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0도를 오르내리던 폭염도 물러가고 선선한 찬바람이 불 즈음의 어느날 남부 유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현자 다비드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찍이 T.S.엘리엇이 말한 바대로 우리는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팬데믹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자 인간의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인류사회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행복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며 몸부림쳐왔으나 행복과는 갈수록 멀어지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팬데믹이 일어나기 몇십 년 전부터 일찌감치 그런 예감을 강하게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삶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꿈꾸는 마을을 가꾸려는 운동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중에 잘 알려진 곳이  인도의 명상마을 ‘오로빌’, 캐나다의 생태마을 '아젠타', 영국의 퀘이커 공동체 ‘우드브록’ 등이다. 국가로부터 마을 운영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고 자치마을의 형태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세금이나 예산까지도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마을도 있었다.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해 1968년 세워진 오로빌은 인도국회로부터 특별자치권을 부여받은 마을로 53개국 출신 2천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남부유럽에 자리잡은  메로나 마을도 규모는 작지만 오로빌에 버금가는 공동체 마을이다. 다비드는 그 메로나 마을의 수장 역할을 맡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로부터 현자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축제 /  출처 Pixabay
축제 /  출처 Pixabay

메로나 마을 주민들은 직장이나 사업의 부담 없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취미생활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메로나 마을의 특용 약초가 아시아와 유럽 각 지역에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어서 마을 예산은 더할 나위없이 풍족한 상태였다. 거의 매달 마을의 축제가 열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메로나 마을이야말로  어쩌면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일지도 모른다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메로나 주민들은 자신만의 텃밭을 일구며 이웃들과 취미나 특기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야말로 영성과 진보를 향한 열망이 쾌락과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는 욕망 충족보다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마을이었다.  물론 메로나 마을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신이 거주했던 국가로부터 범죄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서류를 제출해야 함은 물론이고 각종 인성검사와 적성 검사를 거쳐야 하며 최종적으로 마을 윤리위원회의 면담 절차를 통과해야만 비로서 메로나 마을에 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인간의 감정이나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에 마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메로나 마을이 좋다는 소문만 듣고 온 사람들은 메로나 마을 주민이 되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메로나 마을의 현자 다비드는 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메로나 마을은 안락사가 허용되어 있어 죽음으로의 여행이 보장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고통없이 죽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안락사를 유발하는 화학성분을 지닌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곳도 있었다. 그 작물은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마을 윤리위원회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다만 안락사를 하는 사람은 사전에 윤리위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자신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유를 적어도 사흘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행복 마을 공통체에서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계속>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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