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나 마을의 현자 다비드는 푸른 가을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레이첼과 슈만의 결혼식도 성황리에 끝나고 마을은 더없이 평온했다. 마을 주민들도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에 잠겨 아무 불만이 없어보였다. 그때 왠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며 사색을 방해했다. 가을 바람이 좋아 창문을 여는 김에 방충망을 열어 놓은 사이에 파리가 날아든 것이다. 잠시 그러려니 하고 다시 사색에 잠기려는데 파리가 다비드의 코 앞에서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코 앞에서 얼쩡거리는 파리나 모기를 본다는 것은 인내와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다. 

다비드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 네 코앞에서'라는 글이 떠올랐다.  <동물농장>과 <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본다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며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 반대되는 분열적인 사고방식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분열로 인해 사회적으로 끝없는 투쟁이 이어진다. 다비드는 이 분열적인 현상이 개개인의 내부에서도 벌어진다고 보았다.

파리 한 마리로 인해 다비드의 마음은 일시적인 갈등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파리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평온하던 다비드의 코 앞에 등장한 파리 한 마리로 인해 순식간에 마음의 평온이 깨지고 말았다. 파리를 잡아야 할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파리를 잡으려면 나름의 공력을 들여야 한다. 가만히 두자니 신경이 쓰이고,  잡자고 하니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갑자기 파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어서 나갔거니 했다.  역시 시간이 약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갔던 똥파리가 다시 거실에 침입했고 그를 이어 말벌이 실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핏보아 나비처럼 보이는 나방이 따라 들어왔다. 해로운 곤충들이 삽시간에 몰려와 거실의 고급스러운 몬타나 장식장을 더럽히고 있었으며 얼마 전에 장만한 덴마크 유명 브랜드인 에리크 예르겐센의  소파 주위를 휘젖고 다녔다. 실내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똥파리도 똥파리지만 나방과 말벌은 만만치 않은 곤충들이다. 나방은 천적이 많지 않다. 박쥐가 천적이라고 하지만 나방을 잡기 위해 박쥐를 집에 들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방 가루가 몸에 묻으면 피부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게다가 말벌은 어떤가. 말벌은 꿀벌 700마리 전투력을 가졌을 정도로 최상위권 전투력을 지닌 해로운 곤충이다. 산림 내에서는 해충을 잡아먹는 포식자이기도 하다. 말벌의 독침에 쏘이면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말벌은 천적도 별로 없다. 말벌의 두꺼운 깃털에 막혀서 새한테 먹히지도 않는다. 

똥파리와 말벌 그리고 나방이 활개 치고 돌아다니자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과의 전면전이라도  벌여야 한다. 장기전이 될지도 모른다. 다비드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살충제를 쓰자니 실내의 장식장이나 가구들에 묻을까 신경이 쓰인다. 이런 일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도 아니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몹시 신경 쓰이는 일이다. 파리나 말벌이나 나방은 함께 공생공존하는 곤충들이 아니다. 이들이 갑자기 실내에 난입한 것은 다비드의 사고방식으로서는 몹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비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이들의 행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파리는 종횡무진 현란한 비행술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날아다녔고 말벌은 위협하듯이 거실 전체를 장악하고 지배하고 있었으며  나방은 소리 없이 실내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있던 다비드는 착각에 빠졌다. 이 집이 자신의 집인지 아니면 원래 곤충들의 공간이었는데 자신이 그 공간에 들어온 것인지 갑자기 분간이 안 되었다. 

어쩌면 다비드가 메로나 마을에 입주하여 집을 짓기 전의 집터가 원래 곤충들이 생존하던 터였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집이 들어서기 전의 대지와  터에 곤충의 조상들이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종족이 살던 터가 그리워 거실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물론 그 과정에서 다비드를 위협하고 방해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집을 나가야 하는 건 이들 곤충이 아니라 다비드 자신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다비드는 옷을 주워입고 집을 나섰다.

아내 소피아가 산책 나간 마을 동남쪽의 숲을 향해 걸어갔다.  곤충들이 엉겁결에 다비드의 집에 난입했지만, 밤이 되면 각자 자신의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곤충들이 나갈 수 있는 비상대책은 강구해 놓았다.

