."

보물 상자 Geocaching - Pixabay의 무료 벡터 그래픽

                                                                (보물 상자 / Pixabay 무료 벡터 )

 

"어렸을 때 보물찾기를 많이 했지요. 찾고 나면 막상 그 보물은 별 것 아닌데도 좋아라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 보물을 찾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는지도 모르지요."

"삶이 끝날 때까지 인간은 보물찾기하듯이 행복을 찾는지도 몰라요.  그 행복이 자기 주위에 널려 있다는 걸 모른 채 다른 데서 찾아 헤맨다는 게 문제지요."

"어릴 적 보물찾기 게임을 하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는 보물은 안 찾고 보이지 않는 보물만 찾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요."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 태고시대 사람들은 매일 아침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푸른 하늘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요."

"고대 마야 문명의 어떤 부족은 해가 뜰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해가 질 때마다 다시 해가 떠오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지요. 단순한 신앙 같지만 그들은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신이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준 데 대해 감사하며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요."

"주위에  펼쳐져 있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게 행복일지도 몰라요."

행복에 대한 논의는 끝도 없이 이어질 태세다. 슈만이 보기에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이다. 행복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있다. 행복에는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저것 다 떠나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는 순간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 슈만은 레이첼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겼다. 

"행복은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평범한 삶 가운데 있는 사소하지만 고마운 것들에 대해 지각으로 알아차리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죠."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감동한 듯 슈만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레이첼이  물었다.

"당신은 보물찾기 게임에서 보물을 찾으셨나요, 보물같이 빛나는 마음 속의 왕관을?"   

 

기획전 ‘디엔에이(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의 4부 전시장 모습. 경주 서봉총에서 출토된 5세기 고신라 금관(오른쪽)과 이수경 작가의 신작 조형물 <달빛왕관-신라금관 그림자>가 서로 마주 보듯 배치되어 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기획전 ‘디엔에이(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의 4부 전시장 모습. 경주 서봉총에서 출토된 5세기 고신라 금관(오른쪽)과 이수경 작가의 신작 조형물 <달빛왕관-신라금관 그림자>가 서로 마주 보듯 배치되어 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슈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내 마음의 창고에는 보물과 크고 작은 왕관들로 가득차 있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영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 왕관은 바로 레이첼 당신이지요."

슈만의 고백을 들으며  레이첼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레이첼도 화답했다.

"내가 보물이라는 걸 알게 해준 슈만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짜 보물인 걸요."

슈만과 레이첼은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은 없다.  그 때 두 사람은 신기한 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으로 충만했다.

슈만은 콜롬비아에서 가장 높은 산타 마르타 산맥에서 재배된 오가닉 마운틴 유기농 커피의 진한 콜롬비아 커피 향을 음미하며 레이첼이 구워온  고소한 쿠키와 크루아상을 맛보고 있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맛있는 다과를 맛보며 레이첼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야 말로 슈만에게는 진정한 행복으로 느껴졌다. 메로나 마을에서 레이첼과 함께 하는 행복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스러운 레이첼을 바라보며 슈만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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