 

    ( 출처 : Pixabay )
    ( 출처 : Pixabay )

 

메로나 마을의 동남쪽 숲은 숲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웅장한 산이 숲을 에워싸고 있어서 경이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숲속에서 다비드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소피아를 발견했다. 소피아는 꿈에 잠긴 듯 숲길을 걷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몸매로 나풀나풀 걷는 모습이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운 자태이다. 다비드가 살금살금 다가가자 소피아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이 다비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비드는 소피아의 머릿결에서 풍기는 은은한 오렌지 자스민 향기를 맡으며 소피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노후로 접어들었지만 다비드는 소피아를 한 번도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곱게 나이드는 소피아의 모습은 언제 봐도 친근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달빛은 교교했고 다비드는 소피아와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다비드와 소피아는 닉을 만났다. 닉은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공인회계사로서 마을의 윤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닉은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닉이었기에 다비드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닉,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인데 같이 좀 알고 즐깁시다."

다비드의 질문에 약간 당황해하며 닉이 우물쭈물 답변했다.

"아직은 아니고요.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려드리지요."

그 말을 듣던 소피아가 닉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부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랄게요."

닉과 헤어진 후 소피아가 다비드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닉에게 여자가 생긴 게 분명해요. 이건 여자만의 직감이에요. 믿어도 돼요."

소피아의 직감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직감에도 근거가 있을 것이다. 다비드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거요?"

"닉이 엘리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는군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소?"

"두어 달 전에 새로 생긴 커뮤니티가 있는데 거기서 눈이 맞았다고 하네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가까운 지인한테 들었어요. 아직은 아무도 몰라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요."

여자들은 정보의 유통속도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특히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예지력을 발휘한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주민이 알게 될 것이다.  다비드는 아무쪼록 닉에게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랬다.  소피아와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보니 파리와 말벌과 나방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였다. 다비드는 집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조치를 취해두었다. 

꿀이 들어있는 병뚜껑을 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집안의 전등을 모두 소등하고  집밖에 있는 정원의 전등을 밝게 켜놨으며 새장에서 새 한 마리를 풀어놨다. 살펴보니 파리는 꿀이 들어있는 병 속에 빠진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고, 나방은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 정원의 전등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가장 위협적으로 거실을 지배했던 말벌은 어찌 된 것일까.  말벌은 꿀통에 빠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다비드가 새장에서 풀어놓은 때까치가 말벌의 해결사였을 것이다.

 

                                                                                                 때까치 (출처 : PixaHive.com )
 때까치 (출처 : PixaHive.com )

 

말벌의 천적은 때까치이다.  때까치는 참새보다 약간 크지만 비교적 작고 이쁜 새이다. 일명 '사이코패스 새'라고 불린다. 말벌을 잡아 죽이되 먹지는 않고 나뭇가지에 꿰어 걸어둔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때까치는 왜 말벌을 죽이는 걸까.  죽인 말벌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계속 두고만 본다. 학자들은 때까치가 말벌을 재미삼아 죽이고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채 죽은 말벌을 감상하기만 한다고 하여 '사이코패스 새'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쩌면 때까치는 나뭇가지에 말벌을 꿰어두고 주변의 말벌들에게 다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지도 모르며,  일부 학자의 주장대로 자신의 능력을 암컷에게 과시하려는 퍼포먼스나 구애 행위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일단 자신의 예상대로 해충들은 해결되었지만, 한편으로 다비드의 마음은 착잡했다. 고대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이 천지만물을 움직이는 정령이라고 믿었고, 16세기 스위스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파라켈수스는 물과 불, 흙과 바람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었지만, 다비드는 동물이나 곤층들을 움직이는 정령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정령을 통하여 인간과 동물들이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 다비드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곤충의 정령은 왜 해로운 곤충들을 다비드의 거주공간으로 이끈 것일까. 다비드는 곤충의 정령이 자신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무슨 메시지일까.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던 다비드는 마을에 어떤 소요나 소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령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다비드에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언일지도 모른다.  다비드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스티브와 알렉스를 비롯한 한시적 체류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별 탈 없이 메로나 마을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해충들이 거실을 어지럽혔지만 결국은 해충들을 잘 처리하지 않았는가. 어떤 사건이나 소란이 있더라도 자신이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며 다비드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 때 소피아가 다비드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요?"

"아니요,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다비드는 싱긋 웃으며 소피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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